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손자병법은 정말 병법서인가?

朱雀 2011. 6.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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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 사진출처: 위키백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손자병법>을 읽어보지 않은 이라도, 하다 많이 들어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유명한 말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라는 경구는 <손자병법>의 대표적인 구절로 여러 책에서 인용되는 그야말로 유명한 문구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 한가지! <손자병법>에는 이런 말이 없다. 정확히 따지면 비슷한 말은 있다. ‘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가 정확한 말이 되겠다.

 

굳이 <손자병법>을 찾아보지 않아도, 인터넷 검색만으로 알 수 있는 문구가 왜 이렇게 오역이 되어서 세상에 퍼져 있는 것일까? <손자병법>은 춘추시대 손무라는 이가 지었고, 이를 손자인 손빈이 완성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손빈이 지은 것으로 <손빈병법>이 지난 1972년 중국에서 발견되면서, 그러한 일반적인 사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손빈병법>은 중간에 사라진 부분이 많아서, 아쉽기는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손자병법>과 많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를테면 <손자병법>에선 성을 공략하는 것에 대해서 (희생이 크다고) 회의적인 편인데, <손빈병법>은 성을 공략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손무와 활약했던 시기와 손빈이 활약했던 시기가 달라진 탓도 있겠으나, 이는 근본적으로 두 사람의 사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손자병법>은 이른바 무경칠서의 첫 번째로 꼽힌다. 그러나 <손자병법><오자병법><사마병법><위료자><육도삼략><이위공문대>등과 많은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손자병법>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병법서가 구체적인 진법이나 전투 그리고 전쟁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반면에, <손자병법>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그친다. 특히 <손자병법>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로 치는 등, 읽다보면 정말 전쟁을 위해 쓴 책이 맞아?’라는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게다가 <손자병법>은 무려 2천년 전의 저술이므로, 오늘날에는 전혀 맞지가 않다. 따라서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이른바 전쟁하는 방법이란 어떤 면에서 전혀 쓸모가 없다. 따라서 오늘날 경제전략서 등에서 <손자병법>을 맨 첫머리에 위치시키는 것은 어떤 면에서 겉멋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20대 시절 아무리 읽어도 <손자병법>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답답한 나머지 무경칠서를 비롯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중국의 병법서들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제서야 어느 정도 내용이 체계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위에서도 적었지만 병법서로 놓고 보자면 <손자병법>함량미달의 저서라는 생각 뿐이었다.

 

<손자병법><소설 손자병법>에도 잘 묘사되어 있지만, 춘추시대를 살았던 손무라는 이가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취재한 끝에, 집대성한 저술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중국 최대의 혼란기로 진시황제가 통일하기 전까지 무려 5백년(BC. 770~221)이 넘도록 여러 나라들이 패권을 두고 싸운 시기였다.

 

백성들은 살기에 참혹한 시기였으나, 역설적으로 재능이 있는 자로 언제든지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고, 혼란에서 벗어나고자 제자백가들이 사상을 내놓았기 때문에 가장 문화적으론 풍성한 시기였다.

 

손무는 그런 시기를 살아간 인물이었다. 수시로 벌어지는 전쟁 때문에 백성들이 고통에 빠져있는 것을 보면서 그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손자병법>은 일반적으로 법가의 사상과 도가의 사상 그리고 도축하는 법등이 혼합되어 저술된 책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손무는 취재를 하면서, 각 나라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그 본질을 꿰뚫고자 애를 썼다. <손자병법>은 단순한 병법서가 아니라, 손무라는 사상가가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기 위한 일환으로 전쟁을 통해 세상을 본 책이라는 게 좀 더 정확한 분석이 아닐까 싶다.

 

물론 손무는 잘 알려진 대로 오왕 합려의 휘화에 들어가 당시 강국이었던 초나라를 거의 멸망시키기 일보직전 만들 정도로 큰 활약을 한다. 그러나 그 후 그는 종적을 감췄다. 아마도 전쟁에 회의를 느낀 탓이었으리라.

 

손무가 만약 입신양명을 꿈꿨다면, <오자병법>의 저자인 오기처럼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얼마든지 벼슬을 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야망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가 왜 오나라에서만 활약하고 그 이전과 이후에는 전혀 활약이 없었는지는 역사의 미스테리로 남겠지만, 우린 <손자병법>을 통해서 그가 꿈꾼 세상을 어렴풋하게나마 읽을 수 있다.

 

모든 고전이 그렇지만, 고전은 오늘날과 시대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저술가에 대해 알지 못하면 오해하기 쉽다. 또한 당대의 여러 자료를 보지 못하고, 그 책 한권만 보면 정말 잘못 해석하기가 너무나 쉽다.

 

<손자병법>은 병법서로는 함량미달이다. 당시에 제일 필요한 성공략에 대해서나 전투에 대해선 구체적인 방법이나 묘사가 매우 부족하다. 그보다는 인간본성과 전쟁을 통해 세상을 꿰뚫어보고자 애쓴 저서다. 우리가 오늘날 <손자병법>을 읽는 것은 병법서로서가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인 손무가 남겨놓은 인간에 대한 통찰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전략서 등에서 <손자병법>을 인용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는 동물이다. <손자병법>에 있지도 않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고, 경제관련서적 등에서 <손자병법>이 자주 인용되는 것은 <손자병법>을 그야말로 잘못 이해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지하에서 손무가 이 사실을 안다면 아마도 통곡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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