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하이킥’을 영화화하면 ‘티끌모아 로맨스’?

朱雀 2011. 11. 1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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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로맨스 영화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다. ‘왜?’ 냐고 물으면 조금 곤란하다. 그건 마치 내가 <신들의 전쟁>을 보는데, 여자친구에게 ‘꼭 꼭 꼭 같이 보자’고 조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여친께서 2시간동안 쇼핑하는데 같이 따라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친께선 원래 <너는 펫>이란 영화를 보자고 했다. 그러나 도저히 그건 남자의 자존심상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우린 결국 옥신각신했고 서로 타협을 본 작품이 <티끌모아 로맨스>였다. 사실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송중기와 한예슬 주연의 영화는 왠지 두 주인공의 꽃미모에 기댄 허약한 영화라는 선입견이 머릿속에서 슬금슬금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이후 부터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정 부분 포함하고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그런데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런 내 생각이 얼마나 형편없는 선입견인지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송중기가 평상에 누워 자다가 한예슬에게 ‘이거 나 가져도 되요?’라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대낮부터 맥주에 취해 자던 송중기는 엉겁결에 ‘네’라고 대답하고, 한예슬은 가방을 고쳐메고 뛸 준비를 한다.

 

‘바로 앞에 있는 데 왜 저리지?’는 생각은 곧 카메라의 시선이 바뀌면, 두 사람의 거리가 건물 대 건물 사이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있는 힘껏 달린 한예슬은 건물의 옥상에서 옥상을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마치 <매트릭스>의 중력을 거부하고 빌딩과 빌딩사이를 뛰어다닌 네오와 트리니티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이처럼 <티끌모아 로맨스>는 발칙함과 상식을 깨면서 시작한다. 그런 한예슬을 보며 놀라워 하는 송중기의 연기는 <뿌리깊은 나무>에서 젊은 세종대왕의 연기로 신선한 충격을 줬던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티끌모아 로맨스>는 짧게 평하면 ‘88만원 세대’의 일과 사랑이야기다. 그걸 풀어가는 과정은 몹시 유쾌하지만 보는 이의 가슴을 무척 아프게 한다. 예를 들어볼까? 송중기는 벌써 면접에만 번번히 떨어지는 낙방거사지만, 그 와중에서도 여자를 꼬시고 잘 생각만 하는 남자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말이 안된다. 왜? 송중기같은 꽃외모를 가진 이가 여자를 꼬시는 일은 너무나 쉬워야 정상이 아닌가? 그러나 웬걸? 재력을 중요시여기는 동호회 여성들은 송중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송중기가 ‘SK’에 입사했다고 뻥을 치고 나서야 목표했던 여성이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

 

<티끌모아 로맨스>는 그러나 거기서 약간의 반전을 준비한다. 송중기는 마침내 그녀의 집에 들어가서 하룻밤 거사를 치루기 직전까지 다가가나, 편의점에 콘돔을 사러갔다가 500원이 부족해서 피눈물을 뿌리면서 돌아서게 된다.

 

<티끌모아 로맨스>의 웃음은 그런 식이다. 한예슬은 자신의 돈을 맡겨놓은 펀드매니저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돈이 드는 데이트가 하기 싫어서 하루종일 한강주변을 걷는 말도 안되는 데이트를 진행한다. 그런 모습은 웃음이 나오지만 동시에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송중기와 한예슬이 사는 곳은 달동네로 조만간 헐리기 일보 직전이다. 한예슬은 이를 이용해서 세입자인 송중기가 사는 곳의 권리를 집주인으로부터 사와서 돈을 받아챙기고, 그게 마음에 걸려서 집세가 없어서 쫓겨난 송중기와 두달간 ‘500만원을 벌게 해준다’라는 조건하에 함께 지내가 된다.

 

물론 이런 설정은 두 남녀가 함께 지내면서 불꽃을 튀기게 하기 위한 조건이지만, 그 과정은 웃음을 유발한다. 한예슬은 송중기의 물건중 꼭 필요한 물건을 세 박스만 챙기게 하고 나머지는 고물상 등에 팔아치움으로써 약 4만원이 넘는 돈을 벌게 해준다.

 

이후 한예슬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맛집 프로에 나왔다는 가짜 판넬과 연예인 사인을 가짜로 해서 팔아치우고, 폐가에서 쓸만한 물건들을 찾아내서 최신 유행(?)하는 사설 박물관 등에 팔아치운다. 매력적인 자신들의 목소리를 활용해서 자동차에서 물건을 팔 때 틀어주는 테이프의 목소리로 활용한다. 때론 저녁 공원에 전구가 나가게 함으로써, 주민들이 야광볼을 살 수 없게끔 하는 온갖 기발한 방법이 동원된다.

 

영화를 보면서 ‘아! 저건 정말 실제로 가능하겠는데’라던가 ‘아! 일부 맛집에 걸려있는 수많은 연예인 사인과 맛집 프로에 나왔다는 판넬등은 가짜겠구나’라는 씁쓸한 미소를 동시에 들게 한다.

 

한예슬은 송중기와 말하면서 세 가지 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중 하나가 ‘연애’다.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바로 돈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면에서 송중기와 한예슬이 연애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현실상에서 그들에게 이성은 줄을 설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설정은 오늘날 돈이 갈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꽃미모조차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씁쓸한 생각으로 돌아오게 한다. 심지어 이들이 술취해서 하는 대사중에 ‘2천원에 뽀뽀해준다’‘6천원에 안아준다. 누워서’처럼 위험한 수위에 이른 것도 있다.

 

이는 물론 이들이 돈에 맺힌 한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돈이 최고가 된 오늘날의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고 한다. 한예슬은 이미 2억 가까이를 가진 대단한 인물이다. 그녀가 이토록 돈에 집착하는 것은 5년전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빚 때문에 어머니의 유골을 제대로 납골하지 못한 설움 때문이었다. 반면 송중기는 어머니가 엄청난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음에도 별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전형적인 문제아 되시겠다.

 

<티끌모아 로맨스>는 영화를 보는 내내 웃게 만들고, 한예슬과 송중기의 능청스러운 연기 때문에 호감도가 상승하며, 끝내는 감동도 어느정도 받게 되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하이킥>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만약 <하이킥>이 영화화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고 상상해보곤 했다. <티끌모아 로맨스>는 그런 결과물로 자꾸만 상상하게 되는 작품이다.

 

<하이킥>을 본 이들은 동의하겠지만, 지나칠 정도로 현대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탓에 일부 시청자들이 불편해할 정도였다. <티끌모아 로맨스>은 약간 웃기기 위해 오버한 경우는 있으나, 오늘날 청춘들의 이야기를 그려냄에 있어서 과장이 별로 없다. - 그 지점이 너무나 슬펐다. '이건 오버야'라고 외치고 싶었으나, 너무나 사실적이라 오히려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별로 마음에도 없는 남자가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이유 하나로 어떻게든 꼬시려고 하고, 이미 헤어졌음에도 비싼 명품 구두를 사주겠다는 남자의 말에 나오는 극중 여성의 모습은 매우 씁쓸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영화 초반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신장을 팔까?’하고 고민하는 송중기의 모습은 그 자체로 너무나 오늘날 젋은 세대의 처지를 사실적으로 반영해서 그 자체로 끔찍하게 다가온다.

 

<티끌모아 로맨스>의 결말은 의외로 교훈적이다. 그래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약간의 사기성을 갖추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선한 한예슬-송중기와 달리, 한예슬을 돈을 맡아서 관리해주던 펀드매니저가 사기치고 달아났을때는 현실에 대한 풍자 때문에 헛웃음이 나왔다.

 

국내의 저축은행사건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등은 금융권의 모럴 해저드로 벌어진 일이 아니던가? 특히 모저축은행의 경우, 견딜 수 없는 대출을 마구잡이로 하고, 문을 닫기 일보직전 극소수 VIP를 불러서 원금을 상환해주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가? 반면 몇 년에서 몇십년 동안 시장에서 뼈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은행직원의 말에 속아 채권등을 산 이들은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는 황망한 상황에 이르지 않았던가?

 

<티끌모아 로맨스>는 단순한 로맨스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작품은 오늘날 세태와 상황을 매우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이를 통해 슬픈 웃음을 그려낸다. 어떤 면에서 <티끌모아 로맨스>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비롯한 흑백 무성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대공황 속에서 공장의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노동자의 현실을 우스꽝스런 찰리 채플린의 몸짓으로 승화시킨 작품처럼 말이다.

 


<겨울 나그네>를 보면서 송중기가 목놓아 울고, 한예슬이 울먹거린 장면은 감히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고 싶은 부분이다. 살펴볼수록 호감가는 보석같은 영화였다.
더불어 깨알같은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티끌모아 로맨스>가 <모던 타임즈>처럼 명작에 반열에 오를 지는 모르겠으나, 후손들이 2011년 한국의 상황을 알기 위해 참고삼아 볼 작품이 될 가능성은 농후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러나 <티끌모아 로맨스>의 미덕은 그런 심각한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희망이 없을 것 같은 상황속에서도 씩씩하게 일어나는 반전등에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영화를 평가하자면 ‘의식있는 로맨스 코미디’라고 부르고 싶다. 기대하지 않고 봤다가 월척을 낚은 느낌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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