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스티브 잡스 위인전에 불과했던 ‘KBS 스페셜’

朱雀 2011. 10. 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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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KBS 1에선 스티브 잡스에 관한 특집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아무래도 그의 죽음 이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난무하는 지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고 나름 어렵게 시간을 내어 시청했다. 그리곤 몹시나 실망했다.

 

‘수박 겉핥기도 이 정도면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잡스의 일생이나 애플에 대해 정작 중요한 부분은 하나도 이야기 하지 않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스페셜 방송은 잡스가 기획한 ‘Think Differnt'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거기에는 에디슨, 간디를 비롯한 무수한 위인들이 나온다. 그러면서 그들의 특징을 말하면서,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큰 울림이 되어 돌아온다.

 

아쉽게도 이번 방송은 그 한줄의 문구에 사로잡혀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오질 못했다. 잡스의 생가 근처에서 한 소년은 말한다. ‘새로운 것도 많이 만든 분이죠’ 이건 반만 맞는 대답이다.

 

방송에서도 나오지만 잡스는 하늘 아래 없던 것을 만들지 않았다. 기존의 연구소 등지에서 이미 개발되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조명을 받지 못했거나(제록스 연구소의 GUI가 대표적인 사례), 아직 그 가능성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픽사) 등이다.

 

 

그러나 동시에 잡스는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가정용 PC는 그 이전까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가정용 PC는 그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매우 늦게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애플 II를 만든 것은 스티브 워즈니악이다. 잡스는 워즈니악이 만든 애플을
보고 '개인용 PC 시대의 도래'를 예견한 천재였다.



그러나 GUI를 채택한 맥킨토시와 아이팟-아이패드 등으로 가면 이야기가 매우 달라진다. ‘과연 그가 아니면 나왔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콘>이란 책에 잘 나와있지만 잡스는 처음에는 하드웨어에 집중했다. 그가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어낸 초창기 애플을 보고 ‘이거다’ 싶은 점은 분명 놀라운 통찰력이었다.

 

그 이전까지 ‘컴퓨터란 전문가나 연구소에서 쓰는 것’이란 막연한 상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작고 가벼운 컴퓨터를 내놓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가정용 PC도 가능하구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애플 II를 비롯한 제품을 만들면서 잡스는 소프트웨어에 주목하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의 애플엔 쓸만한 프로그램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팟으로 가면서 그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플러스 알파된 개념을 입히게 된다.

 

아이팟은 흔히 눈앞에 보이는 조그만 휴대용 기기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그는 단순히 휴대용 기기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때 그는 아이튠즈를 통해 자동으로 업그레이드가 되고, 거대 메이저 음반사들을 설득해서 0.99달러에 뮤지션들의 음악을 다운받을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물론 이전에 미국에선 넵스터-한국으로 치면 소리바다-를 통해 온라인 시장의 파괴력을 보여주긴 했다. 그러나 당시 넵스터는 그냥 음악을 다운받는 해적시장에 가까웠고, 온라인으로 음악을 다운받는 시대가 왔음에도 메이저 음반사들은 해킹이나 불법다운이 두려워서 저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소비자가 아닌 공급자 편의를 위한 갖가지 다운방식을 만들어냈다.

 

모두가 하나의 포맷으로 적당한 가격에 다운받도록 하는 ‘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모두의 이해관계를 이끌어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음반시장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잡스가 모든 음반사들을 설득해서 게다가 1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팔도록 이끌어냈다. <아이콘>에 보면 그를 만난 것 만으로도 음반사 관계자가 열렬한 신도가 되었다고 하니, 새삼 그의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뿐인가? 아이팟 등을 계속해서 사용자들이 해킹해서 쓸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자, 잡스는 아예 개방하고 그들이 프로그램을 합법적으로 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준다. 그게 바로 오늘날의 ‘앱스토어’이다! 30%를 제외하면 70%를 제작자가 가져가는 시스템은 잡스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이윤시스템이었다.

 

 

잡스는 단순히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만들었다! 우리가 만약 잡스가 만든 아이맥, 아이팟 등에 초점을 맞춘다면 정말 작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를 본다해도 많은 것을 놓치는데, 그런 건 아예 일언반구 비치지도 않았으니 그야말로 답답한 일이었다.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를 오늘날 IT업계의 화두인 ‘클라우드’를 설명하는 데, 꼭 집고 넘어가야할 단어이기 때문이다.

 

1991년 자신이 세운 애플사에서 쫓겨난 잡스가 ‘그들은 오로지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해 있었다’라고 비난했다. 물론 이해는 간다. 자신이 세운 회사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그러나 당시 애플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당시 애플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초창기 애플

은 수명을 다했고, 새로 나온 맥킨토시는 하위기종과 호환이 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쓸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맥킨토시에겐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심지어 MS사에선 GUI를 채택한 윈도우 개발에 한창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늪에 빠진 당시의 애플사가 책임을 잡스에게 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 <애플을 벗기다>를 참고하도록-

 

애플을벗기다독창성은왜그들의발목을잡았는가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일반
지은이 안병도 (웅진지식하우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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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쫓겨난 이후에도 ‘NEXT'를 세워 ’넥스트 큐브‘를 만들지만,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과 쓸 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이유로 역시 실패하고 만다. 잡스는 애플사에서 쫓겨난 시기를 흔히 ’야인의 시대‘라고 칭한다. 그는 애플사에서 이룩한 위대한 성공이후 줄줄이 실패를 달고 살았다. 그의 디지인과 신기술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시대를 외면하고, 너무 시대를 앞서간 나머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실패의 세월은 그를 시대와 적절히 타협할 줄 아는 정신을 길러줬다. 아울러 그에게 재기의 발판을 선사한 ‘픽사’는 또 어떤가? 잡스가 처음 루카스에게서 픽사를 헐값에 구매했을 때만 해도, 그는 단순히 소프트웨어 장사를 하기 위한 공장으로 구매한 것이었다. 잡스가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어서 픽사가 세계최고의 3D 애니메이션을 만들 줄 알고 사들인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픽사는 <토이스토리>를 비롯해서 전 세계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는 명작 애니메이션들을 내놓았고, 픽사는 메이저 영화사인 디즈니사를 좌지우지 하면서 협상을 했다. -여기서 스티브 잡스의 협상력이 다시 빛난다, 자세한 내용은 <아이콘>을 읽어보라!-

 

잡스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죽었다고 해서 너무나 미화하면 또한 곤란하다. 우리가 그의 성공의 신화에 대해 잘못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잡스는 ‘타고난 천재형’이다. 그는 대학원생 미혼모로 태어났기에 입양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평생을 콤플렉스 속에서 살았다. 그는 인도로 여행을 떠날 정도로 동양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선’에 심취해있었던 것은 단지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그의 제품 속에서 체취를 남기고 있다.

 

ICON스티브잡스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제프리 영 (민음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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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해는 간다. 스티브 잡스같은 인물에 대해 겨우 1시간으로 축약해서 보여준다는 것은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그의 생애를 미화해서 그냥 보여주는 데 나열해서는 전파낭비에 불과할 뿐이다. 시청자역시 얻어가는 게 없으니 시간낭비에 불과할 뿐이고.

 

잡스가 워즈니악의 발명품인 애플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애플 II'를 만들게 한 이유와 애플이 현대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 그가 만들어놓은 아이튠즈와 앱스토어가 어떤 생태계를 만들었고, 다른 기업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가 남긴 유산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등을 조명해야 옳지 않았을까?

 

단순히 ‘그는 몇 십년 후엔 위대한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의 무책임한 발언은 그의 위대성을 폄하하고 시청자를 우롱하는 일일 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전혀 얻은 게 없진 않았다. 책이나 기사에서 들었던 귀한 영상자료를 본 것은 나름 수확이긴 했다. 그러나 그 외엔 정말 시간낭비였다.

 

차라리 <애플을 벗기다>와 <아이콘>을 한번 더 읽는 것이 더욱 스티브 잡스에 대해 아는 방법일 것이다. 잡스는 만약 약점과 단점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딸인 리사를 인정하지 않았고, 남이 공적을 가로채는 뻔뻔함을 보였다.

 

그러나 그런 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대성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지?’라고 묻는 그는 시대를 앞서나가고, 혼란에 빠진 IT업계와 소비자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잡스교’가 나올 수 있었고, 고객들이 제값 다주고 사면서도 애플에 열광했던 것은 거의 신에 가까운 그의 예지력과 행동 때문이었다.

 

그런 엑기스를 빼먹은 방송을 보니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인물에 대한 예찬이 아니다. 현실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자료를 보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잡스의 죽음은 분명 개인적으론 애도할 만하고, 그의 위대성은 훗날 역사가 분명 재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잡스라는 이름의 가지는 무게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겐 왜 잡스가 없는가?’란 말도 안되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잡스 양산’을 지시하는 누군가처럼 황당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타고난 천재성과 직관력 그리고 그의 독특한 생애와 미국이라는 문화가 빚어낸 걸작품인 것이다. 그건 미국을 제외하곤 다른 나라에선 나오지 않은 독특한 인물이다. 따라서 제 2의 잡스는 나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위대성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다른 식의 천재들이 나오는데 일조할 가능성이 높다.

 

오는 25일 발매예정인 그의 전기는 신비주의에 싸인 그의 일생에 대해 얼마나 정보를 줄지 기대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선입견과 편견에 싸이지 않고 올바르게 보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를 보면서 ‘위대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업적 등을 제대로 보게 될 때, 한국 역시 작게는 IT에서 크게는 여러 분야에서 천재적 업적을 이루게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 <애플을 벗기다>,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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