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도올 김용옥 교수 '창조론 vs 진화론'에 대해 입을 열다!

朱雀 2011. 10. 11.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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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올 김용옥 교수는 자신이 강의하는 <중용, 인간의 맛> 시간에 질문을 받았다. 거기서 한 청년이 지난 시간에 그가 했던 ‘유교가 다른 종교와 충돌하지 않는다’라는 대목에 대해 질문을 했다.

 

 

‘어떤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유교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양자가 융합될 수 있는지?’하고 말이다. 얼핏 들으면 이건 꽤 일리 있는 말이다. 유교는 뒤에 교(敎)가 붙기 때문에 종교로 오해하기 쉽다. 따라서 종교라면 다른 종교적 가르침과 갈등을 빚을 수 밖에 없다. 만약 기독교를 믿는 이가 불교적 가르침을 듣는다면, 그의 내부에선 천사와 악마가 싸우듯, 갈등을 일으키는 게 뻔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인정하듯이 유교는 그냥 우리 삶에 대한 가르침일 뿐이다.

 

 

도올 역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유교는 종교와 융합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모든 종교적 신념 이전의 인간 삶의 상식에 대한 담론’이라고. 그리고 아예 ‘Learning to human'이라고 쓰며 ’사람되기‘를 강조한다. 즉, 유교는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완성된 인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창조론과 진화론이 아직까지 갈등을 빚는 미국을 예를 든다. <미국사산책>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오늘날까지 미국에선 창조론을 진화론과 동일하게 과학적 이론으로 과학시간에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전체 인구의 50%에 이른다.

 

이는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유를 제공한다. 서구에선 중세시대부터 종교와 과학이 갈등을 일으켜왔다. 천동설과 지동설이 대표적인 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은 이유는, 성서를 바탕으로 지구를 세상의 중심으로 놓은 종교적 가르침에 전적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지구의 중심을 바티칸으로 두고, 온 우주의 중심을 로마에 두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따라서 세계를 넘어 우주의 중심이었던 로마 카톨릭에선 갈릴레오가 주장하는 지동설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리라.

 

종교와 과학이 갈등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서구에선 르네상스를 비롯해서 중세에서 벗어나는 데 과학적 힘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 역시 종교에서 벗어나는 데 사용되지 않았던가? 따라서 오늘날까지 과학과 종교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근데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창조론이 진화론과 같은 과학적 이론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일단 창조론의 가장 큰 맹점은 진화론이 약점 몇 가지를 들고, ‘진화론은 인간이 세상에 나왔는지 완벽하게 설명하지 않으니, 창조론이 옳다’는 식이다.

 

진화론은 여태까지 나온 이론 중에서 가장 포괄적으로 가장 그럴 듯하게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물들이 어떻게 출현했고 발전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틀렸다는 결정적인 증거나 다른 이론이 출현한다면, 얼마든지 옮겨갈 수 있다.

 

그에 반해 창조론은 어떤가? ‘진화론이 틀렸으니 창조론이 옳다’는 건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수준을 넘어선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과학으로 인정한단 말인가? 과학은 ‘인간의 이성’이다. 그 이성 이라는 틀에 신은 아예 들어오질 못한다. 따라서 신은 믿음의 존재이지, 이성의 존재가 될 수 없다.

 

도올은 유학자들이 18세기와 19세기에 과학을 열렬히 받아들인 사실을 지적한다. 도올의 지적대로 유학자들은 서구의 과학을 보고 ‘배워라’라고 역설했다. 생각해보면 천주교 역시 처음에는 ‘천주학’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천주학을 믿는 이들을 박해하긴 했지만, 정약용-정약전 형제들도 책을 구해 공부할 정도로 당시 유생들에겐 폭넓게 다가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도올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들고 나온다. 사물의 객관적으로 이해해서 참된 지식에 도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수신의 궁극적인 방법이었다.

 

따라서, 유교가 기독교와 과학에 대해 열릴 자세로 대했고, 훗날 유교국가들이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끝으로 도올은 ‘유교는 상식의 기저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적 갈등이 없고, 이 사실이야말로 조선문명이 정신적으로 세계사를 리드할 수 있는 강점이다’라고 말했는데, 공감가면서도 한편으론 동감하기 힘들었다.

 

유교국가였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는데는 도올의 분석이 상당 부분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사회에선 미국과 마찬가지로 창조론과 진화론이 엄청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있던가?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1천만 기독교인들이 진화론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고, 타종교인에 대해 두드러기가 일어날 정도로 싫어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얼마 전,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봉은사로 가서 ‘땅밟기’ 행사 관련 동영상을 올려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경우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요상하게 왜곡되어서 미국이나 서구유럽과는 다른 무척이나 배타적인 종교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대형교회목사가 설교시간에 특정 정당에 표를 몰아줄 것을 주문하는 웃기지도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부족해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두고 기독교정당이 나올 예정이라니. 역사시간에 배운 ‘재정일치’가 오늘날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이적을 몸소 실천하신 셈이다. 정말 할렐루야!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기독교 역시 위기위식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80%를 넘는다. 따라서 청년들은 깨어있고, 기독교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고, 다른 종교에 대해 열릴 자세로 취한다. 그런 청년의 입장에서 폐쇄적인 입장을 취하는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1천만 운운하던 기독교 신자는 최근 800만대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오늘날 교회들 역시 일부 대형교회를 빼놓고는 점점 운영이 힘들어져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일부 기독교 단체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행보를 보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도올이 하는 말이 모두 옳다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권위주의가 넘쳐나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배우고 아는 것을 최대한 집대성해서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알려주는 데 도올만한 인물이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또한 대학생들에게 열릴 자세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하고, 많은 대학생들이 그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생전에 스티브잡스는 자신이 하는 일이 ‘인문학과 IT의 교차로’라고 표현하곤 했다.

 

우리는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서구적 가치관과 과학을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 우리를 잊어버리고, 많은 좋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등을 거치면서 유교의 좋은 가치는 망실하고 허례허식을 비롯한 껍데기와 잔재만이 남아 ‘유교’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도올이 2000년쯤부터 노자와 <논어>를 들고 나와 강의를 하면서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하겠다.

 

드디어 우리 역시 우리의 뿌리를 다시 보면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젊은 시절 인도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구루를 만나 한달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필자는 잡스가 그 기간동안 어떤 식으로 깨달은 것이 그의 인생 내내 관통했다고 여긴다. 그의 고도의 미니멀리즘 디자인이나,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직관력을 발휘하는 부분 등은 아무리봐도 종교적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어떤 신을 믿고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대신, 종교적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른 면에서 보는 데 이용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도올의 강의를 들으면서 잡스처럼 과학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을 채웠으면 하는 바람을 하나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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