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삼봉 정도전이 꿈꾸던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朱雀 2011. 10. 1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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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송된 <뿌리깊은 나무>에선 삼봉 정도전의 조카인 정기준이 등장해서, 어린 이도를 향해 ‘네 아버지가 삼봉의 조선을 도적질했다고 힐난했다’. 얼핏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가 건국한 나라다. 따라서 이성계의 아들인 태종 이방원의 나라가 맞아 보인다.

 

그런데 왜 어린 충녕대군은 그의 말에 한마디 대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일까? 안타깝지만, 자신의 아버지 태종이 정도전의 나라를 도적질한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봉 정도전이 꿈꾼 조선은 어떤 나라일까? 서구유럽이 이상적으로 꿈꾸는 나라는 그리스에 위치한 도시국가 아테네다.

 

그곳에선 시민들이 아침부터 아고라에 모여 정치에 대해 토론하고, 시민들 모두가 정치현안에 대해 직접 투표를 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초기형태의 민주주의다.

 

<뿌리깊은 나무>를 이야기 하는데 갑자기 아테네 이야기를 해서 당황스러울 것이라 여겨진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하는 이야기는 자다가 일어나서 남의 다리를 긁는 것만큼 당황스러울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감히 주장한다. 삼봉 정도전이 만들고자 한 나라는 어떤 의미에선 초기 민주공화국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정기준이 지적했지만, 삼봉 정도전은 조선의 건국철학과 정치기구등을 모두 만들었다. 따라서 ‘조선은 삼봉의 나라’라는 말에 충녕대군이 대꾸하지 못한 것이다.

 

육조를 만들고,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이 있고, 사간원을 비롯한 삼사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세세히 설명하면 산으로 가니, 아주 쉽게 설명하겠다. 어제 <뿌리깊은 나무>를 보면 드러나지만, 삼봉 정도전이 꿈꾼 조선은 사대부들이 다스리는 나라였다.

 

조선에도 왕이 존재하지만, 그건 거의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사대부들이다. 물론 왕명을 받는 형식을 취하긴 한다. 그러나 육조를 비롯해서 세세하게 나뉘어진 조직은 맡은 바 소임에 따라 나라일을 나눠 한다.

 

그리고 왕은 철저하게 신하들의 견제를 받아 그 왕권이 제약을 받는다. 예를 들어보자, 왕의 업무는 상소를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상소는 당시 글을 아는 선비라면 누구나 써서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오늘날의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 등에서 추리긴 하지만, 그 양은 방대하고 사안도 가지가지였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이메일로 국민이 직접 정치적 사안에 대해 의견을 표출한 셈이 된다.

 

그뿐인가? 왕은 매일같이 경연을 하는데, 이게 말이 좋아 경연이지, 사실 신하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셈이다. 어떤 정치적 현안이 있을 때, 신하들이 경연을 핑계대고 갖가지 중국고사를 들어 왕을 설득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 이 경연을 역이용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세종과 영-정조를 들 수 있다. 그만큼 이들 임금은 박학다식했다-

 

사극에서 흔히 나오지만, 조선의 왕은 어떤 일을 하나 처리하려면 신하들과 오랫동안 입씨름해야 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 이런 경우가 있었을까? 단언컨대 없다.

 



태종 이방원은 칼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과연 이런 나라가 오래 갈 수 있을까? 칼로
반대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잠시 뿐이다. 결국 나라를 통치하고 백성을 다스리려면 문을
택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세종은 겨우 건국한지 30년도 안된 나라의 임금으로서 멋
지게 해냈다. 물론 그런 기저에는 조선의 통치이념과 제도등을 만들어낸 삼봉의 공도 무시
할 수 없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도 삼국시대-통일신라-고려 등의 시대가 있었고, 왕권과 신권이 대립하면서 신하들의 힘이 쎄졌을 때는 신하들이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느냐고? 올바른 지적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이전과 조선시대는 컨텐츠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은 통치이념이 불교와 유교였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이전까지 귀족들이 정치를 담당하긴 했지만, 이들은 철저히 신분제에 의해 세습되었다. 물론 조선시대 양반도 세습이긴 하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다. 바로 과거제도다!

 

조선시대 이전까지 귀족들은 철저하게 세습되었다. 그들은 능력여부와 상관없이 그저 귀족으로 태어나면 자손도 귀족이었다. 물론 조선시대 양반도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 가문은 스러진다. 아무리 잘나가는 정승판서 집안이라도 그 자식이 벼슬길에 올라서지 못하면, 결국 그 집안은 망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모든 월급을 털어넣는 것처럼, 당시 양반집은 자식들을 벼슬길에 내보내기 위해 이름난 선생을 찾고 수려한 자연풍광이 있는 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과거때가 되며 거의 똑같은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관리를 뽑으면서 시험을 통해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한 사례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안다. 심지어 공자가 태어난 중국에서조차 과거제도를 시행한 예는 그다지 많지 않다. 조선시대는 무려 500년 가까이 과거제도를 시행해서 사방에서 인재를 뽑았다.

 

게다가 이렇게 뽑힌 선비들은 주자학에 근거한 군자였다. 군자란 단순히 학문을 닦는 이들이 아니다. 이들은 육례를 익히면서-지금으로 치면 국영수는 물론이요, 예체능까지 겸비한-인격적으로 학문적으로 완성된 인간이었던 셈이다. 조선의 조정은 그런 군자들이 모여서 나라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한 곳이다.

 

물론 항상 그런 이상대로 잘 굴러가진 않았다. 그러나 조선이란 나라는 당시 시대적 한계를 고려하면, 가장 최신식 이론으로 무장해서 가장 깨어있는 생각으로다스려진 나라였다. 어떤 나라가 지배층을 뽑는데, 출신이 아니라 실력을 중요시 여겼을까? 어떤 나라가 임금의 권한이 그토록 축소하고, 사대부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유교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겠는가?

 

‘밀본’이란 허무맹랑한 조직을 등장시킨 점은 아쉽지만, 삼봉 정도전이 꿈꾸던 나라는 분명 ‘밀본’이란 조직의 출생에 대해 논한 것과 비슷할 것이다. 우린 조선시대가 명나라와 청나라에 사대를 하고, 당쟁이나 일삼은 한심한 나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도전의 아우 정도광이 밀본지서를 보고 좋아하는 모습은 분명 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밀본지서에서 드러난 생각은 정도전이 꿈꾼 조선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조선은 한반도에서 이전까지 없었던 나라로, 인격적으로 학문적으로
완성된 군자들이 모여서 나랏일을 보는 세상이었다. 능력만 있으면 과거제를 통해
입신양명할 수 있었던 부분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들다. 공부하지 않으면
양반도 망한다는 측면에서, 이전까지 귀족들과 많이 다르다. 아마, 우리의 극성스럽
학구열은 조선시대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그러나 한반도에 위치한 조그만 국가였던 조선이 당시 강대국이었던 명나라와 청나라를 섬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날 우리도 미국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지고 있지 않은가? 그건 작은 나라가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정치를 하는 가운데 서로 의견이 다른 집단이 충돌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일본 등 어디를 보아도 정치적 의견차이로 정당이 극심하게 대립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조선은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세 번 재판을 받았고, 사형은 왕이 직접 결정했다. 반역만 아니라면 사형이 집행되는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여인은 시대적 한계 때문에 정치에 나서진 못했으나,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을 유지하고, 조선 중기까진 집안내에서도 발언이 꽤 쎘다. 이런 나라는 당시 조선이 유일하다.

 


정기준은 어린 세종을 향해 '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한다. 이건 매우 중의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고 본다. 실제 역사속 세종은 태종이 칼로 신하와 백성을 내리치는 것에
대해 무력하게 봐야만 했다. 그리고 실제로 조선이란 나라는 왕보다 신하-사대부-가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체제였다. 그러나 세종은 우리가 잘 알듯이 무력이 아니라 문으로 치세했다.
그는 신하들과 끊임없이 토론했고, 능력이 있다면 그 자의 신분과 상관없이 등용해서, 보기 드문
태평성대를 이룩했다. 정기준의 말은 오히려 세종을 자극해서 그가 더욱 훌륭한 나라를 만드는
잠언이 되어버렸다.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삼봉 정도전이 꿈꾼 나라는 유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주자학을 열심히 공부한 선비들이 모여서, 백성과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회였다. 실제로 조선의 왕의 권력은 몹시 제약되어 있었고,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이나 광해군등도 중국의 역사와 비교하면 ‘정관의 치’를 이룩했다는 당태종보다도 훨씬 성군이었다. 조선은 바로 그런 나라였고, 삼봉 정도전은 이전까지 한반도에 없었던 정치철학을 체계화시켜 나라를 건국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따라서 <뿌리깊은 나무>에서 태종을 함부로 칼을 휘두르며 ‘칼잡이의 나라’로 운운한데는 사실 조선왕들은 크게 할말이 없다. 태조 이성계가 그렇고, 태종 이방원이 그렇고, 조선의 왕을 보면 문으로 뛰어난 임금은 세종을 제외하면 몇분 되시기 않고, 몹시 부족한 왕들이 자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가 5백년이 갈 수 있었던 것은 사대부가 실질적으로 다스리는 국가 시스템을 잘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니라, 사대부들의 나라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PS. 오늘 13일(목) 밤 9시부터 집현전 꽃미남 3인방 김기범(슈퍼주니어)·천재호·현우와 광평대군 서준영 및 궁녀 G3 신소율·심소헌·이세나 등 배우 7명이 시청자 200여명과 함께 SBS방송센터에서 인터넷 제작발표회를 진행하고, 이들의 첫 출연을 기념하며 <뿌리깊은나무> 4회를 함께 본방사수할 예정이라는 군요.

 

SBS홈페이지(http://tv.sbs.co.kr/root)와 트위터(@SBS_ROOT)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고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신청해보는 것도 <뿌리깊은 나무>를 더욱 재밌게 시청하는 방법이 될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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