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내가 여자친구를 존경하는 이유

朱雀 2010. 12.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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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야?”

나는 전화기 너머 들려온 그녀의 이야기를 듣곤, 반쯤 심각한 어조에 약간 나무라는 톤을 유지하며 말했다.

 

“응. 가다가 봤는데 그냥 갈 수가 있어야지...”

 

“아가씨. 본인 생각도 좀 하세요. 돈을 많이 버시는 것도 아니고.”

 

그녀는 길가를 가다가 월드쉐어에서 후원자를 모집하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많지 않지만 정기기부에 또 서명했다.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것. 내가 아는 것만 벌써 다섯 개가 넘어간다. 세이브더칠드런, 월드비전, 월드쉐어 등등.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아마 족히 10만원은 넘었으리라.

 

물론 액수만 놓고 보면, 별로 크진 않다. 아니, 나에겐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는 액수다. 그녀의 통장에선 매달 10만원씩 빠져나가게 된다. 재벌집 자식이 아닌 이상, 월급쟁이로선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액수다. 


나는 어린 시절 연말연시면 보이는 구세군 냄비에 돈을 집어넣거나, 가끔 성금을 보내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왔다.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하고 못한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내왔다. 허나 여자친구 때문에 유니세프의 홈피를 갔다가, 기부를 하는 데는 생각보다 큰 돈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내가 1년에 3만원씩 1년을 내면 설사병에 걸려 죽는 어린이 6천명에게 구강 수분 보충염을 제공해 살릴 수 있다. 내가 5만원씩 1년을 내면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 900명에게 고단백 영양식인 플럼피너트를 제공해 살릴 수 있다. 10만원씩 1년을 내면 6천명의 어린이에게 소아마비 접종을 해서 소중한 목숨을 구할 수 있다.



-유니세프 홈피 캡처 

내가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 최소 3만원 이상 쓰게 된다. 그걸 12번만 모으면 무려 6천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니...게다가 그 돈은 나에게 있어서 없어도 크게 상관없지만 그들에겐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들이 안되긴 했지만,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아프리카 등의 못사는 지역을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니잖는가? 게다가 국내에도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단 그 사람들부터 도와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것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는다.”

 

일견 듣기에 따라선 꽤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상은 늘 그렇듯 때때로 우리가 상식으로 여기는 것과 많이 궤를 달리한다. 이제 좀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해보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어디를 가든지 1천원 짜리 커피를 마실 수 있다(물론 한잔에 7천원이 넘는 것들도 있지만). 당신이 그렇게 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커피회사에서 싸게 원두를 비롯한 재료를 구입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원가절감을 위해서 현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다국적 기업은 어린 아이가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하고 수확한 커피 열매를 받아간다. 한 어린 아이가 받는 임금은 고작 3달러가 되지 않는다. 비슷한 예론 우리가 흔히 먹을 수 있는 초콜릿도 있다. 카카오를 따는 어린아이의 임금 역시 비슷하다. 우리가 싸게 먹는 커피와 초콜릿의 쓴맛은 10시간이 넘는 중노동을 한 어린아이들의 피눈물이 담겨 있는 탓인지 모르겠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우린 좀 더 싼 커피와 초콜릿을 먹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사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못 사는 것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도 나오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게으르거나 기후가 좋지 않은 탓이 아니다.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탓이 크다.

 

장하준 교수에 따르면, 1960년대와 1970년대 아프리카 서남 이남 지역의 1인당 소득 성장률은 약 1.6퍼센트 정도였단다. 지금은? 세계은행과 IMF가 요구한 자유주의 무역 정책을 실시한 결과 연평균 0.2%로 성장률이 떨어져, 지금은 1980년대와 거의 같은 1인당 소득율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카카오, 커피열매, 다이아몬드 등의 비슷비슷한 생산물을 (선진국에) 싸게 내놓는 것밖에는 수입원이 없게 되었다.

 

즉 오늘날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의 국민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것은 사실 이런 못사는 나라들의 희생위에 있다는 끔찍한 사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한마디로 단돈 6백원짜리 플럼피너트를 사먹지 못해 죽는 아이들이 나오는 현실엔, 잘 사는 나라와 국민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단 소리다.

 

아프리카에 태어난 아이와 대한민국에 태어난 나와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요샛말로 ‘삼신할매 랜덤’밖에는 차이가 없다. 아프리카에 태어난 아이는 억세게 운이 없었던 탓에 6백원짜리 플럼피너트도 못 먹어서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고, 나는 억세게 운이 좋았던 탓에 ‘비만’을 걱정하며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극과극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제 우리 국내의 불우이웃을 생각해 보자. 개인적으로 그분들을 도와야 한다는데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물론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결식아동이 무려 약 45만명에 이른다. 당장 도와야 한다! 그들은 동시에 우리나라 국민들이다. 기부도 기부지만, 국가예산을 할당해서 이들이 굶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 당신과 내가 한표를 잘 행사하고 정치적인 의견을 잘 피력해야 된다는 소리다!

 

IMF에 따르면 내년 우리나라 경제순위는 13위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얼마 전 서울 코엑스에서 있었던 G20에서 우리나라가 의장국을 맡은 것은, 흔히 말하듯 가위바위보로 정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그만한 경지에 도달했기에 다른 나라들이 인정한 것이다. 즉, 우리의 경제능력은 충분히 불우이웃이 최소한 먹고 살 만큼 만들어준 수준이 된다는 말이다. 요새 자주 나오는 ‘국격’에 어울리려면 그 정도 복지예산을 집행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아직 경제력이 미약해서 국민을 구제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질 못한다(여기엔 복잡한 여러 가지 정치적-경제적 문제가 얽혀있다). 따라서 선진국들의 자발적인 도움과 세계시민들의 기부외엔 방법이 없다. 당신과 나의 관심과 성금 없이는 그들이 단순히 한끼 굶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기엔 수많은 이들의 생사가 달려있다.

 

우린 기부는 흔히 돈 많은 사람이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에이. 지금 돈 버는 건 얼마 안 되니 돈 좀 벌면 그때하지 뭐“라며 기약 없는 자신과의 약속을 한다. 그렇게 당신과 내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사이 지구 반대편에선 3초마다 어린 아이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최근 여자친구는 실직 상태가 되어 경제적 상황이 별로 좋질 않았다. 그녀는 그럼에도 (많진 않지만) 오히려 정기 기부금을 더 늘렸다. 그녀의 기부로 인해 아프리카엔 더 많은 생명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기꺼이 베풀 줄 아는 사람. ‘기약 없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행동에 옮길 줄 아는 사람.

 

그러면서도 그런 선행을 뽐내거나 생색내지 않기에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그녀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했다- 하여 나도 밝히기엔 너무 미미하지만 일정액을 현재 기부하게 되었다. 이는 전적으로 그녀의 영향이다. 그녀는 나에겐 옳은 일이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양심'이다. 또한 시대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소리 없는 가르침이다. 내 눈엔 그녀가 천사처럼 보이는 것은, 그녀의 외면보다 내면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것이 여자친구를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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