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이병헌보다 인상 깊었던 고 여윤계씨의 수상

朱雀 2010. 1. 1. 07:00
728x90
반응형


이변은 없었다. 대다수가 예측한 대로 KBS의 연기대상은 <아이리스>로 전국에 화제를 몰고 온 장본인이자, <지.아이.조>로 할리우드 입성에 성공한 이병헌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병헌보다 더욱 빛난 수상자가 있었으니, 이젠 세상을 떠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간 고 여운계씨의 특별공로상 수상이었다. 수상을 위해선 그녀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배우인 전원주씨가 나와 인상적인 말을 했다.


제겐 40여년을 함께 해온 친구가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따뜻하게 만져주며 용기와 희망을 주었고, 내가 기쁠 때 누구보다 기뻐해준 나의 친구 여운계. 48년이란 긴 세월을 연기생활을 하면서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도 열심히 연기해온 우리 여운계, 지금은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국민 정신, 연기에 대한 정신은 영원히 남아서 제 평생 여운계같은 친구를 가졌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여운계를 대신해 대리수상을 하기 위해 나온 딸 차가현은 생전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줬다.



배우 여운계가 사람들에게 끝까지 연기하는 사람이었다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죽을 각오로 무대에서 연기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죽는 연기를 하고 싶다. 배우를 천직으로 아셨던 어머니. 배우 여운계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우 여운계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운계는 1940년 생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 <대장금> 등에 출연하며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던 여운계는 저예산 영화 <마파도>에 출연해 중견 여배우들만의 힘으로 300만 흥행을 이끌어내며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모두가 우습게 보았던 작품을 -그리고 모두가 우습게 보았던 다섯 중견여배우들이 뭉쳐 이뤄낸 쾌거였다- 성공으로 이끈덴 누구보다도 그녀의 공이 컷다.

여운계는 2007년 <며느리 전성시대>를 하던 중 신장암에 걸려 치료를 위해 잠시 하차했다가 다시 복귀해 연기혼을 불살랐고, 2009년엔 폐암 진단을 받은 상태에서도 <장화홍련>에 출연해 마지막까지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그러나 이번엔 병마와 싸워 이기지 못하고 결국 지난 5월 22일 향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파도>로 젊은 여배우들만 각광받는 시대에 중년 연기자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고, 올해 <마더>의 김혜자씨의 열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좋은 작품에서 멋진 연기가 기대되었던 보석 같은 배우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점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때론 한없이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인자한 할머니로, 때론 치매에 걸린 노인으로, 때론 표독스런 모습으로 팔색조 같은 연기를 선보인 여운계의 생전의 모습과 죽는 순간까지 배우이고 싶었던 그의 자세는 후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리라 본다. <KBS 연기대상> 아니 올해 펼쳐진 모든 시상식에서 가장 빛난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