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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은 당신에게 -
아! 정말 간만에 기대치를 충족시켜준 작품이다. 덴젤 워싱턴과 존 트라볼타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은 그 자체로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한다. 그뿐인가? 긴박감 넘치는 화면과 토니 스콧 감독이 뚝심 있게 연출한 영상은 그야말로 앙상블의 극치를 보여주며, 등장인물의 세밀한 심리묘사까지 그려내는 탁월한 시나리오엔 그저 감탄사가 연발할 뿐이다. 왜 이 영화가 세인들의 화제에 오르내리지 못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올 여름 극장가에 개봉되는 영화중에 단 하나의 진정한 액션 영화다! 놓치면 후회한다. 꼭 보시라!
극중 역할을 위해 무려 100킬로그램으로 찌운 덴젤 워싱턴의 집념은 연기를 통해 잘 표현된다. 수 많은 턱살에 파묻혔어도 그의 외모는 여전히 빛나며 매우 현실감 있는 그의 소시민 연기는, 비록 작위성이 좀 있지만 나중에 그가 '영웅'이 되는 것에 관객이 공감하게끔 한다. 아카데미상은 그냥 받은 것이 아님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한번 증명하고 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원하는 그대에게 -
<펄햄 123>(이하 ‘<펄햄>’)에 대한 소개는 일요일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몇 달전 우연히 봤다. 존 트라볼타가 지하철 승객을 잡는 인질범으로 나오고 덴젤 워싱턴이 재수 없게 그와 통화하게 되는 배차원 역을 맡았다는 말에 손에 땀이 날만큼 흥분되었다. 존 트라볼타가 누군가? 비록 몇몇 블록 버스터를 말아 드시긴 했지만, 오랜 연기로 다져진 내공이 심후한 현 할리우드 최고수 영화배우가 아닌가? 그와 더불어 투톱을 이루는 덴젤 워싱턴 역시 흑인 남자배우론 두 번째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연기파 배우 아니던가? 두 사람의 조우만으로도 나는 흥분했고, 극장가를 달려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영화를 관람한 지금, 모처럼 흥분에 들떠 지금 자판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있다. <펄햄>은 잔재주는 부리지 않는다. 오직 정석대로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폭발물(시한폭탄)이나 격투신은 없다. 반전도 없다(물론 약간의 반전성(?) 장치는 있지만 눈치빠른 현대의 관객은 누구나 알아챌 수 있으며 좀 더 재밌게 하기 위한 단순한 보조적 장치에 불과하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상당히 현실적인 토대위에 굳건히 세워져 있다. 물론 작위적인 연출이 없는 건 아니지만 최근 할리우드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펄햄>은 상당히 현실적이다.
노물수수혐의로 국장에서 배차원으로 강등당한 가버(덴젤 워싱턴)는 갑자기 멈춰선 지하철에 이상하게 여긴다. 같은 시각 라이더(존 트라볼타)는 일행들을 이끌고 ‘펄햄 123’ 지하철을 점거한다. 그리고 통신망을 통해 지하철의 기관사를 찾는 가버에게 라이더는 뉴욕시민의 몸값으로 1천만 달러를 요구한다.
얼핏 이야기 얼개를 살펴보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다. 바로 일본에서 벌어진 독가스 유출사건과 영국 지하철 폭발물 사건이다. 우리가 가장 안전하게 여기는 대도시의 지하철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은 일상까지 침투한 범죄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펄햄>은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독가스나 폭발물은 전혀 사용치 않는다. 예산은 좀 더 들었겠지만 그랬다면 더욱 화제를 모았을 텐데, 아마 일부러 하지 않은 듯 싶다. 여기엔 911테러이후 미국인의 아픈 곳을 찌르고 싶지 않은 의도와 ‘그런 것 없이도 멋진 작품을 선보이마’라는 감독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두 번째로 가버와 이야기를 나누는 테러리스트의 리더 라이더는 냉철하고 영리한 범죄두목이긴 하지만, 다른 액션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네고시에이터를 속이기 위해 이상한 정치 논리 등을 갖다 대지 않는다. 그저 머리 좋고 돈에 욕심 많은 엇나간 인간이 어떻게 악당이 되는지 보여주는 표본적 역할을 할 뿐이다. 존 트라볼타의 매력을 생각했을 때 협상가를 빈정거리고 비웃으며 카리스마적인 악당을 연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텐데(<스워드 피쉬>를 생각하라!), 여기선 그냥 테러범에 머문다. 얼마나 현실적인 토대위에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감독의 고집이 다시 엿보이는 대목이다.
존 트라볼타와 대척점에 서는 가버 역의 덴젤 워싱턴은 그야말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다. 직장 동료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를 뒤에서 욕하고, 콜라와 도너츠를 즐겨먹는 뚱뚱한 몸매를 가진. 때론 가족을 위해 순순히 뇌물도 받아들이는.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 선한 인물이다.
가버와 통신을 주고받으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라이더는 그에게 뇌물수수를 인정하라고 다그친다. 동료는 물론 경찰까지 모두 듣는 상황에서 당연히 가버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한다. 화가난 라이더는 인질 중 한명을 붙잡고 5초안에 말하지 않으면 쏴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잠시 고민하던 가버는 순순히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뿐인가? 그는 영화 말미에 인질을 살리기 위해 1천만 달러의 돈다발을 들고 가버의 요구대로 범인들이 점거하고 있는 지하철 차량으로 간다.
물론 영화의 설정상 가버와 라이더는 각각 악당과 선한 인물이라는 대립각을 세울 수 밖에 없다. 또한 라이더는 가버의 뇌물수수죄를 들어 자신과 그가 별 다를 바 없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죄에 크고 작음은 있지만, 마치 신앞에 서면 죄인이란 점에선 똑같다고. 심지어 라이더와 협상하기 위해 오는 시장마저 외도로 인해 매스컴에 질문을 받고(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도 결국 인정하고 만다.
그러나 라이더와 가버가 다른 점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는 점이다. <펄햄>에선 두 번의 자기희생이 나온다. 첫 번째는 한 여인의 살리기 위해 나선 흑인의 경우다. 그는 단순히 자신과 그녀의 남편이 같은 공수부대라는 이유로 나선다. 물론 여인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측은지심도 일었겠지만, 그래도 뻔히 죽을 걸 알면서도 나선다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여인이 남자를 보고 “어떻게 좀 해보라”는 말은 너무 이기적인 말이다. 자신이 무력하니 누군가가 대신 나서길 바란 그녀의 눈앞에 공수부대 반지를 낀 흑인 남성은 유일한 구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맨몸으로 그것도 혼자서 중화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와 어찌 대결을 펼칠 수 있겠는가? 일반 액션 영화라면 그런 무모한 장면도 나왔겠지만, <펄햄>에선 총살을 당할 위기에 처한 여인을 위해 대신 희생하는 것으로 다르게 마무리 지으며 관객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킨다.
두 번째는 가버다. 그는 무려 두 번이나 위기를 모면할 기회가 있었다. 통신으로 라이더가 그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할때 굳이 가지 않아도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가버는 인질을 구하기 위해 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망설이고 고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덴젤 워싱턴은 충분히 납득가게 연기한다.
두 번째는 더 황당하다. 가버는 순간의 기지로 라이더 일행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는다. 그대로 돌아가도 되련만, 그는 망설이다 망설이다 결국 라이더를 뒤쫓는다. 물론 영화의 장르적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귀결이지만, 덴젤 워싱턴의 빛나는 연기력은 그런 다소 작위적인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게끔 만든다.
<펄햄>은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잔재주를 피우지 않는다. 반전을 위한 반전이나 그 흔한 총격전이나 폭발장면이 없다. 차량 추격신조차 항상 정체를 빚는 뉴욕의 현실을 그대로 가져와 오히려 긴장감이 떨어질 지경이다. 웹캠을 이용해 현장 상황을 전송하지만, 컴퓨터 해킹 같이 요즘 유행이 되어버린 설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악당과 주인공이 벌이는 혈투 따위도 없다. 도시 한복판에서 쫓고 쫓기며 벌이는 총격신과 자동차 추격신도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10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소시민이 산전수전을 겪은 악당과 대결해서 이길 거라는 전제 자체가 작위적 이지만. 덕분에 영화는 결말부에 이르면 다소 맥이 빠진다. 이젠 꼭 나와줘야 하는 범인과 주인공의 치고 받는 원초적인 액션이 없는 탓이다. 아슬아슬한 범인과 주인공의 줄타기 액션도 당연히 없다. 결말은 다소 허무할 정도지만, 모든 것을 끝마치고 돌아가는 주인공의 미소에서 우리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펄햄>의 영상은 매우 감각적이다. 잦은 스탭 프린팅 기법과 마치 화질이 나쁜 CCTV 카메라 영상들은 실제 범죄현장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덴젤 워싱턴과 존 트라볼타의 연기는 화학적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관객을 매혹시킨다. 너무 깔끔한 나머지 아쉬움이 남는 뚝심 있는 연출은 긴박감과 현실감을 드높이고, 인질로 잡히는 과정에서도 내일 있을 아들의 허들 시험을 걱정하고 돌아올 때 우유 큰거 사오라는 가버와 아내의 통화를 비롯한 세밀한 설정은 잔재미를 더욱 높여주는 요소다(요새 영화론 드물게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한 세밀한 묘사가 더욱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며,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꺼리 들을 던져주는 의식 있는 상업 액션영화다. 액션물을 좋아한다면 절대 놓치면 안되는 수작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도시에서 간 크게 인질범을 잡고 범죄를 일으키는 악당과 그에 맞서는 소시민의 구도는 관객과 감독 모두에게 매력적인 소재지만, 또한 이젠 너무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와 버린 탓에 잘 만들기 어려운 장르기도 하다. 토니 스콧 감독은 두 톱 배우와 함께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 멋진 영화 한편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놓치지 마라! 올 여름 단 한편의 액션 영화다!
검은색 자켓을 입은 존 트라볼타의 모습은 멋지며, 세상의 환락과 돈에 욕심이 넘치는 그의 연기는 월스트리트에서 종사하던 증권맨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는지 이해하게끔 만든다. 너무 오버하지 않는 카리스마가 더욱 악당을 우리 주변의 인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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