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종영된 ‘결못남’이 못내 안타까운 이유

朱雀 2009. 8. 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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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결혼 못하는 남자>(이하 ‘<결못남>)가 전국 시청율 8%의 성적으로 결국 조용히 퇴장하고 말았다. 초반에 <대장금>의 지진희, <해운대>의 엄정화, <꽃보다 남자>의 김소은등이 출연하며 화제를 모은 것과 달리 너무나 조용한 퇴장이었다.

어찌보면 <결못남>의 한자리수 시청율은 당연한 결과다. 주인공 조재희(지진희)는 잘 생기긴 했지만 재벌집 사장님도 아니고 그저 조금 돈 좀 잘 벌고 성격 괴팍한 건축사에 불과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이긴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집에 사람을 들이지 않을 정도로 괴팍한 인간이며, 40 평생 여자 한번 사귀어본 적 없는 문제적 인간이었다.

반대로 그와 사랑에 빠지는 장문정(엄정화)는 결혼하고 싶어하는 40대 골드미스다. 의사인 그녀는 첫 사랑의 실패 이후 남자와의 만남에 콤플렉스를 가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선을 보기 위해 나가는 자리에는 언제나 폭탄남들만이 득실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의사라고 해도 이제 40인 그녀는 재취자리가 아니면 다행일 정도로 만남업계에선 ‘퇴물’에 불과했다.

<결못남>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매우 신선하게 여긴 것은 20대도 30대도 아닌 40대 주인공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들은 결혼에 별 관심이 없거나, 관심은 많아도 제대로 만나는 사람이 없는 뭔가 결함이 있는 인간들이다. 어찌보면 당당한(혹은 그렇게 보이기 위해 애쓰는) 싱글남과 싱글녀의 삶을 비교적 사실적으로(때론 코믹하게) 그려냈다는 것에 <결못남>의 의미는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못남>은 일본 원작 드라마를 차용한 탓인지 문제 또한 많았다. 국내 실정과 맞지 않은 의사지정제와 기찻길과 DVD대여점 등의 배경장소 등을 창조적으로 재탄생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활용한 점은 드라마의 현실화에 치명타를 가하는 세부묘사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결못남>의 치명타는 로맨틱 코미디물임에도 남녀 애정관계가 3각 4각을 이루거나 (혹은 다른 식의) 특별한 사건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떤 면에서 <결못남>은 착한드라마다. 여기선 소위 막장 설정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역으로 이야기하면 ‘다소 심심할 정도’의 진행이기도 했다.

조재희는 여난이라고 불려도 좋을 만큼 무려 네 명의 여성에게 대쉬를 받는다. 8년째 자신만을 바라보는 윤실장(양정아)가 첫 번째요, 나중에 사랑을 고백하는 옆집 처녀 유진(김소은)이 두 번째다. 마지막은 우연히 알게 되는 업소녀인 전혜빈이다. 그중 조재희가 가장 먼저 빠지는 인물은 전혜빈이다. 업계에서 일하는 그녀는 능수능란하게 조재희를 리드하며, 팜므파탈적인 매력을 뽐낸다.

그러나 그건 한순간이었다. 자신에게 비싼 옷을 선물해달라는 그녀를 보곤 조재희는 단칼에 “그만합시다”라며 관계를 끝낸다. 그 이후 그녀가 전화연락을 하거나 마주치는 일이 없을까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장문정과 사랑의 라이벌 구도를 이루지 않을까 싶었던 매력적인 옆집 아가씨 유진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냉담하다. 15화에서 몸을 던져 껴안았음에도 오히려 이를 물리치고 장문정과 자신의 사이를 강변할 정도다. 심지어 윤실장의 경우는 장문정과의 사이를 눈치채고는 혼자 속을 끓이다 결국 혼자 정리하는 다소 슬픈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혹의 40인 탓일까? 조재희는 다른 여자와의 관계로 장문정과 삐걱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삐걱하는 것은 서로의 성격이 워낙 다른 탓에서 기인한다. 그토록 남을 자신의 집에 들이지 않던 조재희는 마침내 사랑하는 그녀를 집에 초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녀가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면 바로 들어가 수건을 다시 바르게 걸고, 주방에서 컵을 꺼내면 다시 열어 정리할 정도로 못 견뎌한다.

<결못남>은 너무나 인스턴트화된 삶에 익숙해져 서로간의 소통을 잊은 도시인을 위한 우화다. 고깃집에 당당히 혼자 가서 음식을 시켜 먹는 조재희는 남과의 소통을 단절한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다. 물론 조재희는 그런 삶을 비참하게 여기지 않고 당당하게 여김으로서 시청자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반면 장문정은 조금 다르다. 그녀는 친구들이 이제 시집가고 애까지 딸린 상태라 쉽게 만날 수 없는 처지다. 덕분에 그녀는 어린 친구인 유진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물론 <결못남>은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코미디물이지만, 뭔가 시청자를 포복절도 시킬 만한 임팩트는 없었다. 그저 ‘허허’거리며 조용히 웃을 정도였다. 결혼을 꿈꾸는 장문정의 모습은 당당한 현대여성을 그리지 못하는 한계를 그려냈다(게다가 그녀의 집은 지저분해서, 혼자 사는 여성은 비참한 삶(?)을 산다는 우리 시대의 편견이 그대로 작용했다).

그러나 또한 <결못남>은 많은 미덕을 지니고 있다. 소위 88만원 세대로 분류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전쟁이다. 설사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임시직이나 비정규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진이 초반에 겪는 일등은 우리시대의 아픔을 잘 드러냈다. 인턴직에 일하는 그녀가 우연히 접촉사고를 내고 500만원의 수리비를 청구 받고는 친구가게에서 밤새며 일하는 부분이 그러했다. 여기서 구구절절한 김소은의 연기는 빛을 발했다. <꽃남>에선 그저 금잔디의 친구에 불과했던 그녀는 당당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벽앞에 괴로워하는 이 시대 여성상을 훌륭히 연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가 정식 사원으로 취직하면서 그녀의 활약은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물론 김소은은 후반부에 조재희에게 사랑을 느끼고는 나름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폈치만 근본적으로 착한 성격 때문에 조금 행동하곤 스스로 물러났다. 엄정화의 연기는 좋은 수준이었다. 무리없이 결혼에 목말라하고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골드미스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는 건 무엇보다 지진희가 연기한 조재희다.

물론 그는 꽤 괜찮게 40대 싱글남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러나 그는 집에서조차 완벽하고 깔끔하게 꾸며놓고 살았다.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드러나듯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조재희였다. 코믹물임에도 조재희가 제대로 망가지지 않아 안타까웠다(외모가 되었든 상황이 그렇든지 간ㅇ 말이다).

물론 여기엔 일본 원작 드라마를 적당히 차용한 제작진의 무책임한 부분이 가장 클 것이다. 제작진은 일본 원작이 있는 만큼 적당한 선에서 현지화 시켰다고 변명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비겁한 변명이다. 아무리 원작이 있다 하더래도 얼마든지 우리 사정에 맞게 각색할 수 있다. <결못남>은 ‘창조적 재탄생’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덕분에 한자리수의 시청율을 기록하며 쓸쓸히 퇴장할 수 밖에 없는 비운을 맛봐야 했다.

<결못남>은 40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오늘날 남녀의 삶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보여줬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또한 주인공들 역시 무늬만 40대인 젊은 연기자들이 아니라 실제 나이대의 배우들이 연기했다는 점에서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한다 할 수 있겠다. 건강한 이 시대의 사랑과 일을 그려낸 <결못남>은 그러나 완벽하게 일과 사랑을 그려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좀 더 과감하게 웃음을 유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절반의 실패’란 타이틀을 안고 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소위 ‘막장’없이 건강한 웃음을 줬던 드라마가, 새롭게 시도된 로맨틱 코미디가 큰 반향 없이 끝났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결못남>은 고민없는 일본 인기드라마의 변형은 큰 인기를 끌 수 없으며, 아무리 매력적인 배우들이 등장해도 대본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보여준 교과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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