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도올 김용옥, 중화사상을 설명하다!

朱雀 2011. 9.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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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사상 혹은 중화주의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오늘날 중국이 자신만이 세계의 중심이라며 시건방을 떠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중화주의는 중국 자국민만을 위한 내셔럴리즘으로 쓰이는 게 사실이다. 중국인들이 얼마 전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타이)를 놓고 일본과 외교분쟁이 벌어지자,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펼친 사실이나, 이를 CCTV를 비롯해 중국정부가 지지하는 모양새를 띤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선 중화주의=국수주의로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중화주의가 단순히 중국의 국수주의에 지나지 않을까? 일전에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중화주의(혹은 중화사상)는 자신이 만든 신문에서 논설위원으로 활약한 양계초가 위대한 우리 중화민족은...’이라면서 만들어낸 용어로서, 기껏해야 그 역사가 100여년이 되지 않는 말이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중화주의가 중국에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넌센스다!

 

양계초가 활약하던 시절의 중국은 몹시 혼란하고 어려운 시절이었다. 청나라는 아편전쟁으로 인해,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의 침탈로 인해 극심한 수탈을 겪고 있었다. 심지어 미개한 나라로 여겼던 일본조차 엄청나게 서구문물을 배워서 신흥강국이 되어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중국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깡그리 무너뜨리고 말았다. 자존심만 무너졌는가? 중국 국토의 절반 이상이 식민지가 되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의 중심이 되어야할 황실과 조정은 그저 권력지키기에 급급했고, 지방관리들은 서구열강의 앞잡이가 되어 길길이 날뛰었다. 이런 상황에서 굶주리고 분노한 백성이 도적떼가 되고, 이후 태평천국의 난과 의화단운동 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극심한 혼란기에 지식인이었던 양계초가 중화를 들고 나온 것은 물론 어느 정도 자국민족주의가 있었겠지만, 단순히 그런 사상으로만 보면 몹시 곤란하다.


-게다가 중국역시 빨리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루어야 하는 시대적 요청이 있었다. 자국민의 자긍심을 다시 일깨우고, 2천5백년간 제국으로서 영화를 누려온 중국의 자존심을 다시 일깨울 것인가?하는 물음이 양계초를 비롯한 당시 지식인들의 화두였다-

 

 

그렇다면, ‘중화(中和)’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중용(中庸)>에서 나온 말이다. <중용> 1장에 보면,

 

喜怒哀樂之未發 謂之中 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發而皆中節 謂之和 발이개중절 위지화

 라는 구절이 있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풀이했지만 이란 말은 그저 단순하게 가운데를 뜻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희노애락이 발현되기 이전의 상태를 이라 했고, 이것이 상황에 맞게 발현되는 것이 라고 했다.

 

 

이건 대단히 위대한 말이자, 대단한 사상이다! 우리는 흔히 중용이라고 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 때문에, 모든 감정의 중간쯤으로 이해한다. 대표적인 예로 비겁과 만용의 중간이 용기라는 식이다. 그러나 동양사상에선 이런 중간적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중용>에서 말하는 ()’이란 상태는 감정이 발현된 후가 아니라 그 전의 상태이며, ‘()’란 그 감정이 상황에 맞게 발현됨으로써 조화를 이룬 상태를 말한다. <중용> 1장의 그 뒷구절에선 중화의 일치에 이르게 되면, 천지는 제자리를 찾고 만물은 저절로 길러진다라는 어마어마한 뜻을 이야기한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화를 조화를 의미하며, 조화란 부조화라는 현실을 전제로 성립한다고 정의했다. 이 말은 현실정치를 의미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조화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온갖 이유로 사람들은 서로 대립하고 싸운다. 토지보상금을 놓고 주민과 시공사가 싸우고, 전세금을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싸운다. 맛있는 반찬을 두고 오빠와 동생이 싸운다. 복지를 놓고 국민과 정부가 대립한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조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일컫어 중화라 한 것이다!

 

김용옥 교수는 동양의 철학이 아니라 그저 신선놀음이나 하는 현실과 괴리된 철학이 아니라 현실철학이자 실천철학임을 강조한다. 하여 정치의 궁극은 중용의 정치다. 그것은 치자(다스리는 이)와 국민간의 상호적 중절을 의미한다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이렇듯 중화주의는 단순히 중국의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아니라 대단한 철학을 바탕으로 한 단어인 것이다. 중화주의를 단순히 단어 뜻으로 생각하거나, 오늘날 중국이 하는 몇 가지 행태만을 가지고 단순하게 중국을 판단한다면, 우린 오늘날 중국에 대해 대단한 오판을 저지를 수 있다.

 

중화(中和)’라는 단어 하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가 과연 객관적으로 중국을 이해하고, 21세기 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바로 옆나라로서 제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그건 닭을 봉황이라 하고, 미꾸라지를 보고 용이라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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