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준 ‘돈의 화신’

朱雀 2013. 4. 2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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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돈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 <돈의 화신>이 드디어 어제 종영했다. 마지막회를 본 소감을 묻는다면, 어설프게 화해와 용서를 하지 않은 부분을 매우 높이 사고 싶다.

 

차례로 나열하자면, 우선 SBC 방송국에서 잘 나가는 앵커인 고호국장은 복재인(황정음)의 제보로 자신이 예전에 이중만 회장 살인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려고 하자, 방송테이프를 훔쳐서 훼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복재인과 방송국 사람들이 나와서, 그의 그런 모습에 대해 질책하고 사표를 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고호국장은 울지만 그건 그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쳤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자신이 그동안 이룩해놓은 명예와 지위가 한꺼번에 날아가자 그 서러움에 운 것이었다.

 

죄를 지은 인물은 아니지만 전지후(최여진) 판사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녀는 원래 지세광(박상민)을 매우 좋아했고, 그를 서울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아버지에게 부탁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황해신용금고에서 147억원을 빼돌려서 스위스 비밀계좌로 넣은 사실을 알고 나서는 무척 고민한다.

 

자신에게 스위스 비밀계좌를 달라는 이차돈(강지환) 검사의 말에 몹시 괴로워한다. 전지후 판사는 검사 시절에도 누구보다 정의로웠고, 판사인 지금도 그러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파멸할 수 있는 증거를 앞에 두고 쉽게 넘겨주거나, 없애버렸다면 정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 할 것이다.

 

그녀는 고민 끝에 스위스 비밀계좌를 넘긴다. 권재규가 지세광을 총으로 없애려는 시도만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아마 자신의 손으로 지세광에게 가장 높은 형을 언도했을 것이다.

 

우린 정의에 대해 흔히 착각하는 게 있다. 정의도 세울 수 있고, 자신의 이득도 취할 수 있다고. 그러나 전지후 판사의 경우가 보여주듯이, 정의를 세우는 과정에서 우린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 과연 개인적 이득이나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지를 자신에게 물었을 때는 참으로 쉽지 않은 대목이다.

 

오히려 권재규처럼 자신의 아들이 지세광에게 살해당하자, 앞뒤 가리지 않고 법정에서 권총으로 살해를 기도하는 게 더욱 이해하기 쉽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손으로 원수를 단죄하려 하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은 벌써 2천년 전에 세워진 원시적인 법이지만, 사실 가장 현대인에게도 와닿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재규가 누구인가? 그는 이차돈의 아버지 이중만 회장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 오히려 지세광등과 모의해서 그의 재산을 빼돌려서 오늘날의 지위를 구축한 인물이 아니던가?

 

그는 애초에 정의를 입에 담은 자격조차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악행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할려면 애초에 죄를 짓지 않았다라고 말할 대목은 뻔뻔스럽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요즘 세상에 죄를 짓고 얼마나 뻔뻔하게 행동하는 이들을 우린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자신의 비서가 이차돈을 트럭사고를 위장해서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할 때, 자신이 시켰다고 말하는 부분이 오히려 반전에 가까울 지경이었다.

 

<돈의 화신>에서 주목할 부분은 정의를 실행하는 이차돈의 인생궤적이다. 그는 처음엔 돈에 환장해서 법을 어기는 이들의 뒤를 봐주면서 돈을 받으면서 슈킹의 달인이라 불렸다. 그러나 자신의 비리혐의가 드러나서 검찰에서 쫓겨나고, 어린 시절 사고로 잃은 기억을 찾으면서 복수를 꿈꾸기 시작했다.

 

사실 자신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서 재산까지 빼앗겼다면 몬테 크리스토 백작처럼 복수의 화신이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이차돈은 그런 과정에서도 정의 실현은 잃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지세광과 권재규를 법에 따라 합당한 처벌을 받길 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용서를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참으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인물이라 할 것이다. 지세광은 끝까지 그런 이차돈을 없애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의 그런 모습이 그의 캐릭터와 확실하게 부합해서 설득력이 있었다.

 

<돈의 화신>은 후반에 가선 너무 반전을 남발해서 흥미가 반감되는 구석이 많았지만, 마지막회에서 악인들이 용서를 비는 게 아니라, 파멸해 가거나, 끝까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었기에 인과응보란 말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100만부가 넘게 팔렸지만, ‘정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돈의 화신>은 재밌는 드라마로 정의실현의 딜레마와 정의가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가치인지 너무나 잘 보여줬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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