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그래픽 노블의 대가, ‘앨런 무어’를 아십니까?

朱雀 2010. 11.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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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뜨악하신 분들이 있을 거라 본다. 아마 그중에는 <개콘>의 왕비호처럼 표정을 지으며 “누규?”라고 되물을 분들도 계시리라. -다른 게 있다면 왕비호는 웃길려고 그런 것이고, 여러분은 정말 모르기 때문이리라-

 

그럼 질문을 살짝 바꿔보겠다. 팬티와 망토 하나 걸치고 ‘스파르타’를 외치는 멋진 복근남들이 300명이 설쳐서 여성팬들의 심금을 울린 영화 <300>의 감독 잭 스나이더를 아는가? 그가 만든 <왓치맨>의 동명원작자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에 참여한 <브이 포 벤데타> 역시 앨런 무어의 동명원작을 영상화한 것이다!

 

그뿐인가? 고 히스 레저가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역을 위해 참고한 그래픽 노블 <배트맨 킬링 조크>(이하 ‘<킬링 조크>’)의 스토리 작가다. 조니 뎁과 헤더 그레이엄이 주연을 맡은 <프롬 헬>의 경우도 역시 동명원작이 그의 작품이다!

 

다소 뜬금없이 앨런 무어를 이번 포스팅의 소재로 삼은 것은 그의 작품 세계가 너무나 넓고 심오하기 때문이다. 앨런 무어는 <다크 나이트 리턴즈>를 그린 프랭크 밀러와 더불어 1980년대 현대 ‘그래픽 노블’의 위상을 높인 엄청난 작가로 구미 등지에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만화책’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도 ‘애들 코묻은 돈’을 가져가는 낮은 수준의 문화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인식이 매우 높은 편이지만, 미국 역시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슈퍼맨>을 그린 조 슈스터가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이 속옷바람에 채찍으로 등장하는 패러디물을 스스로 그려야 할 정도로 미국 만화가들 생활 역시 초창기에는 참혹했다.

 

그러나 위대한 작가들이 하나둘씩 나오면서 ‘그래픽 노블’로 격상되게 되었고, 오늘은 그중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 작기인 앨런 무어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국 출신 작가 앨런 무어의 작품을 고작 네 편 밖에 읽지 못했지만, 접할 때마다 감탄사가 나오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보고 너무 감명 깊어서 원작 만화책을 샀더니, 이건 영화랑 게임도 되질 않았다. <브이 포 벤데타>는 파시즘이 지배하는 미래의 가상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든 것이 통제되는 경찰국가에서 자유와 독자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영웅 ‘브이’는 자신이 누군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실험에 의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일명 ‘브이’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사들로 언어유희를 할 만큼 지적인 인간이다. 그러면서 내재된 공포와 분노 등은 그를 반영웅으로 꼽기에 주저함이 없을 것 같다.

 

전제주의 세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는 ‘브이’의 모습과 성장해나가는 여주인공 아비의 모습이 대비되어 ‘자유와 평등’같은 가치들을 고민케 하는 대작이었다!

 

<왓치맨>의 경우 잭 스나이더의 영화는 원작의 발뒷꿈치도 따라가질 못했다! -<왓치맨>은 1923년 이후 발표된 작품 가운데 타임지가 뽑은 100대 소설에 뽑힌 유일한 그래픽 노블로 매체를 뛰어넘는 작품성을 자랑한다- 국가의 승인없이 히어로들이 활동할 수 없는 가상세계속에서 과거 히어로인 ‘코미디언’이 살해된 뒤, 과거의 히어로들이 다시 모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더더욱 큰 담론을 다루고 있다.

 

‘인류를 감시하는 히어로들을 누가 감시할 것인가?’라는 의미를 지닌 제목 <왓치맨>은 그래서 매우 중의적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의 세계관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왓치맨은 매커시즘의 광풍 아래 휩쓸리는 히어로들을 보여주면서 현실의 우리 삶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심지어 신의 필적하는 능력을 지닌 ‘닥터 맨하탄’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모습으로 일관해서, 20세기말 모든 것이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현대의 모습을 그려낸 것 같았다-


FROMHELL(프롬헬)
카테고리 만화 > 그래픽노블
지은이 앨런 무어 (시공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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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 헬>은 전설적인 살인마 ‘잭 더 리퍼’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프리메이
슨과 영국왕실이 손을 잡고 벌인 살인행각이란 가설로 시작되는 작품은 매춘
부들과 주정뱅이들이 뒤섞인 영국의 뒷골목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프롬 헬>은 너무나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며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온통 검은 채색으로 이루어진 만화는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았음에도 너무나 잔혹해 때때로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프리메이슨의 신화부터 현대 문명의 태동까지 인간의 끝없는 지적 욕구와 도전 의식 그리고 갈망등이 뒤범벅된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이 뒤엉커져 결론에 다다르기 어렵게 만든다. 허나 읽고 나면 ‘대작이다. 명작이다’라는 말과 함께 조금 시간이 지나서 책을 짚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접한 <킬링 조크>는 위 세 작품과 비교하면 ‘소품’에 가깝다. 아캄 정신병원을 탈출한 조커와 배트맨의 대결을 그린 <킬링 조크>는 배트맨의 숙적인 조커의 기원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고작 48페이지 밖에 안되는 분량 덕에 뭔가 큰 내용은 전개되질 않는다.

 

허나 작품을 읽으면 단 하루의 운수 사나움이 별 볼일 없던 사내를 희대의 악당으로 변화시킨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 서로를 죽일 것처럼 미워하는 대척점에 선 배트맨과 조커는 그래서 닮아 있다. -배트맨 역시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 때문에 악을 응징하는 히어로가 되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농담으로 끝나느 결말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점에서 독특하다.

 

앨런 무어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대단하다! 비록 형식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시할만한 ‘만화’로 되어있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 또한 복잡한 플롯과 다양한 상징과 비유와 은유 등은 독자의 상태와 수준에 따라 다른 시각에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

 

개인적은 바람은 우리나라 역시 앨런 무어처럼 만화책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려 ‘만화책이 아니라 그래픽 노블입니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만화를 무시하는 사회 분위기와 만화 잡지는 거의 사장해 버린 우리 시장에서 이건 ‘돌위에 꽃 피기’를 소망하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오늘도 다시 나는 앨런 무어의 작품을 손에 들어야 겠다.

 

앨런 무어와 함께 <킬링 조크>를 작업한 이후, '최고의 작가가 작업한 후 그에 대한 오마주로 더 이상 작업하지 않는다'며, 만화 작업에서 손을 뗀지 20여년이 넘은 브라이언 볼런드의 찬사가 아깝지 않은 그의 작품을 다시 한번 음미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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