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찬란한 유산'

朱雀 2009. 6. 2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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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 대한 애정을 느끼는 고은성(한효주)과 선우환(이승기). 과연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언제쯤 인정하게 될까? 아울러 장숙자 회장이 낸 숙제(?)를 고은성은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또한 회사를 호시탐탐 노리는 박태수는 어떤 짓을 벌일지, 까페에서 알바를 뛰고 있는 은우는 언제 다시 고은성과 재회하게 될지, 점점 궁지에 몰리는 백성희(김미숙)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찬란한 유산>은 매번 흥미진진한 전개와 더불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하고 있다.

어제 방송된 <찬란한 유산> 18화가 시청율 35.5%를 기록했다. 이는 <찬란한 유산>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알려주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이리라. 그렇다면 <찬란한 유산>의 인기요인은 무엇일까? 물론 한효주와 이승기, 김미숙을 비롯한 연기진의 호연을 우선 꼽을 수 있고, 세련되게 변주된 현대판 ‘캔디’ 이야기를 비롯해 감각적인 영상과 절묘한 편집 등을 또한 이야기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요소는 바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이야기한 점을 꼽고 싶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미사여구야 어떻든 간에 부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약간의 기부를 하면서 생색을 내는 게 시작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자선을 위해 자신의 모든 부를 포기하고 평생을 헌신한 이들도 있지만, 그런 이는 극소수고 대부분은 약간의 재산을 헌납하는 것으로 ‘부의 독점’을 정당화시켰다.

2009년 오늘날 대한민국은 그런 약간의 치례마저 하지 않는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정글의 법칙’이라며 무한 경쟁주의가 판을 치고 승자 독식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비정상적인 사회다.

그런 사회에 <찬란한 유산>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우선 박준세를 보자. 그는 출세가 보장된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길 마다하고, 할아버지가 물려준 레스토랑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 시시때때로 자원봉사가 있으면 열일 마다하지 않고 나선다. 자신이 사랑하는 고은성의 아버지, 고평중(극중에선 아직 그가 고은성의 아버지임을 모른다. 그저 불쌍한 아저씨로 생각하고 도울 뿐)을 우연히 만나선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돕는다. 처음 만났을 때는 감기에 걸린 그에게 약을 사주고, 그 다음엔 일자리까지 알선해준다. 그가 고평중을 대하는 자세는 항상 예의바르고 존중하는 자세를 취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회에서 그런 박준세의 모습은 신선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단순히 몇푼 쥐어주는 게 아니라 일자리까지 알선해주었다. 요즘처럼 실업이 몇 백만 시대를 헤아리는 시기에 그런 행동은 예사로이 넘기기 어렵다.

물론 세상엔 박준세처럼 있는 집 자제면서 남에게 베풀 줄 알고 진심으로 돕기를 좋아하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선우환(이승기)처럼 전형적인 부잣집 망나니 도령과 그의 어머니 오영란과 여동성 선우정은 쇼핑을 즐기는 전형적인 졸부들이 비교도 안되게 많다.

거기에 더해 희대의 악녀 백성희(김미숙)은 거짓으로 죽은 남편의 생명보험금을 모조리 타내 자신과 딸의 배를 불리고, 고은성과 고은우는 내쫓고 심지어 은우를 내다버리는 짓마저 서슴지 않았다. 돈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내팽개쳐버린 그녀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상대적으로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고은성에게 유산을 물려주기로 한 장숙자 회장의 결단은 오늘날 대한민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일이라 더욱 신선하다. 그것이 판타지지만, 그런 건강한 상식을 가진 이들이 그립기 때문에 <찬란한 유산>은 더욱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주인공 고은성을 보라.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쓰면서 지내던 평범한(?) 부잣집 아가씨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도산과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를 혼란을 넘어서 절망에 빠뜨렸다. IMF와 금융위기로 파산한 이들이 즐비한 우리 사회에서 그런 그녀의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그녀는 캔디지만 동시에 신데렐라 이기도 하다. 밝고 착한 그녀의 성격은 점차 주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본래 막돼먹은 녀석이 아니었던 선우환은 그녀에게 영향을 받아 점차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모 국회의원처럼 버스비가 얼마인지 모르고 육체노동은 전혀 하지 않고 안하무인이었던 그는, 이제 설렁탕을 배달하고 다른 이에게 “미안하다”“고맙다”란 이야기를 할 줄 알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각기 육체적인 노동을 하면서 쓰는 것의 기쁨이 아니라 버는 것 나아가 바른 마음자세로 남과 마주하는 법을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찬란한 유산>은 트랜디 드라마다. 여기서 고은성은 박준세와 선우환과 삼각관계를 이루고, 천애고아나 다름없는 고은성이 우연한 사건으로 장숙자 회장의 눈에 들어 함께 사는 ‘천운’을 얻는 다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20살이 넘으면 사람이 얼마나 바뀌지 않는지 우린 잘 안다. 심지어 죽을 고비를 넘긴 이들도 고비 땐 착하지만 건강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찬란한 유산>에 열광하고 등장인물을응원하는 것은 그것들이 포기하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꿈들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불법 행위마저 서슴지 않는 많은 기업가들이 횡횡하는 요즘 시대에, 올바른 가치관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보다 나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가족에게 유산을 물려주길 포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시대의 ‘진정한 기업가’의 모습을 본다. <찬란한 유산>의 의미 중 하나는 재물이 유산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관을 가진 온전한 사람이 되라’일 추측해본다.




외고를 나오면 내신등급과 상관없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고,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다시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 가난한 집에 태어나면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부자들은 그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법적으로 구제받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찬란한 유산>을 보면 이야기가 떠오른다. 바로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피리 부는 이와 북치는 이의 이야기다. 둘다 시장에서 연주를 하고 구경꾼들에게 관람료를 받아 연명하는 처지인데,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서로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함께 합주해서 더욱 훌륭한 연주를 했고 구경꾼들에게 더 많은 돈을 받게 되었다. 아마 다른 나라나 지역이라면 둘은 서로 자리싸움을 했으리라. 오직 우리나라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에 ‘사람 사는 세상’이 어때야 하는지 깨닫는 바가 많은 이야기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나 혼자 잘 살겠다고 아둥바둥 할수록 사회는 더욱 각박해지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된다. <찬란한 유산>이 오늘날 큰 인기를 끄는 비결엔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을. 함께 살기 위해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건전한 상식과 육체노동에 대한 신성함을 말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것도 교과서처럼 교훈적이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에 담아서 말이다.

로또 당첨이 유일한 인생의 낙이고, TV 뉴스 상에서 마저 ‘부동산 투기’를 권하는 세상에서 <찬란한 유산>은 그래서 더더욱 애정이 갈 수 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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