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명작 앞에서 멈춰선 ‘홍길동의 후예’

朱雀 2009. 12. 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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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실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홍길동의 후예>를 보고 난 지금, 이 심정을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홍길동의 후예>는 당신과 나의 예상보다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만약 홍길동의 후손이 현재까지 살아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상상으로 시작된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 이상을 보여준다.

수천억원의 돈을 벌면서도 건담과 슈퍼 히어로 그리고 츄리닝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악당 이정민(김수로), 광주에서 맨손으로 올라와 마침내 검사에까지 오른 송재필(성동일), <엽녀>이후 최고의 엽기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송연화(이시영), 현대판 홍길동으로 멋진 열연을 보여주는 홍무혁역의 이범수까지.

<홍길동의 후예>는 정신 없이 웃긴다. 자칫하면 유치해서 손발이 오글거리기 직전까지 상황을 밀어붙여 관객이 포복절도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 이범수가 이시영에게 이끌려 간, 성동일과의 가족만남 자리가 그러하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두 남매밖에 없는 가정에서 이시영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범수를 내세우며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그런 자리에서 이범수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된다. 3년 넘게 사귀어온 여친의 오빠가 검사(그것도 지독히 범법자를 싫어하는 정의로운)란 사실을 알고 몹시 긴장하게 된다. 그런 자리에서 느닷없이 성동일은 이범수를 향해 ‘도둑’이라고 말해, 사래 걸리게 만든다. ‘도둑이 제발 걸린다’고 컥컥대는 이범수를 향해 성동일은 ‘동생의 마음을 빼앗아간 도둑’이란 다소 식상한 대사를 친다.

그러나 워낙 네 배우(이범수-이시영-성동일-성동일 부인)의 호흡히 척척 맞아 유치한 장면임에도 매우 웃기기짝이 없다. 이범수를 지원하는 부모역의 박인환과 김자옥의 연기도 한결 영화의 감칠맛을 더한다.

낮에는 선생으로, 밤에는 도둑으로 활약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별다른 회의가 없는 홍무혁 캐릭터는 나름 멋지긴 하지만, 아주 매력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정신없이 웃긴 영화는 그러나 <다크나이트> 같은 슈퍼 히어로 영화의 괴물같은 완성도까진 이르지 못한다. <다크나이트><배트맨 비긴즈> 같은 슈퍼 히어로 영화가 ‘명작’으로 망설임없이 손꼽히는 데는 거기에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크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분한 ‘조커’가 인상 깊은 것은 인간의 순수한 파괴심과 잔인한 욕망에 대해 마치 정신 분열증에 걸린 것처럼 거침없이 묘사한 바가 크다.

<홍길동의 후예>의 홍길동 가족은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이 그랬듯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충분히 혼란을 가질 만한 인물들이다. 일례로 아직 ‘홍길동의 후예’인 무혁네 가족들은 ‘도둑’이란 말에 대해 상당히 금기시 한다. 저녁 식사시간에 집안의 ‘작업’에 끼지 못하는 막내 찬혁이 ‘도둑’을 언급하자 나머지 세 식구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 장면등은 비록 의적활동을 하지만, 대를 넘어 도둑으로 일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그러나 <홍길동의 후예>는 거기서 멈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의 친오빠가 검사라는 사실을 알고 이범수는 이시영과의 절교를 선언하고 괴로워하지만, 그의 그런 모습은 너무나 식상하고 단선적인 모습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이범수가 마치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정체성에 대해 심도깊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영화의 의미는 매우 달라졌을 것이다.

충분히 매력적인 악당이 될 수 있었던 김수로의 캐릭터가 단선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홍길동의 후예>에서 궁극의 악당으로 분하는 김수로 역시 아깝긴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그는 슈퍼맨과 배트맨과 조커등에 열광하고 몇억짜리 건담을 사들이는 ‘마니아’로 등장한다. 특히 츄리닝에 대한 집착은 병처럼 깊어서 항상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츄리닝을 입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츄리닝과 달리 그가 입는 츄리닝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명품이다.

아쉽게도 작품에선 왜 그가 그토록 병적으로 츄리닝에 집착하는지 한마디로 언급하지 않는다. 건담마니아로서 그의 병적인 집착 역시 한마디 언급 없이 지나간다. 하여 그는 단순히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처리해야할 단순한 ‘악당’이상이 되지 못한다. 한 채무자가 자신의 집에 와서 난동을 부리다가 전시한 건담이 망가지자, 슈퍼맨처럼 상의를 드러낸 채, 구타하는 모습을 보일때가 유일하게 ‘광끼’가 흘러넘칠 때 였다.

아마 시나리오 상에선 그런 인물에 대해 어느 정도 배경이 있었던 것 같은데, ‘편집과정에서 짤려나가지 않았을까?’란 상상이 들게 되었다. 김수로의 이미지가 <패밀리가 떴다>의 단순한 예능인으로만 소비된 것은 그저 안타깝다. <흡혈형사 나도열>등에서 가볍지만은 않은 묵직한 연기를 보여준 그의 포스가 단순 흥미유발 이상이 되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내가 보기엔 김수로에게 약간의 세부묘사만 제공했어도 <다크나이트>의 조커 못지 않은 악역이 될 가능성이 많았다고 여겨진다.

<홍길동의 후예>에서 가장 빛나는 성동일. 그는 특유의 촐싹대는 캐릭터로 분하면서도 ‘검사’로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자하는 ‘청백리’적인 모습과 ‘정의’를 구현하고자 애쓰는 열혈검사로 누구보다 멋지게 열연했다.

<홍길동의 후예>를 관람한 이들은 모두 인정하겠지만, 가장 빛나는 캐릭터는 성동일이 분한 검사 송재필 역의 성동일이다. 그는 악을 끔찍이도 싫어하고, 광주 사투리를 쓰는 코믹한 검사로 출연한다. 성동일은 특유의 애드립과 말투와 행동으로 웃음을 이끌어내지만, 송재필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경찰 자베르를 이해하는 역으로 나온다. 성동일은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범죄자는 아무리 개심했어도 범죄자”라는 식으로 악에 대한 철저한 반감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몇 마디 대사로 그가 왜 그토록 정의로운 ‘홍길동’을 잡으려 하는지 충분한 공감대를 선사한다.

또한 이정민을 잡기 위해 수색영장을 신청했다가 부장검사에 의해 거부당하자, 왜 그가 서울말을 쓰지 않고 그토록 사투리에 집착하는지 이유가 밝혀진다. 성동일은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지 잊지 않고, 가난한 검사라는 이유 때문에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였다. 같은 고향출신인 부장검사가 서울말을 고집하는 이유를 그는 ‘검은 돈의 유혹’에 넘어간 것으로 매우 실날하게 비판한다.

이정민이 돈으로 자신을 매수하려 하자, “광주 촌구석에서 올라온 녀석이 비록 퍼졌지만 자동차 있고, 전셋집 있으면 충분하다”는 식의 논리를 펼때는 그저 멋지기 한량없었다. 물론 이런 멋진 장면 외에는 시종일관 검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코믹한 모습을 열연해 관객에게 숨쉴 틈 없는 웃음을 선사했다.

이시영은 <홍길동의 후예>에서 엽기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송연화역을 100%이상 멋지게 소화해냈다.


<꽃남>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이시영 역시 상당한 매력을 보여준다. 그녀는 사랑앞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한다. 이범수와 함께 근무하는 교정에서 스스럼없이 먼저 키스하고, ‘자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결혼하자’는 말을 던지는 모습은 <엽녀>의 전지현을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울러 이범수의 절교 선언 이후 교정에서 나무에 박치기하고 풀 뽑는 행위등을 하는 ‘지극히 만화스러운’ 모습등을 통해 철저히 망가져 그녀를 새삼 다시 보게 한다.

영화속에서 멋있게 싸우고 행동하는 인물은 분명 이범수지만, 연기가 빛나는 인물은 성동일, 그 다음은 이시영이었다.

<홍길동의 후예>는 앞에서 안타까움을 토로했지만, 별다른 생각없이 본다면 상당한 폭소와 함께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너무 과하지 않게 삽입된 액션과 잡입장면등은 속도감과 긴장감을 느끼게 해준다.

아쉽다면, 스토리가 뭔가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질 듯 보여지는 초반과 달리 단선적으로만 간다는 사실이다. 뭔가 이유가 잔뜩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의 행동이 별다른 설명없이 넘어가는 부분은 정말 아쉽기 그지 없다. 그런 이유 몇 가지만 설명했어도 영화의 완성도는 지금보다 몇 단계 올라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움을 제쳐놓아도 <홍길동의 후예>는 꽤 코믹하고 괜찮은 작품이다. 적어도 불법과 비리가 창궐하는 오늘날을 향한 풍자는 요란한 웃음밑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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