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동이보다 멋졌던 숙종과 태감

朱雀 2010. 5.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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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송된 <동이>에선 김윤달을 잡기 위한 동이의 활약상이 주로 그려졌다. 동이는 감찰궁녀인 자신을 잡아서 청국에 끌고가, 청국사신인 김윤달의 죽음을 해명키 위한 제물로 쓰여질 처지에 놓인다. 숙종은 옳은 일을 하고도 오히려 억울하게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 동이를 감싸고 돌고, 이일로 조정대신과 격론을 벌인다.

드라마상에선 조선은 최악의 경우 청국과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동이는 구국의 결단을 내리고 홀홀단신으로 감히 태감을 만난다. 그리곤 당돌하게 김윤달이 ‘죽지 않았다’는 검시 보고(?)를 하고, ‘김윤달을 잡아오겠다’며 사흘간의 말미를 부탁한다. 이에 태감은 고민 끝에 그녀의 청을 허락한다. 그리고 동이와 주변인물들은 김윤달을 잡고 사건을 처리하기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드라마만 놓고 보자면 동이는 오작인 아버지를 둔 덕분에, 김윤달의 시신이 가짜임을 밝히고, 감히 의금부에 침입해 ‘가짜유서’를 찾아오는 등의 엄청난 활약을 보인다.

그러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동이>에서 내내 활약을 하는 주인공보다 숙종과 태감의 모습이 더욱 인상깊을 수 밖에 없었다.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은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아도,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전제군주로서 확실한 힘을 발휘했다. 특히 어제 방송에서 숙종은 ‘궁녀를 내주고 청국의 비위를 맞추자’라는 주청을 거부하고, 금군을 내보내 ‘모화관에 억류된 동이를 데려오라’고 명을 내린다.

 

 나는 어떠한 파국을 겪더라도 나랏일을 한 죄없는 궁녀를 청국에 넘겨줄 수 없소.

 전하 통촉해 주시옵소서. 그럴 경우 청국과 군사적 충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지금 궁녀하나 때문에..

 이는 경들이 말하는대로 궁녀 하나의 문제가 아니요. 이는 이 나라의 자존과 위상이 달린 문제라는 것이오.

 전하 소신들도 나라의 안위와 조정을 생각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모화관에서 물리적인 충돌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장차 이 일이 청국과의 외교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셔야 하옵니다.

 알고 있소. 청국은 당장 교역을 그만두겠다 엄포를 놓을 것이고, 최악의 경우 전란이 일어날 수 있겠지. 나 또한 그러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소. 허나 그렇다고 부끄러운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 경들에게 묻겠소. 죄없는 제 나라의 백성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어찌 한 나라의 위정자가 되고, 한 나라의 위정자가 될 수 있단 말이오. 힘없는 궁녀니 내어줘도 좋다니. 경들은 그것이 부끄럽지 않소? 



조정대신과 숙종의 말중 어느 것이 옳다 말하기 참으로 어려운 대목이다. 중원을 통일한 청국과 물리적으로 맞선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안나오는 일이다. 따라서 실리를 생각한다면, 궁녀 하나쯤 내어주는 치욕쯤은 감수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옳은 길’이라는 측면에서 판단한다면, 나라를 위해 일을 한 죄없는 궁녀를 내어주는 것은 단순히 부끄러운 일의 문제가 아니라, ‘굴욕’의 문제다. 특히 숙종의 “죄없는 제 나라의 백성 하나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어찌 한 나라의 위정자가 되고, 한 나라의 위정자가 될 수 있단 말이오.” 나라와 국민이 존재하는 한, 통용될 수 밖에 없는 금과옥조와 같은 말이다.

때론 실리를 버리고 손해보는 일인줄 알아도 당당히 나아가야 할 때가 있다. ‘명분’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옳은 것임이 맞다면 기꺼이 사람들은 목숨을 내어놓고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제 나라의 백성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면 이미 ‘국가’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 백성이 힘없고 나약한 이일때는, 더더욱 나라가 그를 지켜야만 할 것이다.

아마 <동이>를 통해 이병훈 PD는 그런 통렬한 외침을 이시대에 외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동이를 풀어준 태감 역시 대단한 인물이다. 그는 청나라의 사신으로 그 힘은 막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는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고, 일개 궁녀의 이야기조차 허투루 듣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이 실수를 알고 나서는 기꺼이 숙종을 찾아가 김윤달이 거짓죽음을 알고, 귀국하려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에 숙종은 그를 ‘대인’이라고 칭찬하기에 이른다. 덕분에 태감은 x망신 당할 뻔한 상황에서 체면치례를 하게 된다.

 

거의 1시간 내내 활약한 동이에 비해 숙종과 태감이 나온 시간은 불과 몇 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원리원칙을 고수하며 정직하고 바르게 나랏일에 임하는 숙종과 태감의 모습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제 <동이> 16화는 동이의 활약을 늘리기 위해 설정을 과하게 하다보니, 김윤달의 죽음에 대한 단서를 전화에서 전혀 보여주지 않는 ‘반칙’을 구사했다. 게다가 이제 막 궁녀가 된 노비라고 보기엔 뻣뻣하기 이를 데 없는 동이의 모습은 ‘공감’을 사기 어려웠다.

그러나 온갖 위험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옳은 길을 가려하는 숙종과 어떤 상황에서도 공명정대하려 애쓰는 태감의 모습은 너무나 멋졌다. 그것은 다른 어색하고 과한 설정에 대해 눈 감을 만큼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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