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휴식을 권하는 영화, ‘시간의 숲’

朱雀 2012. 4.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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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대인은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빡빡한 일상, 수 많은 사람들,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만큼 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특히나 여유가 없는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휴식사치와 동급으로 때때로 취급될 수도 있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돈을 써야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지니기에.

 

그러나 생각해보면 조금만 욕심을 내려놓고 간다면 훨씬 편안해질 수도 있다. <오직 그대만>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송일곤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박용우와 타카기 리나가 주연한 <시간의 숲>은 진부하지만 힐링 무비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가진 작품답게 두 배우는 실명으로 등장한다. <아이들>이란 영화를 찍은 박용우는 어느 날 문득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일본 가고시마 남단에 위치한 야쿠시마 섬. 그곳엔 무려 7,200년이나 된 삼나무 조몬스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작품을 보면서 놀라운 것은 박용우가 털어놓는 이야기들이다. 그건 대본에 적혀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전부 배우 박용우가 여태까지 지낸 삶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남자들만 있는 집에서 태어난 박용우는 여성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아름다운 여배우 타카기 리나는 엉뚱함과 솔직함으로 그와 우리를 위로한다.

 

<시간의 숲>은 제목처럼 시간이 마치 정지되어 있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온통 오래된 나무로 가득찬 숲에서 영상은 느리게 흘러가거나, 때론 정지한다. 게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의 실제모델이었다니. 보는 자체로 '한번 가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준다.

 

특별한 스토리 없이 두 사람의 여행궤적을 따라가기에 호흡은 느리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런 슬로우는 오히려 우리에게 휴식과 생각을 권한다. 경쟁사회에 익숙해진 우리는 뭔가에 공격적인 경향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그런 옳은 것일까? 그건 어디서 온 것일까?

 

박용우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배우로 자신을 내려놓기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인물을 용서하기라는 목적을 가진다. 박용우가 말했듯이 조몬스기를 보러 가는 그의 여정은 그저 핑계일 수 있다. 때론 여행은 가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목적 따윈 중요치 않으니 말이다.

 

박용우는 처음에는 함께 동행하게 된 타카기 리나 때문에 무척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둘이서 함께 여행하고 수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내는 것조차 개의치 않는다. <혈의 누>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고도 자신의 연기를 똥연기라고 칭하면서, 풀리지 않는 장면 때문에 고백하는 그의 장면은 무척이나 인간적이었다!

 

타카기 리나 역시 우리가 가지는 일본 여배우의 대한 환상과 더불어 여행안내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때론 어머니처럼 때론 여자친구처럼 박용우를 감싸는 그녀의 모습은 두 사람이 실제로도 연인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기자간담회에서 두 사람은 영화가 끝난 이후로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적이 전혀 없고, 나중에 제작진이 모두 모여 회식하는 자리에서 함께 만나서 그런 기대감(?)을 무너뜨리게 했다.

 

<시간의 숲>은 블록 버스터와 극영화와 익숙해진 우리에겐 낯설기조차 한 작품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깊은 숲속을 비춰주고, 야쿠시마 섬에서 사는 주민들과 축제 그리고 아이들의 소소한 이야기 등을 다룬 내용은 때론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정신없이 살아오는 과정에서 우린 정말 중요한 것은 잊고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영혼이 상처를 입고 지쳐있거나 병들어 있는지조차 잊게 될 수 있다. 그런 당신 아니 우리에게 <시간의 숲>96분 동안이나마 짧은 휴식이 되어줄 것 같다.

 

박용우는 영화 속에서 결국 조몬스기를 보지 못한다. 기상악화로 인해 갈 수 없는 길을 그는 욕심을 내서 가본다. 그러나 끝내 자연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는 7,200년이나 된 조몬스기를 볼 수 없었다. 여행의 목적이 상실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길잡이가 말한 것처럼 조몬스기는 오늘도 그렇듯이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풍경도 우리가 병들어 있다면 아무런 감흥을 줄 수 없다그 말이 영영 귀에서 떠나지 않는 작품이다.

 

tvN에서 제작한 <시간의 숲>은 오는 419일 관객을 만나러 갈 예정이다. 아마 소수의 관에서만 개봉될 것이기에 당신에게 약간의 부지런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부지런함이 전혀 억울하지 않은 작품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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