TV를 말하다

왜 TV는 ‘구미호’와 사랑에 빠졌는가?

朱雀 2010. 7.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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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일엔 KBS에서 <구미호 : 여우누이뎐>을 방송한다. 그리고 약 한달 후엔 홍자매가 집필하고, 이승기-신민아가 주연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가 방송된다.

 블과 한달 간격으로 방영되는 두 드라마는 공교롭게도 모두 ‘구미호’를 소재로 하고 있다. <구미호 : 여우누이뎐>의 상대는 MBC의 <동이>다! 한은정을 비롯해 장현성-김유정-서신애 등 나름대로 캐스팅도 화려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왜 2010년 대한민국의 TV엔 ‘구미호’가 소재로 점찍혔는가? 구미호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로, 전설에 의하면 상당한 도력을 지닌 요물이다. 구미호는 변신능력이 있어서 아름다운 처녀로 변하거나, 남자를 홀린 다음 간을 꺼내먹는 등의 끔찍한 이야기등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구미호 전설은 하나로 응축된다. 바로 인간이 되고 싶었던 구미호가 우연히 한 순진남을 도와주곤, 그에게 반해서 그의 배필이 된다는 것이다. 순진햇던 총각은 구미호가 가져다준 보물로 졸부가 되자, 술집을 기웃거리며 가산을 다 말아먹고, 순박했던 가족들도 구미호를 구박하기에 이른다.

구미호가 인간이 되기 위해 모든 고통과 아픔을 참고 10년의 세월을 버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순박한 청년은 구미호와 했던 단 하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구미호에 대한 이야기를 구미호(변신한 아내)에게 함으로써, 구미호는 인간이 되지 못한다.

 

이에 구미호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데리고 사라진다는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의 내용이다. 우리가 아는 전설속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매우 매력적인 존재다.

정확히 언제까지 살 수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구미호는 거의 천년도 넘게 사는 걸로 여겨진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불로불사’에 가까운 존재다. 그리고 구미호는 인간으로 변신할 능력이 있고, 일정 조건만 지킨다면 인간도 될 수 있다.

우린 구미호를 보면서 서양의 한 괴물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뱀파이어다! 뱀파이어는 불로불사의 존재다. 또한 인간보다 30배이상 힘이 세고, 변신하거나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뱀파이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피를 빨아야만 한다. 뱀파이어는 원래 인간이었다가, 일정 의식을 치르고 다른 존재가 된다. 영화에 따라서 뱀파이어는 ‘바이러스’처럼 한번 물리면 변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하고, 일정 의식을 거쳐야만 될 수 있기도 한다. 전자의 입장은 뱀파이어를 병으로 인식하는 것이고, 후자는 뱀파이어를 ‘신에게 가까이 가는 길’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인식론을 바탕으로 뱀파이어는 할리우드를 비롯한 서양 영화계에서 자유롭게 변주했다. 때론 미친 듯이 살육을 하는 존재로, 때론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처럼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인 변주를 하기도 했다. 혹은 <트와일라잇>처럼 ‘금기의 사랑’으로 승화시켜 10대-20대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기도 했다.

 

뱀파이어는 금기의 존재이자, 인간에 가까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신에 가까운 존재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존재의 역설들은 매우 매력적인 소재로 작가들에게 다가왔고, 각자 나름대로 변주를 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구미호’는 바로 그런 존재다! 구미호는 우리가 아는 전설속의 존재 중에서 가장 명확한 존재감을 가진 생물이다. 여우의 형상을 하고, 흰 소복을 입은 채 날카로운 손톱으로 사람과 짐승음 죽이고 간을 꺼내 우적우적 먹으면서도, 인간에 의해 배신당해 피눈물을 삼키면서 산속으로 사라지는 이중적인 모습은 너무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구미호는 예쁜 여자로 변신할 수 있는 특이점이 있다. 역대 구미호 역할을 맡은 인물만 봐도, <구미호외전>의 김태희-<구미호>의 전혜빈-<구미호:여우누이뎐>의 한은정-<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신민아까지. 당대를 대표할만한 미인들이 구미호역을 맡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인간을 가장 사랑하지만 그 인간에 의해 배신당한다. 10년 동안 오로지 한 남자의 아내로서 모든 것을 바치지만, 단 하나의 약속마저 깨버린 남편 때문에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 존재. 남편을 죽일 수도 있지만, 그저 아이만 데리고 사려져버린 전설속의 존재. 인간을 사모하고 가장 오랫동안 바라봤기에, 인간의 이중성을 그대로 객관적으로 그릴 수 있는 존재.

인간에 가깝지만 인간이 아니기에 일정 선까진 다가갈 수 없는 존재. 인간을 한손에 으스러트릴 정도로 힘을 가진 위험하지만, 너무나 매력적이라서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매력을 지닌 구미호는 어찌보면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전설’외엔 영상화되지 않았었다.

불과 한달 간격으로 TV에서 ‘구미호’를 소재로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은, 구미호의 매력과 가능성을 알아본 작가와 제작진의 시도라 할만하다. 장담컨대, 구미호는 서양의 뱀파이어만큼이나 우리 영화와 TV에서 다양한 변주를 할만큼 매력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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