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스타일’은 트랜디 외피를 둘러쓴 권력투쟁기다!

朱雀 2009. 8. 1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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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의 감정과 관계를 잘 보여준 식탁신. 물론 가장 빛나는 인물은 권력 투쟁의 승리자인 김혜수다!



지난주 1,2 화를 보면서 나는 <스타일>을 닳고 닳은 트랜디 드라마의 하나로 보았다. 따라서 이지아의 오버 연기도 류시원의 존재감 없는 캐릭터와 어설픈 카리스마를 내뿜는 ‘엣지’없는 김혜수의 연기에 상당히 불만을 품었다. 무엇보다 구태의연한 스토리 전개에 짜증이 났다.

어라?! 그런데 3, 4화를 보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스타일>은 명품 잡지사인 <스타일>의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근데 중요한 것은 패션 잡지이지만, 이 드라마엔 ‘패션’이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엔 일과 사랑도 없다. 물론 김혜수가 비싸고 화려한 옷들로 수시로 패션쇼를 하고 일하는 장면과 김혜수, 류시원, 이지아, 이용우의 4각관계가 조금씩 부각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나오진 않았다.

<스타일>은 3,4화만 놓고 보면 트랜디 드라마의 외피를 둘러싼 권력투쟁기다. 1, 2화에서 김혜수는 후배기자들에겐 강하고 편집장과 발행인에겐 한없이 약한 박기자로 출연했다. 그러나 3화에서 그녀는 그런 이중적인 모습에서 벗어난다. 서우진 특집을 가지고 편집장과 대립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편집장의 비리를 폭로하며 사직서를 제출하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기자는 초반에 전형적인 중간관리자 입장을 취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성격대로 일을 진행함으로써 통쾌함과 후련함을 선사했다. 따라서 박기자는 이제 주인공인 이지아를 못살게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 여성이 되었다.

반면 이지아의 오버 연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녀를 미워만 할 수 없는 이유는 현실속의 우리 모습과 쉽게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철자가 틀렸다고 손등을 맞고, 킬힐로 엉덩이를 짓밟히는 모습은 실생활에선 거의 일어날 리 없는 오버스러운 설정이지만, 현실에선 대신 더 잔인한 방식으로 말단 사원은 상사들에게 깨진다. 자신의 특집기사를 놓고 박기자는 계속 쓰라고 하고 편집장은 킬하라면서 서로 상반된 지시를 내릴 때, 갈팡질팡하는 모습 또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

앞뒤 정세를 치밀하게 따지고 과감하게 배팅을 걸어보는 박기자의 모습은 당당한 현대 여성의 이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아울러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에게 먼저 입술을 가져다 대고, 자신이 모욕당하는 순간에도 당당한 모습은 역시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꿀 모습이 아닌가 싶다.

반면 늘 깨지는 이지아는 현실 속의 대부분의 여성의 모습이다. 어떤 이들은 200만원 짜리 명품 가방을 갖기 원하는 그녀를 보면 ‘속물’이라고 손가락질 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질 수 없지만, 비싼 물건을 꿈꾸지 않던가? 대부분의 남성은 가질 수 없지만 빨간색 스포츠카를 꿈꾼다. 자신이 특정 물건에 대해 품는 감정은 로망이고, 다른 사람이 가진 특정 물건에 대한 판타지를 ‘집착’이라 격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극히 속물스러운 생각이다.

이지아는 <스타일>에서 어떻게 보면 평범한 직장녀다. 치밀함이 없는 그녀는 상사에게 늘 깨지고, 터지는 사건들을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인간적인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바로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분노할 줄 안다는 거다. 그것이 극중 그녀가 유일하게 빛나는 미덕이다. 비록 자신의 탓은 아니지만 박기자에 의해 서우진(류시원) 쉐프 특집이 ‘킬’당하자, 감히 상사인 박기자에 화를 내고 서우진을 찾아가 사과한다. 현실속의 이지아들은 아마 대부분 상사앞에서 화를 삭히는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다. 거기가 아마 현실과 판타지가 갈리는 부분일 듯 싶다.

다시 박기자(김혜수)의 관점으로 돌아가서, <스타일>의 박기자는 그녀의 복장만큼이나 빛나는 여성이다. 1, 2화에서 비친 그녀의 모습은 부하에겐 강하고 상사에겐 약한 전형적인 중간관리자의 모습을 띠었다. 그러나 3화부터 박기자는 그런 이미지를 전복한다. 발행인이 서우진 특집을 킬하라고 하자, 편집장은 두말 없이 킬을 박기자에게 명령한다. 그러나 그때부터 박기자는 서우진과 발행인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또한 귀국한 디자이너 줄리아와 서우진의 특별한 관계, 서우진과 발행인의 관계를 보면서 뭔가를 놓고 저울질하고 계산하기 시작한다.

잡지 인쇄전까지 서우진 특집과 줄리아 회고전을 놓고 저울질 하며 수시로 바꿔가며 지시한 것은 나름대로의 복안이 있는 탓이지만, 모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4화까지 박기자는 왜 그랬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발행인이 편집장을 자르고 박기자를 편집장대리로 임명하면서, 그녀의 다소 위험해보였던 줄다리기가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원한 적과 동지가 없는 세상에서, 투서하나로 8년간 부린 편집장을 버리는 손회장을 통해 박기자의 앞날도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스타일>에는 일과 사랑이 없다. 물론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양념이다. <스타일>에서 보이는 것은 ‘권력투쟁’이다. 보라! <스타일>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여자라는 점만 빼놓고는 어느 기업드라마와 다를 것이 없다. 구성원들이 조금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패션과 잡지 아이템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만 바뀌었을 뿐,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구조다.

발행인은 손회장은 편집장과 박기자를 저울질하며 그 어떤 제보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신중한 자세로 자신의 하급자들을 부린다. 그녀는 <스타일>에선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이지만, <스타일>의 제1주주가 죽은 소현수로 밝히면서 5화부턴 제1주주로 나설 서우진(류시원)과의 피할 수 없는 대립을 예고하고 있다.

다소 희화화된 형태로 등장한 편집장 김지원은 전형적인 관료스타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이해주 디자이너와 손잡고 부당으로 광고비등을 착복해 사욕을 챙겼다. 그러면서 겉으론 발행인에게 절대 충성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천년만년 자신의 권력을 독점하고자 했다.

김혜수가 분한 박기자는 복잡한 인물이다. 1, 2화에서 그녀는 잡지사편집에 상당한 자부심과 프로페셔널적인 안목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면서, 동시에 비싼 명품으로 자신을 휘감고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도도한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명품녀로 분하고자 애쓴다. 그녀가 망가지는 것은 역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서우진과 제주도 해변가에서 서로에게 진흙을 던지며 싸울 때와 이지아와 다투다가 풀장에 넘어질 때다. 그런 장면은 각기 서우진과 로맨스를 이끌고, 이지아와 점점 대립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자신의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국내에 소개코자 서우진은 어떤 면에서 ‘높은 성의 왕자’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비명에 죽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왕회장의 세컨드 부인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한의학도였던 그가 본업을 때려치고 요리로 진로를 바꾼데는 그런 이유가 어느 정도 작용했으리라. 그는 이지아에게 강하고, 박기자에게도 어느 정도 강하게 나가지만 뭔가 끌려다니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손회장에게 일방적으로 무시당하다가, 자신의 어머니 화보가 <스타일>에 게재되면서 엄청나게 찾아가 화를 내는 모습은 통쾌하지만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서 그는 소극적인 인간일 수 밖에 없다.

또한 일방적으로 박기자에게 기습키스를 당하고 당황해하는 그는 마치 기존의 왈가닥 여성들이 나쁜 남자인 부잣집 도령에게 끌려다니는 역할이  전복된 느낌을 준다.

박기자와 미묘한 관계인 포토그래퍼 김민준은 잘 생겼고 일에도 똑 부러지는 남자다. 그러나 박기자와 김민준의 관계는 소위 말하는 ‘펫’과 주인의 그것이다. 두 사람 사이엔 ‘사랑’이란 감정이 흐르지 않는다. 김민준은 일방적으로 박기자를 좋아하며 그녀의 인생에 있어면 좋고, 없으면 조금 서운한 정도의 존재일 뿐이다.

<스타일>에 나오는 주요 여성 배우들은 각자 인생에 능동적인 삶을 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투쟁을 벌인다. 3, 4화에선 편집장의 권한을 놓고 작게 대립했다면 앞으론 <스타일> 잡지사를 놓고, 혹은 1등 잡지가 되기 위해 타잡지사와 불꽃 튀는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스타일>에서 패션과 애정 관계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도 재미를 느끼게 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기존 남성 중심적인 권력투쟁기가 철저히 여성의 시각에서 벌어진다는 참신함과 권위의 전복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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