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물에서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이렇게 풍자하다니! 그저 놀랍다. 어제 <상속자들>에선 제국고로 전학온 차은상이 겪은 끔찍한 경험을 보여주었다. 차은상은 제국그룹 김회장의 배려로 사회배려자로 제국고로 전학을 오게 된다.
가정형편상 대학을 갈 수 없는 차은상은 어떻게든 제국고 졸업장을 손에 쥐어서 나중에 취직을 할 때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유하려고 한다. 그런데 제국고가 만만치가 않다!
우선 그녀가 학교에 다니기 위해 필요한 교복만 100만원이다! 아직 고등학생인 그녀로선 최소한 두달은 알바를 뛰어야만 모을 수 있는 돈이다. 게다가 특별교양비는 1학기분만 55만원인데다, 장비는 개인적으로 마련해야 돼서 그야말로 그녀를 더더욱 궁지에 몰아넣는다.
경제적인 문제는 오히려 쉬운 문제다. 제국고에 온 차은상은 숨막히는 계급사회에 직면하게 된다. 10년지기 친구이자 제국고에 먼저 와있던 윤찬영의 설명에 따르면, 제국고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먼저 경영상속집단! 말 그대로 회사를 물려받을 인물이다. 두 번째는 주식상속집단. 10대에 이미 주주로서 의결권을 가진 그야말로 부자들이다. 마지막은 명예상속집단. 이들은 아버지가 국회의원, 장관처럼 명예로운 이들이다.
윤찬영은 제국고에서 자신의 위치를 수드라이자 불가촉천민이라고 말한다. (엄밀하게 따지면 카스트제도에서 수드라는 네 번째이고, 불가촉천민은 네 번째 신분에도 못들어가는 다섯 번째지만) 윤찬영이 누구인가? 그의 아버지는 제국그룹의 비서실장이다.
따라서 얼핏봐도 어디가서 무시당할 인물은 아니다. 그런데 제국고에선 학생들의 부모들이 워낙 쟁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위(?)가 떨어지게 된다. 윤찬영의 씁쓸한 말을 통해서 우린 그가 얼마나 제국고에 적응하기 힘들었는지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다.
어머니가 제국그룹 회장댁에서 가사도우미를 하는 차은상으로선 학교 생활이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다. 왜? 졸부의 아들마저 왕따가 되어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놀림당하는데, 졸부도 못되는 차은상이라면? 그야말로 상상초월이 될 수 밖에 없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나오고 싶겠지만 졸업장이 필요한 차은상으로선 어떻게든 버텨야만 한다. 그런데 일이 자꾸만 커진다. 제우스호텔 대표 아들인 최영도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알바를 뛰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한다.
제국고에서 왕따학생을 괴롭히는 수장역할을 하는 최영도는 그 자체로 두려운 인물이다. 물론 정의감이 강한 차은상은 왕따학생을 도와주고 싶어하지만, 오히려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김탄의 차가운 조언 뿐이다.
바로 ‘약자옆에 서면 약자가 될 뿐이다’라는. <상속자들>에 등장하는 제국고는 허구의 공간이다. 그곳이 끔찍한 이유는 신분제도가 분명히 없는 대한민국의 계급주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린 종종 신문과 방송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볼 때가 있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자식은 시험도 안보고 외교관이 되거나, 아버지가 그룹회장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룹을 물려받는 것은 이제 대한민국에선 상식아닌 상식이 되어버렸다.
한쪽에선 현재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토익시험을 보고 어학연수를 나가면서 스펙을 쌓고 100:1이 넘어가는 취업경쟁에 나서지만, 다른 한쪽에선 편하게 놀고 먹다가 아버지가 누구라는 이유만으로 시험없이 당연히 그 자리를 차지한다.
분명히 대한민국엔 양반과 천민이란 공식적인 계급은 없건만, 부모의 경제력과 다른 이유로 자식들의 미래가 결정되어버리는 상황이다. <상속자들>은 어제 그런 대한민국의 끔찍한 현실을 제국고를 통해 보여주었다.
제국고에서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태보다 끔찍한 것은 제국그룹의 김회장이 예고편에서 보여주는 말이다. 그는 비서를 통해서 김탄이 차은상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차은상이 자신과 김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뻐저리게 알게 해주기 위해서 제국고로 전학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거기엔 그녀를 위한 배려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우린 소위 명문대를 가지 못해서 안달이다. 그러나 명문대를 갈 수 있는 이들은 상당수가 정해져 있다. 왜? 부모가 부자거나 국회의원이면 날때부터 미국 아이비리그를 목표로 공부와 교양에 힘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평균 두 개 이상의 알바를 뛰어야 하는 차은상 같은 가난한 이들은 애초에 공부를 통해서 ‘신분상승’이 불가능하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선생님에게 문의하자, 돌아오는 말은 차갑기 그지 없다.
그렇다면 제국고는 왜 존재할까? 간단하다. 제국그룹의 김회장 같은 이들이 ‘차별’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제국고를 나오면 명문대 진학은 물론이요 취직까지 탄탄대로다.
그러나 제국고에 진학하는 이들은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부모가 재벌이거나 국회의원 같은 엄청난 소위 상위 1%의 자식들이다. 애초에 그런 제국고에 일반인은 진학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배려자로 진학한다고 해도 턱없이 높은 등록금과 갖가지 교육비로 인해 감당하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신흥졸부의 자식이라도, 최영도 같은 재벌가의 자제들이 왕따를 하고 괴롭히기 때문에 견디기가 어렵다.
<상속자들>에선 김탄과 최영도가 현재 차은상을 놓고 대립중이다. 그러나 김탄은 왕따를 한명 정해놓고 괴롭히는 것을 만든 장본인이다. 최영도는 비록 아버지가 제우스 호텔대표지만 현재 아이들을 괴롭히는 인물이다.
물론 김탄과 최영도는 둘다 잘생겼고, 나름 삐뚤어지게 행동하는 이유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보다 약자를 괴롭히는 짓은 하면 안된다. <상속자들>에선 멋있어야할 두 인물이 과거에 했고, 현재에 하는 행동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현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로맨스물에서조차 이렇게 묘사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계급주의는 피할 수 없는 끔찍한 현실이 되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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