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원치 않게 ‘괴물의 아이’에 대한 평들을 미리 볼 수 있었다. 미리 접한 리뷰들은 ‘전작보다 못하다’ '별로다'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기대를 최대한 낮추고 극장에 찾아갔다. 보면서 왜 그토록 박하게 평가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괴물의 아이’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쿠마테츠라는 괴물이 ‘렌’이란 인간 아이를 제자로 들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품은 시작부터 쿠마테츠의 숙적으로 이오젠을 설정한다. 쥬텐가이의 수장이 신이 되기 위해 은퇴를 선언한 이후, 가장 강력한 두 괴물(?)은 숙명적으로 대결을 펼쳐야만 한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많은 이들이 무협영화에서 본 것처럼 멋진 대결을 기대했을 것이다-물론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작품은 기대와 다르게 진행된다. 메인 이벤트라고 여긴 두 괴물의 대결은 초반에 한번 이루어지고 그들의 대결은 예상외로 싱거운(?) 편이다.
요즘 일본애니에서 흔한 필살기(?)는 애초에 찾아볼 수 없다. ‘괴물의 아이’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결이 이루어지지만 그 흔한 기술명조차 외치지 않고 진행된다. 너무나 담백하게. 그렇다면 제목에서 느낄 수 있다시피 ‘부성애’를 강조했는가?
그 부분에 대답을 하기가 무척 애매하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종족이지만 부자의 연을 맺게 되는 두 등장 캐릭터는 서로의 마음을 진솔하게 터놓지 않기 때문이다. 쿠마테츠에게 본명을 밝히지 않은 탓에 큐타라고 불리게 되는 렌은 스승(쿠마테츠)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두 캐릭터는 외모는 다르지만 몹시나 닮았다. 쿠마테츠는 괴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홀로 수련했고 홀로 강해졌다. 그의 무술엔 스승이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 이는 큐타도 마찬가지다.
쿠마테츠와 더불어 큐타와 함께 하는 두 괴물의 모습은 영락없이 저팔계와 손오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덕분에 왠지 '서유기'를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나름대로 재해석한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9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자 친척들이 맡아 키우려고 했으나, 아버지에 대한 험답을 늘어놓자 박차고 나가 혼자 시부야의 거리를 전전하게 된다.
즉 쿠마테츠와 큐타는 시작부터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적인 성향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두 캐릭터가 초반부터 부딪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쿠마테츠와 이오젠이 처음 맞붙은 대결(영화상)에서 모두가 이오젠을 응원하자, 자신과 비슷한 쿠마테츠의 처지에 큐타는 홀로 응원을 하고 만다.
강해지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각 지역의 수장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는 일행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서유기'를 떠올리게 한다. '강함의 의미'에 대해 이런 저런 다른 이야기를 듣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진정한 강함'에 대해 고민케 한다.
그때부터 두 캐릭터의 마음은 서서히 열리고, 큐타는 강해지고 싶은 마음에 쿠마테츠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하면서 서서히 강해진다. ‘괴물의 아이’에서 인상 깊은 점은 두 캐릭터가 수련을 하면서 한쪽을 일방적으로 스승으로 설정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 되는 관계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즉 ‘괴물의 아이’는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가 일방적일 수 없다는 것을 그려냈다 하겠다. 그러나 ‘괴물의 아이’에서 내내 답답한 것은 두 캐릭터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속시원하게 털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라 하겠다. 어찌보면 부자간의 관계가 그렇지 않을까?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잘 터놓지 못하고, 큰소리를 내다가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괴물의 아이’에선 그런 서툰 둘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의 입장에서 끝날때까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진솔하게 털어내지 못하는 두 캐릭터의 모습은 답답할 뿐이다.
비록 환상이지만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백경이 등장하는 부분은 관객을 당황케 하기에 충분하다. 아마도 인간의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한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싶다. 거대하고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는 누구라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액션의 쾌감도 부성애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고 ‘괴물의 아이’에 박한 점수를 주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아무리 쿨한 게 유행이라지만, 너무나 쿨내나는 두 사람의 관계는 답답하니까. 그러나 조금만 뜯어보면 ‘괴물의 아이’는 나름 매력이 충분한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괴물의 아이’가 토너먼트 식으로 대결을 펼쳐서 충분히 재미를 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것은, 온전히 쿠마테츠와 큐타에게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괴물의 아이’에선 후반부에 느닷없이 백경이 등장한다! 이 부분에서 관객은 몹시 당황한다. 왜 난데없이 백경이 등장하는가?
아마도 영화 중간에 나오지만, 외다리 선장 에이헙이 백경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의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리라. ‘인간에게 어둠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선과 악의 양면을 지닌 인간을 통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싶다. 작품에선 쿠마테츠와 큐타를 유사부자관계로 엮으면서도 괴물과 인간으로 대비시킨다.
서로 다른 존재가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함께 성장하고 정을 나누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판타지를 통해서 강함의 의미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의미 그리고 환생까지 종합선물셋트로 버무려서 관객에게 전해주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가벼워 보이는 외면과 달리 내면은 많은 고민을 하면서 봐야된다는 걸까?
그러나 그 대립은 나누기 위함이 아니라 겉모습을 넘어서서 진정한 부자관계를 맺는 두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함으로 여겨진다. ‘괴물의 아이’는 가볍게 보면 쿠마테츠와 큐다를 통해서 부자관계를 쿨내가 진동하도록 묘사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넓혀보면 ‘과연 종이 다른 두 캐릭터가 진정한 부자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부터 ‘신과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처럼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진정한 강함은 무엇인가?’같은 고전적인 질문 역시 놓치지 않고 던지고 있다. 뭔가 속시원한 전개가 없기 때문에 가벼운 재미를 원하는 이들에게 ‘괴물의 아이’은 좋은 선택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고민하면서 영화를 즐기려 한다면 ‘괴물의 아이’은 나쁘지 않은, 아니 꽤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론 몇번이고 반복해서 보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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