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정말 값싼 힐링인 걸까? ‘땡큐’

朱雀 2012. 12.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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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SBS에선 연말을 맞아 아주 의미있는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다. 바로 혜민스님, 박찬호 선수 그리고 차인표가 함께 떠난 48시간의 여행기록을 담은 땡큐였다.

 

혜민스님은 팔로워만 31만명이 넘는 SNS스타이자, 100만부가 넘게 팔린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이다. 필자는 아직 혜민스님의 책을 읽은 적은 없지만 종종 트위터 상에서 그의 글을 보고 뭔가 좋은 느낌을 받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어제 방송을 보면서 꽤 큰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 그분도 나랑 같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혜민스님은 엄친아다! 그는 하버드대를 나오고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지내고 있다. 일류대를 선호하는 우리네 환경에서 혜민스님은 그야말로 엘리트코스를 밟은 수재가 아닌가?

 

또한 그런 분이 고요한 산사가 아니라 트위터를 통해서 일반인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시대에 맞게 변화한 참된 수도승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땡큐>를 통해서 야구선수 박찬호와 연기자 차인표를 벗어나서 인간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박찬호는 야구선수 은퇴를 한 이후 멘붕에 빠졌다고 고백하고, 차인표는 100만부가 넘게 팔린 혜민스님을 질투한다. 세 남자가 모여서 수다를 떨고, 박찬호가 혜민스님에게 귀요미송을 가르치는 부분에선 유쾌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혜민스님이 우는 대목이었다. 혜민스님이 트위터를 시작한 이유는 미국생활에서 오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세상을 소통하기 위해 시작한 SNS에서 그는 아픈 사연들을 접하게 된다.

 

한 개의 아르바이트도 부족해서 새벽 3시까지 이어지는 아르바이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토닥임뿐. 그래서 트위터에서 토닥거림을 해주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향해 값싼 힐링아니냐?’라는 반문을 던진다. 방송이고 수도승이기 때문에 돌려 말했지만, 그건 악플이었을 게다.

 

혜민스님은 울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어서라고 울먹이면서 말한다. 아마 그로서는 악플이 상처가 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정말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은 중생들을 보면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 게 너무나 안타까워서 일 것이다.

 

우리가 <땡큐>를 보면서 인상 깊은 것은 물론 혜민스님, 박찬호 선수, 차인표는 모두들 대단한 인물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1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의 저자.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유명한 연기자.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고 누군가의 자식들이다. 박찬호 선수는 단칸방에서 어렵게 생활하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차인표는 아직도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말하고, 스님인 탓에 속세의 인연이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고민하는 혜민스님의 이야기는 저렇게 유명하고 나랑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구나라는 깨달음을 준다.

 

그리고 그들은 유명인이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서 바라보게 한다. 무엇보다 다른 이들에게 좋은 말씀을 주고 힐링해주던 혜민스님이 울면서 자신의 고민을 말하고, 박찬호가 거기에 대해 나름대로 대답하는 장면은 멘토와 멘티가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꿀 힘도 용기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위로뿐이라고 말하는 혜민스님의 말은 깊은 파문을 연이어서 남겼다. 사실 말로는 산이라고 옮길 수 있다. 무의미한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혜민스님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분명히 이해는 간다.

 


우리중 누가 혜민스님만큼 다른 사람의 고민과 아픈 사연에 눈물 겨워하고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이가 '그거 값싼 힐링아냐?'라고 말하는 자체가 크나큰 잘못이자 폭력이라고 여겨진다. 삶이 죽을만큼 힘겹고 고단한 누군가에게 혜민스님의 SNS메시지와 책은 큰 위로이자 삶을 지탱해나가는 힘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새벽 3시까지 힘겨운 알바를 뛰어야하고, 학자금 대출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지방대 출신이라서 서류전형에서 번번이 미역국을 먹는 청춘들에게 혜민스님이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그가 정치인이 되어서 사회를 개혁하는 길도 있지만, 그건 수행자의 일반적인 도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자신이 일상에서 얻은 작은 지혜를 나누는 것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우리가 <땡큐>를 보면서 혜민스님-박찬호 선수-차인표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유명해서가 아니다. 그들 역시 우리랑 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고민을 하고, 인간으로서 겪는 고통과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박찬호 선수는 메이저리그에 활약할 당시 승승장구한 적도 있지만, 헤아날 수 없는 수렁에서 고생한 적도 있다. 차인표 역시 초창기엔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히트작에 출연하지 못하고, 연기력 논란에 시달려야만 했다.

 

따라서 어느 누구보다 어려운 시기를 거쳐온 그들이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경철할 만한 값어치를 가지는 게 아닐까 싶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집 마련을 하거나, 취직을 해서 그럴 듯하게 살아가질 못하고 있다.

 

20대는 학자금 대출과 취업문제로, 부모세대는 떨어지는 부동산으로 하우스푸어가 되는 기막힌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사회구조자체가 개혁되지 않으면 90%가 절망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진정으로 들어주고 가슴 아파하고 힘내라고 위로해주는 이들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땡큐>는 그런 의미에서 시청자들이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듣고, 위로받는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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