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방송으로 39.9%의 놀라운 시청율을 기록한 <찬란한 유산>.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다소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있으나 그 전개는 전혀 식상하지 않다. 캔디를 새롭게 변주하고 멋진 연기자들이 맡은 바 자신의 배역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내고있다. 대본은 깔끔하고 신신하며 능숙하게 이야기를 진행하며 연출은 과함도 부족함이 없이 적절하다. 이런 드라마가 '명품'이아니고 '걸작'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작품이 그렇단 말인가? 비록 나중에 결말이 흐지부지 난다할지라도(물론 그런 일은 절대 없을거라 믿지만) 난 이 드라마의 팬으로 남을 것이다. 기꺼이 행복한 바보가 되겠다.
아! 어제 방송된 20화를 보고는 도저히 장탄식을 멈출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제작진이 모였길래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단 말인가?
<찬란한 유산>에게 내가 감탄하는 대목은 이미 오랫동안 많이 울궈먹은 소재를 신선하게 변주했다는 점이다(단순히 새롭게 변주한 정도가 아니라 새롭게 재탄생했다는 게 맞겠다). 현대판 캔디건 콩쥐팥쥐건 새엄마가 재산을 노리고 의붓남매를 괴롭히고, 현대판 키다리인 박준세를 만나 도움을 받고, 그러다 나쁜 남자 선우환(이승기)를 만나 싸우면서 정들게 된다.
사실 <찬란한 유산>을 보고 있자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보는 기분이다. 등장인물의 연기, 대본, 연출 뭐 하나만 어긋나도 이 드라마는 ‘신파’로 가기 쉽고, 이전까지 이런 드라마류의 ‘재탕’이 될 가능성이 널려 있다. 한마디로 삼류 드라마가 될 가능성이 지뢰밭처럼 깔려 있건만, <찬란한 유산>은 그런 지뢰밭을 유유히 건너가고 있다.
청춘남녀가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누지만, 주인공 한효주가 계모의 음모로 번번이 위기(?)에 빠지며, 그때마다 오뚝이 정신으로 이겨나간다. 더불어 오영란과 선우정 모녀는 고은성(한효주)를 괴롭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 없다. 그러면서 그녀들은 몸개그를 한다. 그들만 개그를 하는 게 아니다. 때론 이승기와 한효주도 개그를 선보여 웃음을 유발한다. 한참 심각한 분위기로 가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밝고 경쾌하게 나아간다.
20화도 계모의 음모로 인해 집을 나온 고은성을 안타깝게 여긴 선우환이 술을 먹다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걸로 마무리 지어버려서, 트랜디 드라마적 정체성을 다시 한번 내밀었다.
<찬란한 유산>은 정말 찬란한 드라마다. 사실 대본만 놓고 보자면 너무 ‘유치찬란’해질 구석이 있다. 이젠 모든 드라마의 감초로 여기지는 개그 커플의 연기는 보통 극과 따로 놀기 쉽다. 그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웃기지만, 전체적인 극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아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리기 쉽다.
이런 드라마의 어려운 점은 무조건 심각한 방향으로 가면, 스트레스에 쌓인 시청자들이 짜증을 내며 채널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쉽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희화화 시키면 시청자들은 또 ‘뭔가’가 있길 바란다.
<찬란한 유산>은 또한 감정과잉을 유발한다. ‘저런 일을 당할 수 있을까?’싶은 기막힌 일들을 어린 고은성이 계속해서 당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변에 든든한 이들이 버텨주긴 하지만, 매번 사건을 겪을 때마다 눈물 흘리며 괴로워하는 그녀를 볼때 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김미숙은 돈 때문에 매번 고은성(한효주)를 궁지로 몰아넣더니, 이번엔 딸인 유승미(문채원)까지 가세해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고은성을 완벽하게 사기꾼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동안 선과 악의 중간에서 괴로워하던 그녀를 이제 완벽한 사건의 동조자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변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의 캐릭터는 불분명하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어머니를 비난하면서, 동시에 회사에서 다시 마주친 고은성에겐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지만 정체성이 명확하지 못한 탓에 동정은 가도 감정이입이 어렵다. 사실 문채원이 맡은 유승미 역할은 참 빛이 나기 어려운 배역이다.
내가 <찬란한 유산>의 유일한 옥의 티로 여기는 것이 바로 문채원의 포지션이다. 그녀는 선과 악의 중간쯤에 걸쳐진, 어떻게 보면 착한 여성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잘못 만난데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고은성에게 자꾸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악행을 해야만 하는 캐릭터다. 항상 갈등하고 우거지상을 쓰는 그녀의 모습은 현실에 가깝지만, 극 진행에 있어선 시청자에게 짜증만 유발할 뿐이다. 나중에 통곡하면서 뉘우치더라도 지금은 확실하게 악의 선에 서는 게 어떨지 싶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샜는데, <찬란한 유산> 20화는 28부작의 2/3 지점을 지나는 과정에서 ‘하일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전개로 보면 절정일 것이다.
김미숙의 갖은 악행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장숙자 회장을 만나 유산까지 물려받기로 한 고은성에게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그동안 다소 악녀의 기운이 빠져있던 김미숙은 모처럼 거짓말로 완벽하게 고은성을 사기꾼으로 몰아서 장숙자 회장 집안의 모든 사람들을 믿게 만들어 버렸다(장숙자 회장과 선우환은 아니라곤 믿지만 증거가 너무 확실해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다). 가히 악마적 캐릭터의 결정판을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딸까지 가세함으로써 그 효과는 배로 부풀려졌다. 모든 진실이 완전히 위조되는 상황에서 황망함에 아무런 말도 못하는 한효주의 연기는 또 어떤가? 20화 첫 장면에 집을 나오는 그녀는 정말 말 그대로 인생을 다 산 사람의 얼굴이었다.
과연 연기가 맞는 지 싶을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였다. 그녀를 향한 사랑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이승기의 연기는 또 어떤가? 모든 이들이 아낌없는 칭찬을 늘여놓을 만큼 철부지에서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한 남성으로의 연기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지 않은가?
문채원을 뺀 모든 연기진의 연기는 거의 완벽하다. 각자 자신의 역에 맞게 성격과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장숙자역의 반효정은 김미숙의 모함에 충격을 받았지만, 역시 노회한 사람답게 고은성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그의 모습은 자칫 가식적으로 보이기 쉬운데, 오랜 연기 내공의 소유자답게 그런 ‘대모’의 풍모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마지막에 술에 취한 이승기가 한효주의 집을 무작정 찾아가 그녀와 함께 넘어진 장면은 두 사람의 관계 발전과 더불어 뭔가 희망적인 느낌을 주고 끝냈다.
<찬란한 유산>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짐작이 안 간다. 분명 김미숙의 거짓말은 나중에 들통이 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 난 모르겠다. 한효주-이승기-문채원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될까? 과연 한효주와 이승기는 이뤄질까? 그뿐인가? 중간에 살짝살짝 박준세의 아버지 박태수가 진성식품을 차지하기 위해 이사진과 뭔가 꾸미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고은성의 아버지 고평중은 딸을 찾기 위해 사무소를 찾았고, 고은우는 선우환의 친구네 가게에서 일하면서 점차 선우환과 친해지고 있다. 은우가 과연 어떻게 은성을 다시 만나게 될지, 고평중은 두 자녀와 어떻게 해후되게 될지 등 던져진 밑밥은 많지만, 그것이 어떤 식으로 엮일지는 도무지 짐작이 안 가는 상황의 연속이다.
1화부터 놀랍게 시작했지만, 20화를 찍은 현재 <찬란한 유산>은 39.9% 시청율을 기록하며 놀라운 채널장악력을 보여주고 있다. 음모와 배신, 사랑과 열정, 코믹과 심각함, 건전한 기업관과 경제관 등 권선징악과 트랜디한 소재 등 도저히 하나로 묶이기 어렵다고 생각되는(누구나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곤 하겠지만) 것들을 제작진은 거의 천의무봉의 솜씨로 지어놓고 있다.
하여 나는 <찬란한 유산>이 감히 ‘2009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감히 예언한다. 나머지 8화를 엉망으로 만들어도 좋다(물론 여태까지 보여준 솜씨로 봐서 마무리도 멋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내가 틀려서 욕을 잔뜩 먹어도 좋다. 요 몇 년간 만들어진 드라마 중에 이렇듯 칭찬하고 싶은 드라마는 흔치 않았다.
새로운 재료로 혹은 최고의 재료로 멋진 요리를 만드는 건 어느 정도 요리사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늘 먹는 된장찌개에서 최고의 맛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먹고 누구나 그 맛을 알기에 모두를 만족시키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엔 <찬란한 유산>은 지금 그런 요리를 시청자에게 선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찬란한 유산>은 최고의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모든 연기진의 연기는 훌륭했고, 대본은 천재적이며, 연출은 가히 환상적이다.
이런 드라마가 명품이 아니면 어떤 드라마가 명품이겠는가?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주말을 기다린다. 예고편을 봐선 술에 취한 이승기가 한효주네 집에서 자는 것 같던데,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매우 예사롭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전개될지 그저 기껍게 기다리겠다.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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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티비 잘 안보는데
어쩌다 한번보면 중간중간에 봐도 넘 재밌더라구요~!!
최고최고 ㅋㅋ
네 동감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찬유 너무 후달달하면서 빙의하며 보는 시청자입니다.
너무 맛깔나게 분석하셨네요. 공감 백푸롭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시길~^^
글 잘 읽었습니다.. 딱 제 맘입니다..
근데 유승미 역의 문채원도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회 전 까지만 해도 이상한 사극 톤으로 말을 하는 것같아서 답답했는데..
연기가 완벽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중간에 낀 심정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만일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꼭 그녀 같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같지 않은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 그녀의 심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불안하고 초조하고
누구보다도 가까운 엄마의 악행을 보면서 두렵고
어쩔 수 없이 그 악행에 동참하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신을 죽일 만큼 괴로울 거고..
이 드라마에서 가장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거기에 문채원의 연기가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대로 선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드라마에 내가 들어간다면 딱 그 자리가 아닐까 하는 맘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님 승미의 친구?? 이름은 모르겠는데
은성이 잘 되니까 배 아파 죽으려고 하는 친구 있지요??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슬프네요.. 왜 난 주인공을 스스로 포기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캔디는 흔한 캐릭터아 아니니까.. ㅋㅋㅋㅋ
어쨌든 다음주 무지하게 기다린답니다.. ㅎㅎㅎ
문채원이 연기를 못한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다만 그녀의 캐릭터가 너무 어렵고 다면적이라
시청자가 공감하기 힘들다는 거죠.
차라리 좀더 단순명쾌화 시켜는게, 더 시청자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적어봤습니다. ^^
저도 요새 주말마다 이 드라마 보는 재미로 살고 있습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잘 나온 드라마라고 봅니다. 감사합니다. ^^
문채원의 문제는 단순히 문채원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가 설정해놓은 캐릭터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 개인적으론 답답하기 보다는 '착하게 살고 싶지만 현실이 안 받쳐줘서' 어쩔수 없는 어정쩡한 악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씁쓸하기도 합니다.. 글 잘 봤습니다 ^^ 정말 이거 한 주 기다리는게 왜케 힘이 드는지.. ㅎㅎ
동감입니다. 처음엔 문채원이 캐릭터를 잡지 못했나 싶었는데 20화까지 보고나니, 캐릭터를 표현하기가 너무 어렵더군요. 그녀가 이전에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보여준 연기를 봤을때, 그녀의 문제라기 보다 저 역시 대본의 문제라고 봅니다. <찬란한 유산>의 유일한 옥의 티랄까요? 참 아쉬운 부분이죠. 근데 따져보면 지금 정도도 엄청난 완성도니까요. 그정도는 넘거가렵니다. ^^
댓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