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대한민국 vs 아프리카, 누가 더 미개한가?

朱雀 2010. 12. 6. 07:00
728x90
반응형



지난주 금요일 영화를 보러갔다가 민망한 광고를 한편 보게 되었다. 바로 성형광고였다. 거기선 사각턱의 여성이 외모로 인해 겪은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했고, (당연히) 브이(V)라인 성형 후 자신감을 찾은 모습이 그려졌다. 허나 끝 무렵 ‘죽어도 좋아’라는 카피가 뜨니 입안이 씁쓸해지며,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맛보게 되었다.

 

그날 밤 11시쯤 MBC에선 <아프리카의 눈물>이 방송되었다. 거기엔 원시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아프리카의 부족들이 나왔다. 수리족 여성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입술 밑을 잘라서 진흙으로 구운 토반을 끼우고, 풀라니족 여성들은 입술에 검은 문신을 새기기 위해 수백 개의 이쑤시개를 묶은 듯한 도구로 무자비하게 강타하는 모습이 방영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미지출처 : MBC <아프리카의 눈물> 인용 목적으로 캡처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미개한’이란 말이 떠올랐다. 허나 곧 극장에서 본 성형광고가 새삼 떠올랐고, 부끄러워졌다. 성형을 권하는 우리 사회와 아프리카중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우린 성형술이 매우 발달되어서 상당히 안전하게 거의 신체의 대부분을 고칠 수 있다는 정도랄까? 우리나라의 성형산업의 규모는 무려 약 1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인근국가인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찾아올 뿐만 아니라, 최근엔 중동에서도 찾아올 정도로 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단다.

 

관련기사: 중동 미녀들 성형하러 한국 온다

 

이런 기사를 읽으면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건지, 누군가가 그렇게 핏대 높여 말씀하시는 귀한 외화벌이에 한목하고 있으니 효자산업이라 칭해야 하는 건지 난감해진다. 우리의 성형수술에 대해선 일본 만화책인 <신의 저울 GJ>에서 ‘대통령마저 성형하는 나라’라고 치켜세워(?)주니 참 감격에 벅차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우리나라의 성형시술은 밑에 링크된 기사를 읽으면 알겠지만, 전체시술 인구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2위고, 성형 받는 인구수 증가율로 보면 단연 아시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전까지 나는 그저 단순하게 미모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분위기와 어느 정도 부를 축척해, 성형을 권하고 관대해지는 사회적 분위기로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좀더 다른 시각에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관련기사: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미용성형외과 수술을 받는 나라

 

 

우선 최근 연예인들은 방송에 나와 자신의 성형수술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한다. 현영-신봉선은 물론이요, ZEA의 황광희 등은 예능 프로에 나와 자신들의 성형사실에 대해 거침없이 말할 정도다. 불과 10여년 전, 쉬쉬했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나게 변했다.

 

두 번째로 성형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쌍커풀이나 코 정도 였으나, 지금은 가슴성형이니 전신성형이니 양악수술이니 해서 칼을 안대는 시술부위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양악수술과 같은 용어가 일상화 되어버렸다. 여기엔 김지혜 같은 연예인의 공이 크다. 그들은 협찬(?)으로 시술해, 수술 전후의 과정을 인터넷에 올려 순식간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여기엔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욕구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진화된 소셜 네트워크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모두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 보톡스-필러 같은 용어들은 이제 일상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 나는 이런 현상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 오늘날 성형은 단순히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의 차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화장은 물론이요, 성형까지 하고 있다.

 

연예인은 당연한 것이고, 일반 시민들조차 취업을 위해서, 혹은 그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보험도 안 되는 성형외과를 찾고, 정 안되면 ‘야매’마저 찾고 있다. 슈퍼박테리아와 신경이 손상되는 등의 부작용이 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시술을 오늘도 (인구 1만명당 약 80명의 비율로) 수술대에 올라서고 있다.

 

성형의 위험성은 우선 위에서 언급했지만, 부작용에 있다! 몸에 이물질을 넣거나, 신경을 건드리는 경우가 많아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얼마 전 중국의 여가수 왕베이 사망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성형중독’이다. 현재 재수술률은 약 30%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는 물론 전문의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일명 ‘야매’로 받은 이후 다시 재수술까지 포함하고 있지만, 심각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성형은 ‘자기부정’에 있다고 여겨진다. 성형외과를 찾는 대다수는 사고를 당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름답기 위해서’ 찾아가는 것이다. 당연히 이는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기 않기에 찾아간 것이리라.

   

여기엔 끊임없이 아름다운 여성과 멋진 남성상을 보여주며 환상을 키우는 TV 등의 매체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또한 성형외과에게 광고료를 챙겨서 광고를 해주는 케이블-신문등의 언론 매체, 그리고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시술과정을 보여주는 일부 블로거와 트위터 등을 통해 관련소식을 부지런히 나르는 네티즌들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대목이다.

 

압구정이나 강남 거리를 걸으면 끊임없이 성형광고와 성형 외과를 너무나 자주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의 얼굴을 보면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닐진데, 생김새가 비슷비슷한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몇 개의 정해진 미인상을 마치 유행처럼 쫓아가서 많은 이들이 외모를 바꾸는 사회는 불행한 곳이 아닐까? 잘 생기면 잘 생긴대로, 못 생기면 못 생긴대로 만족하지 못하게끔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챙기는 이들이 있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로 양악수술 사진이 순식간에 퍼지고,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라는 말이 나오는 사회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LOS ANGELES, CA - NOVEMBER 20: Actress Demi Moore arrives at the 2010 CNN Heroes: An All-Star Tribute held at The Shrine Auditorium on November 20, 2010 in Los Angeles, California. (Photo by Frazer Harrison/Getty Images)


그런 의미에서 16살 연하 남편 애쉬튼 커쳐 때문에 지난해 말 무려 4억원을 들여 전신성형을 한 데미무어의 이야기는 반면교사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몸매에 대해 강한 강박관념을 가져 왔다. 내 스스로의 가치에 점수를 매길 정도였다. 심지어 내 몸을 지배하려고도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몸매가 바뀌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고 돌아온 것은 일시적인 행복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허무함만 가져다 줬다"

-영국판 엘르 5월호 기사 중에서

 

성형은 어떤 의미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성형은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처럼 단순한 선택이 되어선 안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성형을 권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개개인의 의식밖에 없다는 사실은이참으로 답답하고 애석한 일이다.

 

아프리카 부족인들이 성형을 하는 것은 가혹한 생활조건과 최소한의 미를 위한 방법이다. 그들은 성형을 하고 자랑스러워한다. 서로를 칭찬해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엄청난 돈을 들여 성형을 하고도, 이것이 알려지면 ‘조롱감’이 되기 일쑤다. 과연 우리와 그들 중 어느 쪽이 더 미개한 것일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