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미수다 베라논쟁, 문제의 책을 보다!

朱雀 2009. 10.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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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방송중인 <미녀들의 수다>에서 베라는 독특한 말과 행동으로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녀를 인터넷상에서 다른 이슈로 만나게 되었다. 바로 '한국 비하'사건이었다. 문제의 책은 그녀가 한국에 대해 쓴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이하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당시 독일어로 출판된 서적을 본 몇몇 네티즌들이 특정 문구를 의역해 인터넷에 올렸는데 이것이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지면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관련 링크(바람나그네님)

이와 관련되어 좀더 알고 싶은 분들은 위에 링크한 포스팅을 권한다. 이제부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미수다>에 출연해 우리에게 ‘베라’로 익숙한 베라 훌라이터는 1979년 독일 하일브론 태생으로 베를린과 파리의 대학에서 문학, 정치학, 역사학을 공부했다. 또한 호기심이 왕성하고 활동력이 강해 스물여섯살 때 베를린, 뉴욕, 파리에서 살아봤고, 일본와 아르메니아는 물론 카메론에서 일한적이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몽골을 지나 중국까지 여행했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한국이었다.

그녀와 한국과의 만남은 정말 우연이었다. 다른 독일인처럼 그녀 역시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88올림픽과 서울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한국을 찾게 된 것은 순전히 한 아시아 학생이 내놓은 설문지 때문이었다. 한국에 대해 묻는 설문지를 보고 그녀는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고, 한달 정도 한국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 한달이 하필이면 한참 더울 8월이라 그녀는 찌는 듯한 더위에 고생하고, 채식주의자인 그녀가 이용할 식당을 찾지 못해 편의점에서 며칠 동안 두유와 단팥빵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그 한달 기간동안 그녀는 ‘조’라는 한국청년을 만났고,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다. 한달 뒤 독일로 갔던 베라는 조를 만나기 위해 다시 20킬로 짐을 싸서 서울로 입성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다.

우리나라 방송에 <미수다>란 방송이 생겨난 계기는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졌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알고 싶어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가 보는 나’보다 ‘남이 보는 나’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궁금해 하는 동양인의 속성이 <미수다>가 탄생하게 된 계기일 것이다. 실제로 이웃 나라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미수다>같은 프로그램이 나와서 외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미수다>와 일본 프로가 다른 점중에 하나는 일본에선 외국인 패널들이 적나라하게 자신이 본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미수다>는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린 어느 순간부터 <미수다>에 나오는 ‘미녀’들이 각 나라를 대표할만한 인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저 한국말을 더듬더듬하는 외국 처녀가 한국 문화를 겪으며 느낀 재밌는 에피소드를 듣는데 열중하고 만다. 그러나 그녀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나라에 올만큼 견문이 넓고 생각이 깊은 이들이 많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베라 홀라이터 (문학세계사, 2009년)
상세보기

어쩌면 우리가 그녀의 책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이전에 친한파로 알려졌던 미즈노 교수가 나중에 ‘혐한류’ 책을 내며 험한파였음이 드러난 ‘배신’에 대한 경험이 떠올랐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폄하하거나 비하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술해서 오히려 느끼고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책이다. ‘에세이’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과학저서로 분류해도 될 정도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베라가 쓴 <잠 못 이루는 밤>은 한 독일여성의 비춘 서울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거기엔 우리가 감추고 싶거나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대다수 포함되어 있다. 베라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기 위해 애쓴다.

가령 예를 들어 베라가 한국에 와서 제일 놀란 것 중에 하나는 책을 통해 알던 ‘아시아인의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는 인상은 여지없이 깨지는 부분이다. 고작 십오분 남짓한 이화여대 첫 등굣길에서 그녀는 모르는 사람들이 그녀를 밀치고 가는 경험을 해야했다. 그것도 한마디 사과없이. 지하철도 마찬가지. 빈자리가 생기면 서로 밀치고 밀리는 경험을 처음 당한 베라는 당혹감에 휩싸인다.

한국어를 모를 거라 생각하고 외국인을 보면 시시콜콜 외모에 대해 감상평을 늘어놓고, 자신의 외국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대화를 거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당혹감은 늘어만 간다.

SKY대학을 가기 위한 학생들의 피나는 노력과 고난 그리고 그걸 부추기는 사회에 대해 분석하고, 한국식 ‘블라인드 데이트’인 맞선과 미팅들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해나간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수필이지만,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베라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통찰력이다. 그녀는 그냥 재밌는 경험 혹은 불쾌한 경험으로 끝날 수 있던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왜 그런지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쓴다. 마땅한 답이 없을 때는 ‘왜’ 그런지 자신만의 이론을 세워본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책은 빨리 읽는 사람은 두어시간만에 읽을 만큼 분량은 만만한 편이다. 그러나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베라는 한국인과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대해 메스를 대고 예리하게 해부해낸다. 그 과정에서 우린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중국인과 일본인을 무시하고, ‘한류’를 통해 우리가 일본을 앞섰음을 기뻐한다는 사실등이 드러난다.


베라가 책에 쓴 톤은 객관적인 입장을 띠려한 탓인지, 불편함을 넘어 종종 불쾌해질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정보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을 우리 앞에서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관련 전문가는 아니지만 베라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해 상당히 깊고 넓은 폭으로 분석과 통찰을 해낸다.

오늘날 우리에게 <잠 못 이루는 밤> 같은 책이 나왔다는 건 개인적으로 즐거운 일이다. 비록 서두에 밝힌 것처럼 베라는 이 책의 한국판이 나오기 이전에 언론의 호돌갑으로 잘못된 오역과 인용등이 넘치는 바람에 네티즌과 언론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말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오늘날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책이다. 베라의 시선을 통해 우린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창을 갖게 된 것이다. 많은 생각거리와 고민거리를 주는 단순한 수필로 볼 수 없는 무게의 책이다.

미수다 베라 논란이 하나의 논란으로 끝난 다면 매우 곤란하다. 우린 베라논란을 통해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네티즌 문화와 언론 플레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말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오늘날의 한국을 제대로 그려낸 책이라 여겨진다. 단순히 IT기술강국이거나 유일한 분단국가로 막연하게 알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생생한 경험과 체험을 통해 ‘살아있는 한국’을 편견없이 바로 볼 수 있게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흠 없는 나라’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단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에겐 불편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낸 책이 독일에선 나름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비록 스캔들을 일으키긴 했지만, 우린 <잠 못 이루는 밤>을 꼭 읽어봐야 한다. <미수다>의 출연진이 어느샌가 연예인이 되어 우리 사회를 그들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을, 그녀의 책이 대신 더욱 훌륭하게 우리를 비추는 창으로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가히 일본인들을 논한 베네딕트 교수의 <국화와 칼>에 비견할만한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매우 높다. ‘한국사회와 한국인론’이라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수준 높은 책이다. 베라 논란을 넘어서 오늘날의 우리를 보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리라 본다.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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