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정보화 시대, 우리의 생각의 크기는?

朱雀 2010. 11.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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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위키백과

어린 시절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의 풍경은 무척 단조로웠다. 신문이나 잡지 등을 읽거나 음악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풍경 속에 노트북과 핸드폰이 들어온 것은 겨우 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무척이나 빠른 기술의 변화는 노트북에서 타블렛 PC로, 핸드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진화되었다.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은 앱스토어를 통해 다운 받은 어플로 게임부터 각종 재미난 것들을 할 수 있다. 타블렛 PC로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다양한 작업을 하는 것은 이젠 더 이상 지하철에서 낯설거나 신기한 풍경이 아니다!

 

비록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가 없어도, 어떤 이들은 PSP나 PMP로 영화나 미드를 보고, 혹자는 DMB로 어제 놓친 방송을 보면서 히히덕거린다. 나는 그런 풍경을 보면서 늘 걱정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의 생각의 크기다! 이제는 하늘로 돌아간 거장 백남준의 작품 중에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가 있다. 총 12개의 TV를 통해 달의 모습을 비추는 이 작품은 백남준 선생이 어린 시절 달을 보면서 ‘우리 민족의 TV였다’라고 생각한 것에서 출발한다.

 

왜 하필이면 달을 가지고 백남준 선생은 TV라고 했을까? 거기에는 일본열도를 휩쓴 카라도 소녀시대도 나오지 않고, 재밌는 예능도 막장드라마도 방송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달을 보며 다들 상상의 나래를 폈기 때문일 것이다. 달 뿐만 아니라 밤하늘의 별까지 보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견우와 직녀 이야기,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 등의 영웅이야기들. 우린 달을 보면서 갖가지 상상을 하고 후손에게 이야기를 남겼다. 그것은 영감이 되어 때론 위대한 문학 작품의 모태가 되었다. 혹자는 달을 보면서 꿈을 키워 과학자가 되었다.

 

달은 사실 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비추는 지구의 위성일 뿐이다. 그러나 광활한 우주에 홀로 크게 빛나는 그 모습은 우리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했다. 오늘날 우리가 지하철에서 보는 디스플레이의 크기가 아무리 크다해도 겨우 15인치 내외일 것이다. 그나마 대다수가 갖고 있는 핸드폰의 화면 크기는 3-4인치 정도일 것이다.

 

잠시 여기서 벼룩이야기를 하고 싶다. 뜬금없겠지만 조금만 참고 들어달라!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벼룩에겐 한 가지 대단한 능력이 있다. 바로 제 몸 크기의 약 103배까지 뛰어오르는 능력이다. 만약 180센티의 성인남자라면, 약 185미터까지 뛴다는 것이니 놀랍지 않은가?

 

근데 벼룩을 각각 제 몸 크기의 30배-60배-105배 상자에 넣으면 어찌되는 줄 아는가? 몇주 후 상자에서 풀어주니 벼룩들은 각기 30배-60배-105배 높이로 뛰었다고 한다. 그전까지 벼룩들은 모두 약 103배까지 뛰었던 녀석들이었다.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은 바로 ‘환경’ 때문이다!

 

상자의 크기가 환경적 한계로 작용했고, 30배와 60배 상자에 들어간 벼룩은 제 능력보다 훨씬 낮은 크기에 적응되고 만 것이다. 반면 105배 상자에 들어간 벼룩은 상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기에, 결과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고 말았다.

 

물론 몇인치에 불과한 휴대용 기기를 보면서도 대단한 상상을 하는 인물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받고, 더더군다나 우리가 능동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달이나 밤하늘과 달리, 휴대용 기기들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들고 거기엔 우리의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저 웃거나 재밌어하거나 흥미로워하거나 등의 단조로운 반응만 보이면 될 뿐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밤하늘을 보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냥 행복하고 이것저것을 상상하던 시기, 모든 것이 풍족해서 지하철에서 영화를 보거나 인터넷 서핑이 가능해진 편리한 세상.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역설적으로 반비례해서 작아진 것은 않았는지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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