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선덕여왕'의 미실은 '슈퍼맨'의 대머리 악당을 더 닮았다!

朱雀 2009. 6. 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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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들까마귀님의 ‘선덕여왕, 미실과 조커는 배다른 남매?’란 포스트를 읽었다. 잘못된 약물복용으로 젊은 나이에 죽어 이젠 신화가 되버린 고 히스 레저의 ‘조커’ 캐릭터를 미실과 연결지어 비교분석한 점은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몇자 적어볼까 한다.

미실과 조커는 악당이란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바로 현실적인 지배욕구다. <다크나이트>의 조커에게 범죄란 놀이에 불과하다. 그가 창고를 가득 채운 돈다발을 불태워 버리거나, 배트맨에게 잡혀있는 상황에서 ‘매우 즐겁다’라고 광기로 얼룩진 웃음 소리를 내는 부분은 지금 봐도 소름끼친다.

왜냐하면 그에게 범죄란 단순한 유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배트맨은 조커에게 가장 좋은 놀이상대다. 자신이 이길지 배트맨이 이길지 알 수 없을 만큼 호적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커는 말한다. "난 너를 죽이고 싶지 않아. 내가 배트맨 너 없이 뭘 하겠어? 마피아 등치는 일로 돌아가라고, 아니, 아니, 아니, 아니야.. 너는, 나를 완전하게 해."

또한 조커와 미실의 다른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혼돈’이다. 조커는 자신이 모든 상황을 장악하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상태란 모든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상태다. 카오스(혼돈)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이런 그의 생각은 “약간의 무질서를 소개하지, 확립된 질서를 뒤엎으면 모든 것은 혼란상태가 되지. 나는 혼돈의 중개인이지, 그리고 말야 혼돈에 대해서들 아나? 그건 말야 공평한 거라고"라는 대사에서 잘 드러난다.

고현정의 미실은 다르다. 그녀는 권력을 철저히 탐하는 여인이며, 자신의 미색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이용해 모든 이들의 위에 군림하는 자다. 그녀가 그토록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드라마상에선 아직 설명하지 않았지만, 사서를 찾아보면 첫 사랑인 ‘사다함’과 이루어지지 못하자, 이를 대신하기 위해 철저히 권력을추구해가는 걸로 묘사된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혼돈이 아니다. 미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신만의 ‘조화롭고 완벽한’ 세상이다. 그녀는 만약 가능하다면 중국 최초의 여제인 측천무후처럼 황제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왕이 되기엔 기존 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황후로 만족하려 한다(그런데 그녀의 라이벌로 등장하는 덕만공주가 후일 선덕여왕이 되니 역설적인 부분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미실은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악당’이란 부분에선 어느 정도 공통분모가 있지만, ‘배다른 형제만큼 닮았다’고 하기엔 조금 어렵다고 본다.

조커보다는 <슈퍼맨>의 렉스 루터가 더 고현정의 미실과 닮았다는 게 내 의견이다. 이유는 이렇다! 고현정이 연기하는 미실처럼 렉스 루터는 철저하게 자신의 머리와 육체를 이용해 세상을 손아귀에 넣으려 한다. 그들의 카리스마와 능력은 ‘히틀러’나 ‘나폴레옹’의 비견할 만큼 대단하다.


'슈퍼맨의 죽음'이란 충격적인 소재를 다룬 <슈퍼맨 둠스데이>

여기서 잠깐! 렉스 루터에 대해 조금 설명하고 넘어가겠다. 렉스 루터는 <슈퍼맨>에서 등장하는 악당 중 가장 슈퍼맨에게 위협적인 상대다. 그는 지구인으로 특별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뛰어난 두뇌로 슈퍼맨을 늘 위협적인 상황에 몰아넣는다. 우리에겐 그의 이름인 ‘렉스 루터’보다 대머리 악당으로 더 친근한데, 아마 이름이 네자 인데다 여러모로 친숙함이 떨어지는 탓이라 여겨진다(여기엔 우리에게 인기를 끈 <슈퍼맨> 영화시리즈가 너무 오래전에 개봉한 탓도 있으리라. 물론 2006년 개봉작인 <슈퍼맨 리턴즈>가 있긴 하지만).

<슈퍼맨>에서 렉스 루터는 슈퍼맨에게 별 다른 손해를 입은 적이 없는데(오히려 슈퍼맨은 그를 구해준 적이 있다),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긴다. 이유는 있다. 슈퍼맨은 빛만큼 빠르고 엄청난 힘을 지녔으며 눈에선 레이저가 나가고 하늘을 난다. 말 그대로 ‘신’에 가까운 존재다. 렉스 루터가 보기에 슈퍼맨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존재다. 또한 슈퍼맨은 제어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다. 만약 그가 잠시 실수라도 해서 잘못 힘을 쓴다면 수천 수만명의 사람이 죽고 지구는 파괴될 수 있다. 또한 렉스 루터는 항상 선함만을 강조하는 그의 말과 행동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이 연기하는 미실을 보면, <슈퍼맨 둠스데이>에 등장하는 렉스 루터와 여러모로 닮았다. 둘다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다소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를 하다, 결정적인 순간에만 잠깐씩 감정을 드러낸다.

<선덕여왕>에서 진흥왕이 죽은 후, 미실은 “보십시오 폐하. 이 미실의 사람들이옵니다!”라고 하며 간접적으로 자신에게 신라를 다스릴 만한 재목이 아니라고 이른 진흥왕을 향해 울부짖는다.



또한 죽은 줄 알았던 마야부인이 돌아온 후, 황후가 되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신당에 들어와 밤을 지새운다. 그런 그녀를 딱히 여긴 서리가 ‘왜 그리 황후에 집착하십니까?’고 묻자,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도 황후가 아닌 것이 싫어서요”라고 답한다. 그러자 서리는 “여인이십니다”라고 말한다.

1화와 2화의 각각 이 짧은 장면에서 고현정의 미실은 권좌를 향한 욕심과 지배욕 그리고 소유욕을 과감하게 내비친다. 평상시의 그녀의 모습이 차갑고 어딘가 가면을 쓴 듯한 느낌과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슈퍼맨 둠스데이>의 렉스 루터도 비슷하다. 워너사에서 2007년 제작한 애니메이션은 ‘슈퍼맨의 죽음’이란 매우 충격적인 소재를 다뤘다. 렉스사는 몰래 지구 깊숙이 에너지원을 찾기 위해 채굴하다 우연히 외계의 생명체를 깨우게 된다. ‘둠스데이’로 명명된 이 외계병사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본능에 충실하다. 슈퍼맨은 둠스데이에 맞서 싸우지만, 워낙 강력한 힘에 동반자살에 가까운 시도끝에 간신히 물리친다. 물론 슈퍼맨 자신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작품에서 렉스 루터는 시종 일관 무표정으로 지내다가 슈퍼맨이 죽자 후일 매우 화를 낸다. 바로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녀석의 손에 죽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만의 정의가 관철되지 못한 것에 화가 난 렉스 루터는 둠스데이와 사투에서 슈퍼맨이 흘린 피로 DNA복제를 통해 복제 슈퍼맨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복제 슈퍼맨이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려하자, 크립토나이토 광선이 나오는 방으로 유인, 크립토나이토를 넣은 특수장갑을 끼고 무지막지하게 구타하면서 자신의 증오와 허탈함을 광적으로 풀어낸다.

망자에 대해서까지 자신의 분함을 토해내며 모든 것을 지배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관찰하려 모습이 정말 닮지 않았는까? 들까마귀님의 글을 읽고 나는 그가 말한 미실의 모습에서 오히려 <슈퍼맨>의 렉스 루터를 더욱 강렬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생각은 다르지만, 다시 한번 들까마귀님의 신선한 소재발굴엔 박수를 보낸다. 이런 점이 블로깅을 하면서 얻는 희열이이라.

끝으로 평상시 슈퍼히어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는 블로그가 있어 여기 소개한다. 부머의 슈퍼히어로 블로그(http://blog.naver.com/boomer27)란 곳으로 슈퍼맨과 배트맨을 비롯한 미국의 슈퍼히어로에 대한 갖가지 정보를 갖춘 곳이다. 한번 가면 볼거리가 많아 꽤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블로그다.

우리의 사극에 등장인물과 미국 슈퍼히어로의 악당과 닮은 점을 찾아보는 작업은 매우 재미있었다. 앞으론 나도 이런 신선한 발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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