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21세기 한국인은 영웅 혐오증?

朱雀 2010. 11. 6. 07:00
728x90
반응형



동명영화로도 제작된 알랜 무어의 대표작 <왓치맨>, 여기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그들의 자경활동에 불안을 느낀 권력자들에 의해 제정된 ‘킨법령’ 때문에 은퇴하고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왓치맨>과 <인크레더블>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통제될 수 없는 힘’이란 점 때문에 모든 이들의 경계대상이 된다. 이러한 시선은 오늘날 대다수의 슈퍼 히어로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영웅을 한편으론 열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두려워 하는 데는 이런 것도 작용하지 않을까?

 

Ji Sung Park Manchester United 2010/11 Manchester United V Tottenham Hotspur (2-0) 30/10/10 The Premier League Photo: Robin Parker Fotosports International Photo via Newscom

-사진 출처: PicApp

한때 박지성과 김연아를 향한 집요한 기사와 악플들을 보면서 너무나 속상한 적이 있었다! 맨유에서 벌써 5년째 활약중인 박지성이 누구인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선 4강 신화를 이룩하게 만든 장본인 중에 한명이며, 우리에겐 꿈이었던 맨유에 입단해서 퍼거슨 감독의 신임하에 호날두와 루니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활약하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김연아는 피겨 불모지에서 태어나 동계 올림픽 금메달이란 전무한 진기록을 세운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자 ‘피겨퀸’이다. 이 두 사람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인터넷 유행어인 ‘까임방지권’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김연아는 오서 코치와 결별한 이후로 ‘은혜도 모르는 제자’ 같은 식으로 국내 언론과 네티즌들에게 공격을 받았고, 심지어 그녀가 여러편의 CF에 출연한 것을 가지고도 억울한 공격을 당해야 했다.

 

박지성은 포지션이 미드필더이지 공격수가 아님에도, 뻑하면 그의 골득실을 가지고 국내 일부언론들은 (그를) 흔들어 대고, 최근 부상에 시달릴 때도 틀 그렇듯 ‘맨유 방출설’을 들고 나왔다.

 

NEW YORK - OCTOBER 12: Olympic figure skaters Yuna Kim and Michelle Kwan attend the 31st Annual Salute to Women in Sports gala at The Waldorf-Astoria on October 12, 2010 in New York City. (Photo by Bryan Bedder/Getty Images)

-사진 출처: PicApp


내가 기가 막힌 부분은 국내 일부 언론의 태도야 그렇다 치더라도, 거기에 달리는 네티즌들의 댓글이다. 물론 침묵하는 대다수는 박지성과 김연아를 응원하고 있다고 믿긴 하지만, 박지성과 김연아를 공격하는 악플러들을 볼때마다 21세기 한국인들은 ‘영웅 혐오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된다.

 

대저 ‘영웅’이라 무엇인가? 굳이 국어사전의 도움을 빌리지 않아도 그들은 보통 사람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때론 길을 가다가 억울한 이의 사연을 듣고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자신이 상하거나 심지어 죽는 것도 마다치 않고 다른 이를 돕는 이들이다.

 

영웅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산다는 점에서 더욱 멋지다 하겠다! 사실 어느 면에서 보면 박지성과 김연아의 삶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다. 그들은 각자 축구와 피겨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기 위해, 평범한 인간의 행복을 모두 포기했다. 심지어 그들은 ‘결혼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오직 훈련과 연습에만 몰두하며 마치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라면 억만금을 준대도 그런 삶은 살기 싫다!-

 

그렇다고 그들이 훈련만 하는 것도 아니다! 박지성은 자신의 수익을 유소년 축구 발전과 축구장 건립을 위해 쓰고 있다. 김연아는 수십 차례에 걸쳐 기부를 했고, 피겨 후배들을 위해 거액을 쾌척하고 있다.

 

비록 두 사람 다 거액의 출연료를 받고 CF를 찍고 있지만, 세금을 제대로 내고, 그 돈을 자신만이 아닌 사회를 위해 쓰고 있다는 점에서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그렇질 못하다!

 

그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는 열광하다가도 뭔가 ‘꼬투리’가 하나만 잡혀도 흔들어대는 듯한 요새의 전반적인 움직임은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리나라 전설이나 야사를 보면 흔히 왕들이 ‘태어날 때 날개나 뿔이 난 갓난아기들은 죽였다’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들이 모두 ‘역적’이 될까봐 두려운 탓인데, 이들의 공통점은 엄청난 힘을 가지거나 뛰어난 지혜를 가진 인물들로 대다수 성장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뛰어난 인물이 나올 것으로 점쟁이가 예언하면, 풍수지리설에 따라 특정 위치의 나무를 자르거나 말뚝을 박기까지 하는 모습에선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다.

 

위정자들의 경우, 뛰어난 인물이 나올까봐 걱정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왜 한국인들은 ‘영웅 혐오증’에 걸리게 되었을까? 혹시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나온 탓이 아닐까?

 

임진왜란 때를 보면, 비록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몽진을 갔지만,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권율 장군, 서산대사, 사명당, 홍의장군 곽재우, 김덕령 등등 수많은 영웅들이 나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이런 인물들의 행적은 다소 과장된 측면은 있지만, 이들의 기개와 능력치(?)를 따져보면 만약 조선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같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최소한 한 지역의 제후가 되어 다스릴 만한 인물로 평가되기 일쑤다.

 

그러나 조선이란 좁은 땅에서 태어난 탓에 그들은 서로 견제해야 했고, 전란이 끝나자 모함을 받아 귀향길에 오르거나 심지어 사약을 받아야 했다. 오히려 전투중에 죽은 이순신 장군은 행복한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반도의 특성상 여러 차례 외적의 침입을 받아야 했고, 영웅들이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백성을 위할 것처럼 하다가 나중에 나라를 세우거나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백성들의 처지는 무시한 채, 자기들끼리의 권력다툼만 빠진 탓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식의 전개는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 설득력이 약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웅문화가 너무 신격화 시킨 탓은 아닐까?

 

이순신
이순신 by lets.book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예전에 ‘KBS 역사스페셜’에서 인상 깊게 본 이야기중에 성웅 이순신을 다룬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면, 명랑해전에서 고작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전공이나, 총알을 뽑는 수술을 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야말로 화타에게 독화살에 맞은 한팔을 맡기고 웃으며 바둑을 둔 관운장 같은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방송에 나온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사뭇 달랐다. 그는 전투를 앞두고 죽을 만큼 두려워 했고, 자신의 병들고 약한 몸을 한탄하면서 ‘죽고 싶다’라는 숱하게 내뱉었다. 다른 이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 등은 내가 알고 있는 ‘성웅 이순신’과 거리가 멀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충효의 완벽한 상징은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임난 이후 조선과 현대 정부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모습이다! ‘난중일기’에서 개인적인 마음이나 연약한 인간임을 드러낸 부분은 철저하게 (조선시대때) 삭제 되었고,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모습은 제거된 채 철저하게 ‘성웅’으로서만 그의 모습이 집중조명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은 인간이라기 보단 거의 ‘신’에 가까운 완전무결한 모습을 띄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공직자나 공인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완벽’하길 주문하고 있다.

 

높아진 기대치에 영웅들이 부응하지 못하면 우린 그를 비난하게 된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정치인과 스타들의 연이은 스캔들이 우릴 ‘영웅 혐오증’으로 몰고 가는 건 아닐까 싶다.

 

정치인들은 국회의원 선거때는 자신이 국민을 위해 일할 일꾼이며, 신명을 다하겠다고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인사를 하며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막상 국회에 들어가면 국민은 잊어버린 채, 자신과 당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 그리고 매스컴등을 통해 우린 유력 경제인들에게 뒷돈을 받아 챙기거나, 후배나 사돈의 팔촌을 한 자리에 앉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뿐인가? 대중의 인기로 스타에 오른 인물들이 뺑소니 사고를 일으키거나, 주식을 팔아치워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혀 놓곤 끝까지 잡아떼다가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때만 ‘죄송하다’고 해놓고, 다시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하게 방송활동을 하는 그들을 보며 염증을 느끼게 된 건 아닐까?

 

결론적으로 21세기 한국인은 겉과 속이 다른 너무나 다른 영웅들을 너무 많이 봐온 탓에,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울러 ‘스포츠 스타’처럼 자신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박지성과 김연아 같은 영웅들도 너무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면, 뭔가 ‘억압받을 것 같은’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하게 된건 아닐까?

 

그리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는 검찰에서 말하는 비리혐의를 심지어 진보언론인 한겨레까지 나서서 보도하다가, 그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후에야 모두가 반성하고 추모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영웅은 살아있는 영웅이 아니라, ‘죽은 영웅’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다소 끔찍한 생각마저 해보게 된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