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줄초상으로 끝낸 ‘뿌나’, 문제있다!

朱雀 2011. 12.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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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뿌리깊은 나무>는 소이-카르페이-강채윤-무휼-정기준 등이 모두 죽으면서 끝을 맺었다. 물론 <뿌리깊은 나무>에서 역사에 존재하지 않은 인물들이 죽음으로써 끝을 맺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기준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다! 소설가들이 등장인물을 가장 멋지게 퇴장시키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그를 죽이는 것이다!

 

어떤 인물이든 죽게 되면 비장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뿌나>의 결말에서 죽은 인물들을 보자! 소이는 한글의 창제부터 시작해서 해례본 작성까지 말그대로 한글 그 자체인 인물이다.

 

그녀는 독화살을 맞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해례본을 자신의 치맛폭에 적어놓고 모든 것을 강채윤에게 부탁하고 눈을 감았다. 강채윤은 소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스승같은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 반포식장에 달려갔다.

 

카르페이는 정기준의 명을 받아 혼자의 몸으로 왕을 암살하기 위해 반포식장에 나타났다. 대륙제일검이란 명성 답게 그의 앞을 막아서는 이는 없었고 무휼이 몸을 던져서 간신히 시간을 벌고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등장한 강채윤이 카르페이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죽임으로써 세종과 한글을 구해냈다. ! 근데 생각해보자! 꼭 이렇게까지 모든 등장인물을 죽여야만 했을까?

 

 

-카르페이가 아무런 대책없이 혼자서 세종을 암살하려 드는 장면은 어이가 없었다. 수하가 모두 몰살한 상황에서 정기준이 나중에 세종을 과연 혼자서 죽일 수 있었을까? 도대체 그 장면은 말이 되질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대륙제일검 카르페이는 겨우 조선의 결사조직의 우두머리에게 이토록 충성한 것일까?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책임져지지 않았다.

 
차라리 그곳에 있던 연두를 보고 어떤 상황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연두의 등장은 그저 다른 반전을 위한 장치에 불과해서 안타까웠다.

 

 

연두가 이미 다른 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부분은 소이와 세 궁녀가 유포하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아내는 밀본의 정보력과 행동력을 보았을 때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저 반전을 위한 손쉬운 장치였다는 비판외엔 할말이 없었다. 물론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인 것은 맞다. 동시에 너무나 반전을 위한 반전이었다고 외엔 할 말이 없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죽음이란 손쉬운 해결책을 취했다는 공격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결말에선 나타나지만 밀본의 4대 본원이 된 심종수는 한글을 무시하고 천대하는 정책을 펼쳤고, 실제로 이후 조선 역사에서 훈민정음은 천대받았다.

 

만약 소이와 강채윤이 살아서 그런 광경을 보았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그저 가만히 백성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그냥 보고 있었을까? 목숨바쳐 글자를 만든 소이나 강채윤이나 가만히 지켜볼 인물들이 아닐 것이다.

 

물론 안다! 작가는 실제 조선왕조에서 한글이 천시당한 사실과 글자가 지니는 의미와 위정자층이 백성을 어떻게 짓누르는지 보여주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전개는 너무 무책임했다. 비록 소이와 강채윤이 죽었지만 아직 어린 연두는 미래의 희망으로써 얼마든지 다른 식의 희망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뿌나>는 밀본의 모사꾼이 한명회라고 밝힘으로써 밀본의 복수가 이루어진 식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그렇다면 세종대왕과  모든 이들의 희생과 행동은 의미 없는 쓸데없는 짓이었단 말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등장인물을 죽이는 것은 그들이 서로 얽혀서 일으킬 갈등을 사전에 없앰으로써 이야기진행을 수월케 만든다. 아울러 그들의 비장한 죽음은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게 한다.

 

그들의 죽음을 보라! 소이는 독화살을 맞았는데도 해례본을 쓰고, 소이의 죽음에 슬퍼하던 강채윤은 카르페이를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다가 피를 쏟으며 세종대왕의 한글반포식을 보며 눈을 감았다.

 

카르페이는 단 혼자의 몸으로 감히 대낮에 왕을 암살하려 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삼국지>의 조자룡이 아두를 구하기 위해 조조의 백만대군속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모습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했다. 적(?)이지만 정말 멋진 최후였다.

 

죽어가는 몸으로 세종을 찾아서 자신의 뜻을 밝힌 정기준은 또 어떤가? 그는 강녕전으로 들어가서 왕의 의자에서 생을 마치는 비장한 최후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게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정기준이 실은 조선의 숨은 왕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뿌리깊은 나무>는 분명히 한글을 소재로 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세종과 신하들의 알력을 그림으로써 사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그 전개방식과 끝맺음에서 기존의 진부함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우선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당연히 존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결말부로 갈수록 사대부가 글자를 반대하는 명분은 점점 사라져 버렸다. 처음에는 삼봉 정도전의 말을 빌리고, 정기준은 천년의 세월을 가지고 시험하려 든다며 무책임하다고 했다. 그러나 한글은 한자를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심종수가 했듯이 한자위주의 정책을 쓰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다. 오늘날 영어가 한글을 무시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원작에서처럼 명나라가 자국의 문자를 가지려는 조선을 방해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사익을 취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더욱 합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두 번째로 밀본과 정기준의 등장은 참신했으나, 이후 전개과정에서 너무나 지지부진해졌다. 정기준은 초반에는 정도전의 조카답게 조선에 대해 나름의 비전과 정치적 소신이 있었으나, 중반 이후엔 그저 한글에 반대만 하고 없애려고 하는 단선적인 악당으로만 그려져서 매력을 잃었다. 명분없이 그저 반포와 유포를 막으려는 그의 모습은 정당성도 설득력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주요등장인물을 줄초상시키는 것은 사극에서 너무나 자주 써먹은 사골식 결말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지만 비장미가 넘치고 멋진 퇴장방법이지만, 이렇게 줄줄이 저 세상으로 보내면서 작품의 완성도 역시 저 하늘로 올라간다. ? 이야기에 전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강채윤과 소이가 자녀를 셋이나 낳아서 기르는 환상 장면(?)은 해피엔딩을 기대한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여겨진다. 그건 아름답기 보단 놀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미 등장인물을 죽인 다음에 뭐하자는 건가? 이미 앞 장면에서 죽는 걸 보았는데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분명히 여러 가지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한석규의 명품연기 하나만으로 본방사수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참신한 시도는 시도로만 끝났다. <뿌리깊은 나무>는 우리에게 오늘날 사극의 한계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과연 우린 언제쯤 그러한 약점과 고질적인 문제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안타깝다.




네이버 메인에 12/24일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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