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당신을 펑펑 울게 할 그 영화, '애자'

朱雀 2009. 9. 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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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비롯해 상당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점 미리 밝힙니다.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 ‘엄마’가 아닐까? 우린 나이를 먹어도 어머니란 단어보다 엄마라는 단어를 쓴다. 아버지와는 존대말로 대화해도 엄마와는 반말로 대화하는 자식들이 많다. 우리는 깜짝 놀랐을 때, 당황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외친다. 엄마는 아버지보다 가까운 존재이며, 이름만 들어도 어딘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단어다. 군대를 갔다온 남자라면 이 말에 동의하리라 본다.

<애자>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촌스럽다 못해 ‘장애자’를 떠올리게 하는 그녀는 아무도 함부로 이름을 가지고 장난 치지 못할 만큼 싸움닭이다. 친구들과 밥을 볶아먹기 위해 가져온 부탄가스를 오해받아 선생에게 얻어터져도 울지 않을 정도로 독하며, 사랑의 매질(?)을 당한 후 선생의 애마에 흠집을 낼 정도로 강단이 있는 여자다. 그녀는 비가 오면 시를 써야 한다며 해변을 찾아가는 시대의 ‘돌아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도 당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녀의 엄마 영희다. 수의사인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지역 수의사협회의 부회장을 맡을 만큼 똑 소리나는 여자다. 맨날 사고만 치는 애자의 목을 잡고 집에 돌아와 그녀를 두들겨패고 지치지도 않는지 매일 싸워대는 여성이다. 돈 만원이 아까워 협회비를 내지 않고 고스톱을 치다가 지면 판을 엎을만큼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다.


영희는 구시대 엄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별 볼일 없음에도 불구하고 없는 살림에 돈을 구해 미국으로 유학갈 만큼 챙긴다. 그러나 전교 10등밖으로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딸은 그토록 유학 노래를 부르는 데도 절대 보내주지 않는 엄마다.

애자가 고등학교 시절 그 엄청난 작문 실력과 상위권 1%에 들어가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다소 엇나간 성격으로 변한데는 그런 엄마의 무심함이 작용한 탓인지 모르겠다.

어쨌건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에서 어느덧 애자는 29살의 아가씨가 된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길가를 지나가다 불량 고등학생과 한판 뜨고,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질만큼 돌아이적 성격을 버리지 못한다. 덕분에 영희가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자신을 꺼내게끔 만든다.

영화는 중반부까지 크고 작은 웃음을 준다. 왠만한 남자 문제아는 저리가라 할만큼 돌아이적 근성을 보여주는 최강희의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거리을 준다. 또한 여장부의 면모를 과시하는 김영애의 연기 역시 최강희와 화학적 상승효과를 일으켜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한다.

모녀는 지치지도 않는지 줄기차게 싸워댄다. 서로 원수가 될 듯 싸우면서도 엄마 영희는 딸에 대한 정을 놓지 않는다. ‘김치 가져가 이년아!’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대표적인 대사다. <애자>는 그런 엄마의 정이 들어간 대사들이 구석구석 배치되어 있다.

자신도 유학을 보내달라며 떼를 쓰는 애자를 향해 엄마는 묻는다. ‘여권과 비행기표가 있느냐?’고. 그러자 애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꺼내서 보여준다. 최강희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표정 때문에 계속 기억되는 명장면이다.

스물아홉살 애자는 고단하다. 뛰어난 글실력에도 아직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억원의 상금이 눈 멀어 낸 원고는 예전 자신의 처녀작을 스스로 베꼈다는 이유로 편집장에게 모종의 거래로 협박당한다. 게다가 하나밖에 없는 애인은 잘난 얼굴값 하는지 늘쌍 바람을 피운다.

결정적으로 애자는 엄마 영희의 불치병이 재발하는 최악의 상황에 도래한다. 그때부터 영화의 최루성은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항암 치료를 받는지 영희는 점점 힘들어하고, 애자는 그런 엄마를 보며 눈물 지으며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러면서 점점 두 모녀는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확인해간다.

<애자>는 이 시대 모녀를 위한 영화다. 구시대 어머니들이 그렇지만 그들은 자식을 위해 험한 세상과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로 살기 위해 값싼 뽀글이 파마로 자신의 외모를 포장하고, 복부인으로 변해 직장에서 쫓겨난 아버지들을 대신해 돈을 벌어 가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사회는 그녀들을 ‘아줌마’라 부르며 여자가 아닌 제 3의 성으로 분류했다. 자식들을 출세시키기 위해 선생을 찾아가고 과외를 시키는 그들의 행동을 ‘치맛바람’이라 비웃었으며, 땅투기를 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몰지각한 이들로 분류했다. 그들이 가정을 위해 한 헌신과 희생은 철저히 외면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런 사회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애자>의 엄마 영희가 암에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오늘날 대다수의 어머니들이 너무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그들의 못난 아들은 어머니의 수술비마저 가져갈 만큼 지독히도 자신밖에 모르는 녀석이다. 공장이 넘어가게 생겼다고 울부짖는 아들에게 엄마는 그저 “괜찮다”를 연발하며 그저 안쓰러워 한다. 아들 때문에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다 팔아치운 것도 부족해 결국엔 자신의 수술비마저 주려는 모정은 그저 눈물겹기만 하다.

마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처럼 엄마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 이에 애자는 반발한다. 오빠를 찾아가 “너도 인간이냐!”를 외치더니 엄마 앞에서 눈물 지으며 호소한다. “내가 시집가는 거, 오빠 아이 낳는 거 보고 싶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녀의 말에 결국 영희도 눈물 흘린다.

“나도 살고 싶다”고. 병원에 누워 죽는 게 편하다고 여겨질 만큼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아도 몇 년 더 살고 싶을 정도로. 그녀가 더 살고 싶은 것은 결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불쌍한 아들이 낳은 손자를 안아보고 싶고, 미안하고 애틋한 딸이 시집가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어렵게, 정말 어렵게 엄마를 설득해서 애자는 결국 수술하게 만들지만, 안타깝게도 늙은 육신은 마지막 희망을 거부하고 만다. 엄마와 딸이 함께한 마지막 여행. 금방 쓰러져 죽을 듯 생기를 잃어버린 엄마는 흐드러지게 벚꽃이 핀 그 길을 딸과 함께 달린다.

예전에 당한 사고 때문에 조수석에 타지 못하던 그녀는 딸과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고 싶어, 조수석에 앉아 아름다운 세상을 감상한다. 그리고 딸과 함께 맛있는 저녁상을 먹는다. 그토록 속이 좋지 않았음에도.

딸과 함께 한 목욕에서 욕조에 빠져 혼자 일어서지 못하는 데도 엄마는 그저 “괜찮다”라고 연발한다. 그리고 새벽, 결국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영희는 최후의 결심을 한다. 애자는 눈물로 호소하지만 영희는 말한다. “이제 그만 보내달라”고. 딸과 함께 누운 자리에서 엄마는 말한다. “먼저 가서 미안해”라고.

갑자기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부모가 자는 순간 아들은 부모의 심장을 꺼내 도망간다. 산길을 뛰어가던 그가 넘어지고, 부모의 심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심장은 말했다. “애야, 괜찮느냐?”

그 옛날 자식이 자신을 버리기 위해 산길을 걸어갈 때, 자식이 길을 잃을 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식을 만들어놓은 ‘고려장 이야기’의 부모들처럼. 엄마는 그저 자나깨나 심지어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아닌 자식을 걱정을 한다.

나도 대한민국 남자들이 그렇듯 어렸을 적을 빼놓고 슬프게 울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크게 다쳤을 때도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장면에서 만큼은 펑펑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모녀가 화해한다는 식상한 내용이 처음엔 반발하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눈물 흘리지 아니할 수 없을 만큼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시나리오와 연출의 힘도 크지만, 무엇보다 120%, 아니 200% 이상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해낸 김영애와 최강희의 연기에 그저 찬사와 박수를 보낼 뿐이다!

<애자>는 이 시대 어머니와 딸에 대한 연서다.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원수처럼 싸우지만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모녀’에 대한 보고서다.

하지만 <애자>는 동시에 우리 시대의 어머니 상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리고자 애쓴다. 그녀가 그토록 아들에게 더욱 신경을 쓴 것은 실은 똑똑하고 잘난 딸내미에 비해 아들은 덜 똑똑하고 교통사로 후유증으로 다리를 저는 병신이 된 탓이었다. 1만원이 아까워 내지 않은 것 같던 협회비는 실은 오갈데 없는 유기견들을 그 돈으로 안락사를 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나중에서야 밝혀진다.

그녀가 한 모든 행동하나하나에는 그토록 속 깊은 의미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오해하고 알아주지 않는데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꿋꿋이 나아갈만큼 영화속 ‘엄마’는 정 깊고 속 깊은 분이었다.

영희역의 김영애는 <마더>의 김혜자 못지 않는 훌륭한 명연기로 그야말로 열연한다. 그녀가 아닌 ‘엄마 영희’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돌아이 애자역으로 나온 최강희는 자신의 옷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만큼 명연기를 펼친다. 두 사람의 열연은 엄청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보는 사람을 웃기고 울리더니 끝내 감동의 도가니에 빠뜨리게 한다.

지난 9일 개봉한 <애자>는 전국 440개 상영관에서 누적관객 91만명을 돌파하며 훈훈한 흥행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영화. 아무리 감수성이 사막처럼 메마른 이라도 홍수가 난것처럼 울게할 만큼 최루성이 강한 영화. 이 시대 모녀의 초상화를 제대로 그려낸 영화. 그게 바로 <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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