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되는<해운대>가 한국영화론 다섯 번째로 흥행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국가대표>도 5백만을 넘기며 모처럼 한국영화계는 신바람이 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연일 인터넷 신문기사엔 간만의 희소식으로 즐거운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몇몇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마냥 좋아하기엔 국내 영화계는 커다란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다. 산업기반이 취약한 국내 영화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해운대>가 오늘날 1천만이 넘는 관객을 돌파하는 데는 물론 시기적절한 마케팅과 윤제균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들을 흥행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제작과 배급을 맡은 CJ의 막강한 힘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 백만을 넘어 1천만 관객 돌파가 가능한 것은 멀티플랙스 극장이 우리 주변을 점령하면서부터 였다. 기존의 단관극장에서 벗어나 적어도 3-5개, 많은 곳은 10관이 넘어버리는 멀티플렉스는 그 상영관 수로 특정 작품은 10관중에 심할 때는 7-8개관에서 개봉하는 일명 싹쓸이 상영을 했기에 가능했다.
마치 미국 극장가처럼 초반에 엄청난 마케팅과 수 많은 영화관을 점령함으로써 오늘날 1백만 관객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낄 정도로, 5백만 이상 관객돌파 영화를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과연 이게 좋은 현상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진 못한 것 같다. 우선 일례로 2006년 한해 100편에 가깝던 국내 영화 제작편수는 2007년엔 80여편으로 줄더니 2008년엔 불과 50편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현재의 기형적인 제작과 배급에 우선 근거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영화 편수가 이처럼 줄어든 것은 그동안 과도하게 영화쪽으로 투자되던 자금들이 예상외로 흥행을 하지 못해 재미를 못 보자 빠진 것이 일단 크다. 이른바 투기성으로 제작되던 몇 년 전엔 아무것도 보지 않고 흥행 감독이나 배우만 참여해도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단지 흥행 배우와 감독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론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자, 많은 투자자들은 영화계에 발을 빼고 현재는 공연 등으로 옮겨간 상태다.
또한 국내 영화계에 멀티플랙스와 CJ등의 막강한 배급사가 등장하면 제작사에서 유통및 배급사로 파워가 옮겨가 버렸다. 우리나라의 극장개봉시 제작사와 극장주와의 수익 배분율은 5:5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극장이 2, 제작사가 8을 먹는 구조이며, 해외 영화의 경우 국내시장에서 제작-배급사가 6 :극장 4 수익배분율을 나눈다. 따져보면 상당히 불합리한 부분이다. 따라서 아무리 영화가 흥행해도 제작사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극장주의 주머니만 불리는 것이 현재의 구조다. 얼마 전 입장료가 1천원이 인상된 데는 이런 불합리한 관계구조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함이 크다. 한마디로 극장주들도 제작사들이 힘든 걸 알기 때문에 배분율은 고치지 않는 대신, 입장료 자체를 올린 거다(가장 좋은 방법은 국내제작사에서 요구했던 것처럼 최소 (제작-배급)6:4(극장)까지 보장하는 거다).
또한 국내 영화계엔 2차 부가시장이 붕괴된 상태다. 한때 전국적으로 4만개가 넘던 비디오 대여점은 현재 몇 천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나마 성인 남녀 중에 최근 3개월에 한편도 빌리지 않는 사람이 열에 여덟이 될 정도로 이제 ‘대여’ 시장은 완전히 사망상태다. 그럼 대여해서 보지 않으면 어디서 볼까? 안타깝게도 상당수는 ‘다운’받아 본다. 그것도 제작사에 그 돈이 가는 게 아니라 P2P 업체 등으로 돈이 흘러가는 상황이다. 다행히 최근엔 영화사들이 다운로드에 주목해서 불법업체를 단속하고 다운로드 시장을 개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극장 외에 다른 수입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이는 미국과 일본이 극장과 DVD 시장이 약 4:6 비율인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참담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이건 단순히 대여가 아니라 판매 시장이다. 미국과 일본은 영화를 사서 소장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따라서 극장에서 흥행을 하지 못했더라도 DVD 시장에서 손해 본 부분을 충분히 메꿀 수 있다. 이는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해주고, 감독과 영화사들이 보다 편하게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엔 극장개봉 외엔 다른 수입이 없기 때문에 개봉관수를 확보하는 데 사력을 다한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흥행성이 떨어지는 작품은 아무리 작품성이 좋아도 개봉관을 못 잡거나 심지어 개봉연기를 하다가 결국 1주일도 못 걸리고 내려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승자독식구조의 천민자본주의가 극장가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몇몇 감독을 비롯한 이들에게 제작 기회가 돌아가 때문에 제작 편수가 줄어들고, 그만큼 신인 감독과 배우들에게 기회가 적게 돌아가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지금 몇 편의 영화가 1천만, 5백만이 들었다고 좋아하기엔 국내 영화계는 취약한 산업적 구조와 기반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점유율도 높아지고 몇편의 영화 제작이 추가로 이뤄질 수 있지만, 대자본이 들어간 작품이 한 두편만 망해도 곧장 전체 영화계로 여파가 확장될 만큼 국내 영화계는 날이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그게 1천만 관객 돌파 영화를 다섯 편이나 가진 국내 영화계의 현주소다. 안타깝지만 그게 진실이다.
8/22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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