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댄스스포츠에 맘보를 빼앗긴 한국 살사

朱雀 2011. 7. 9. 07:00
728x90
반응형



어제 우연히 <댄싱 위드 더 스타>를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살사를 춰온 탓에, ‘을 경연의 소재로 삼은 <댄싱 위드 더 스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제 개인적으로 가장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바로 제시카 고메즈와 박지우 커플이 맘보를 춘 탓이었다. 우리에겐 장국영이 <아비정전>에서 춘 것으로 잘 알려진 맘보는, 쿠바에서 탄생한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쿠바의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이것도 짬뽕이다. 쿠바의 리듬에 미국의 재즈음악을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춘 춤은 맘보가 아니다. 맘보를 출줄 모르는 장국영은 그냥 춤에 맞춰 자기 멋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장국영이 추니까 멋져 보인 거지, 맘보를 알게 되면서 그게 얼마나 '엉터리 춤'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

 


사진제공: 맥팬(www.macpan.co.kr)


맘보는 그런 음악에 맞춰 추던 춤인데, 사실 살사와 맞닿을 수 밖에 없다. 살사 역시 쿠바인들이 아바나(우리가 보통 하바나라고 발음하는)에서 연주하던 것을, 거리상 가까운 마이매이 등으로 이동해서 연주하고 춤을 추면서 발전했기 때문이다.

 

맘보가 애초에 짬뽕이기 때문에, 적자를 논하는 것이 우습지만, 그래도 정확히 따진다면 미국의 뉴욕에 뿌리를 둔 에디 또레스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온투 살사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그는 맘보를 현대에 맞게 적용 및 변형 그리고 발전시킨 장본인이다!

 

초창기 맘보와 어느 정도 달라졌지만, 맘보는 온투 살사를 통해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오늘날 국내에서만 살사 역사가 10년(정확히는 올해로 15년째)이 넘은 한국 살사계에게 가장 각광받는 춤이 바로 온투 살사! 국내 살사 초창기에는 LA에서 미국인들이 추기 쉽게 변형된 온원 살사가 들어와서 유행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뉴욕의 댄서들을 비롯한 세계적인 명사들의 국내 공연과 강습 그리고 국내 인스트럭터들이 온투를 추게 되면서, 이른바 고수들이 열광하게 되고, 이윽고 현재는 모두들 온투 살사를 추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맘보 공연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처음 든 생각은 국내 살사계가 오늘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자기들끼리만 즐기지 말고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했다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댄스스포츠는 국내에서 많은 설움과 부침을 겪었다. 80년대엔 아주머니들이 장바구니를 놓고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이른바 제비들과 춤을 추는 것으로 풍기문란으로 자주 뉴스에 등장했다. 그때마다 아주머니와 제비들이 얼굴을 가리는 장면이 자주 희화화되곤 했다.

 

댄스스포츠계의 원로들은 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던 시절에 누구보다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들은 음지에 있던 문화를 양지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고, 2세들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따고 댄스 스포츠의 모든 이들이 꿈꾸는 무대인 블랙 풀무대까지 진출했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쉘위댄스>에 등장하는 그 꿈의 무대 말이다-

 

제시카 고메즈의 파트너인 박지우는 지난 2004년 동양 선수로는 처음으로 블랙풀에 출전해 12강에 올랐고, 2005년에는 누나인 박지은과 함께 마카오 동아시안 게임에 출전해 차차차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대단한 선수다! 최근 엄청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나는 가수다>에서 옥주현과 호흡을 맞춰 옥주현의 남자로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가는 등. 그는 지금도 댄스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누구보다 첨병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런 박지우를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 일 것이다. 게다가 맘보를 실질적으로 발전시킨 온투살사를 즐겨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말이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만약 국내 살사계가 저변확대를 위해 한목소리로 노력하고, 복잡한 살사를 누구나 쉽게 출 수 있도록 하고, ‘협회같은 것을 만들어 노력했다면.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최소 한두명 이상은 살사댄서들이 연예인들과 팀을 이뤄 함께 심사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살사계는 그런 노력을 게을리 했다. 2007~2008년은 국내살사계의 실질적으로 마지막 부흥기였다. 압구정역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곳에 100평이 넘는 거대한 살사바 ’이 오픈할 정도로 그 기세가 대단했다! 이곳에서 국내 살사인들은 밤새 살사만 추며 놀았다!

 

거기서 맥주를 비롯한 가벼운 알콜음료가 팔긴 하지만, 쉴새없이 살사음악이 울려 퍼지고 살세로(남자)와 살세라(여자)는 쉴새 없이 살사를 춰댄다. 살사는 한평살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공간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사진제공: 맥팬(www.macpan.co.kr)

게다가 살사는 근본이 없는 춤이다! 댄스스포츠를 만든 나라는 영국이고, 발레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에 반해 살사는 쿠바에서 망명한 음악가들이 미국 음악을 영향을 받아 만든 음악이고, 여기에 맞춰 쿠바인들이 춤을 추고, 이것을 미국에 있던 댄서들이 자유롭게 변형하다보니, 발레와 힙합 그리고 댄스스포츠 등의 다양한 춤의 요소들을 받아들여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따라서 댄스스포츠를 비롯한 모든 춤이 격식을 갖추고 추는 점잖은 춤이라면, 살사는 애초에 클럽에서 놀기 위해개발된 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아크로바틱(곡예)가 가미된 난이도 높은 공연을 하고 싶다면, 살사만한 것이 없다. 상대적으로 이젠 나이를 많이 먹어 골골한 노인들이 쉽게 짝을 이뤄 편하게 춤을 추기에도 살사는 좋다. 애초에 놀기 위해 만들어진 춤이고, 정해진 것이 없다보니 누구나 쉽게 변형해서 출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힙합만큼은 아니지만, 격렬하고 빠른 춤사위를 전개할 수 있기에 오늘날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는다. 따라서 탱고와 스윙을 비롯한 다른 춤들이 부러워할 만큼 살사인구는 꽤 많은 축에 속했다. 정확한 통계는 낼 수 없지만 약 10만명이 넘어가며, 서울에만 약 10개가 넘는 바가 살사만을 추기 위해 운영했고, 운영될 수 있었다.

 

살사를 추는 사람들은 살사바에서 술을 잘 먹지 않는다. 술을 먹으면 빠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출수 없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탓에 대화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살사인들은 살사바에선 춤만 춘다. 현재 살사바 입장료는 만원 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7천원이었다. 따라서 7천원만 내면 하루종일 살사를 출 수 있었다. 서울의 물가를 고려했을 때, 이렇게 몇 시간을 놀아도 경제적인 놀거리는 오직 살사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살사바를 운영하는 이들에게 아킬레스 건이었다! 수익구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살사계를 이끌어가는 인스트럭터들의 의식도 문제였다. 그들은 서로 분열되어, 당장 살사에 입문한 이들에게 강습을 많이 해서 수익을 얻을 생각들만 했다. 에디 또레스 같은 인물은 고사하고, 살사를 국내에 처음 보급한 이들을 ‘1세대라고 부르며 뒷방늙은이로 취급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살사협회는 분열을 일으키고 해체된 다음, 다시는 그런 식의 모임이 결성되지 않았다. ‘협회까진 힘들더라도 최소한 모임을 만들어 공동의 이해를 하나로 모아야 했다.

 

작은 살사계에서 한해에만 약 4개의 대회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대회 하나를 운영하기 위해선 최소한 몇천만원이 필요했다. 실패가 예정된 모험이었다. 국내 살사계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통합된 한개의 대회만이 필요했다. 그러나 살사계를 이끄는 오거나이저와 인스트럭터들은 각자 이익만을 고려했고, 이른바 고수로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이 편한 대로 대우받는 대로 이동했다. 한마디로 서로의 이기심에 따라 움직였고, 누구도 대의를 생각하지도 미래를 고려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사람을 춤실력만으로 일렬횡대로 길게 늘어세워서 대접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줄세우기' 문화는, 그래서 춤 못추는 이들은 모멸감을 느낄 정도로 무시하고, 예쁜 살세라(살사는 추는 여성을 일컫는 용어)만을 대접하는 미모지상주의의 문화는,
살사를 취미로 즐기기 위해 온 이들에게 처음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온 살사에 환멸을 느끼고 돌아설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때마침 다양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된 오늘날, 살사는 점점 설곳을 잃어갔다. 국내 살사계에 환멸을 느낀 나에게 들린 소식들은 서울에 위치한 살사바들이 하나씩 문을 닫고, 대회들이 하나씩 폐지되어가는 소식 뿐이었다.

 

살사계 인사들이 서야할 자리에 댄스스포츠 선수들만이 서 있는 모습은 씁쓸하게 다가온다. 21세기는 분명히 파티가 자리 잡는 시대가 될 것이다. 국민소득이 1만불을 넘으면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고, 사람들은 좀 더 고급스러운 문화를 향유하고 싶어한다.

 


사진제공: 맥팬(www.macpan.co.kr)

남녀가 함께 파트너를 이루어 추는 은 너무나 재밌고 멋지다. 따라서 아마 파티문화가 점점 발달해나갈 우리 나라에서 춤문화는 분명히 저변확대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분명히 이런 맥락 속에서 파악해야 하지 않나 싶다. 분명 공중파의 위력 때문에 아마도 많은 이들은 댄스스포츠 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맘보가 실은 살사라는 사실을 알리 없는 시청자들은 절대 살사학원이나 동호회의 문을 두드리지 않을 것이다.

 

파이를 키우고, 저변확대를 위해 방송을 비롯한 여러 노력을 하고, 한목소리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이겨내고, 영광의 순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그런 모습을 찾지 못했던 국내 살사계의 소리 없는 몰락은 정해진 수순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누구보다 살사를 사랑했고, 한때 열렬히 추앙해 마지 않던 상황에서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댄스스포츠 선수가 맘보를 추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쓰라리다 못해 아릴 지경이었다. ‘저건 살사댄서가 췄어야 하는데...’라고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말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