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배우들이 아까운 '2009 외인구단'

朱雀 2009. 6. 15. 17:03
728x90
반응형


도대체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2009 외인구단>. 설마 시청자들이
열광할 거라 믿은 건가?



처음 <공포의 외인구단>이 드라마 된다고 했을 때 기대가 무척 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세대 아이콘인 <공포의 외인구단>이 21세기를 맞아 새롭게 리메이크 된다는 데 기대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다. 이장호 감독에 1986년과 1988년 각각 영화화되어 얼마나 많은 화제를 뿌렸던가? “난 네가 기뻐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정수라의 주제가는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만화가 이현세의 대표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은 당시 만화의 혁명이었다. 야구만화에선 오로지 야구와 승부에 집착하던 시기에서, 야구가 비록 주소재이긴 했지만 사랑이 중요한 테마로 선정되었고, ‘짐으로써 모든 것을 얻는다’란 메시지는 당시로선 그야말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워낙 재미있었던 탓에 검열관이 ‘유부녀인 엄지와 혜성의 불륜’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간 것은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다. 당시 만화는 검열이 심했기 때문에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 이유 하나로 판금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특유의 재미 때문에 사회고위층마저 ‘묵인’해주는 진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MBC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이 리메이크 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21세기형 오혜성과 엄지 그리고 마동탁을 그려낼지 궁금했다. 또한 당시에는 신선한(?) 삼각관계였지만 이젠 진부하다 못해 신물나는 애정전선을 어떻게 새로이 엮어낼지 기대되었다. 특히 마동탁과 오혜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엄지역에 김민정이, 오혜성역에 윤태영등이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은 기대를 200% 늘리기에 충분했다.

<공포의 외인구단>을 찍기 위해 출연진들이 야구를 엄청나게 훈련했다는 둥의 기사는 더더욱 기대심리를 자극했다. 그리고 마침내 방영. 처음 몇회는 인내심으로 봐줬지만 점점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기는 분명 21세기건만, 드라마의 땟깔과 전개수준은 1980년대였다. 도무지 세련미를 찾을 수 없는 촌스러운 화면빨과 등장인물들의 열연을 깎아먹는 엄청난 수준의 편집. 가뜩이나 신파스런 원작을 더욱 신파스럽게 재해석(?)해버린 대본.

지옥훈련 덕분에 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오혜성이 왜 그렇게 엄지에 집착하는지,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마동탁이 왜 그렇게 엄지한테 집착하는지 드라마는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마동탁은 어린 시절부터 엄지가 무작정 좋았던 거고, 오혜성은 “난 한놈만 팬다” 아니 “한 여자가 사랑한다”는 식으로 스토커마냥 쫓아다니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애틋함을 찾아야 하는 건지 답답하다.

엄지역의 김민정은 화면에 나올 때마다 분명 사랑스러움이 넘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연기하는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건만, 어찌된 노릇인지 정적이기 이를데 없는 영상과 1980년대를 떠올리는 촌스럽고 느린 편집은 그녀의 열연을 여지없이 깎아먹고 있다.

지옥훈련 장면은 별로 말하고 싶지도 않다. <공포의 외인구단>의 가장 큰 재미 중에 하나는 야구 시합에서 줘야 한다. 그러나 시합 장면은 정말 짜증난다.

무슨 생각인지 윤태영을 비롯한 배우들이 공을 던지고 배트를 휘두르는 장면을 정면으로 잡는다. 그것도 실제로 던지고 치면서. 세상에! 문제는 그걸 또 정직하게 잡아낸다는 점이다.

아무리 열심히 연습했다고 해도 출연자들은 ‘연기자’들이지 야구선수가 아니다. 그들의 야구는 엉성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옆에서 화면을 잡던지, 아니면 CG처리를 해서라도 긴박감 있고 멋지게 연출해줘야 한다. 연기자들은 부족한 야구실력을 그런 걸로 메꾸고 대신 표정과 몸짓과 대사를 통해 실감나는 야구 시합을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심산인지 출연자들의 동네 야구를 TV중계를 하며 보여주고 있다. 마동탁과 오혜성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아슬아슬한 장면이건만, 그들이 공을 던지고 치는 모습을 보자면 김이 빠진다. 긴장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 탓이다.

그뿐인가? 어제 방영된 마지막 장면은 지금 봐도 어이가 없다. 엄지를 찾아온 오혜성은 그녀와 함께 계단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마동탁은 엄지를 만나기 위해 계단을 한 개씩 올라간다. 어디선가 많이 본 장면 아닌가? 시청자들은 당연히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하게 예측된다. 따라서 연출가는 뻔한 상황이 식상하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헌데 드라마는 한술 더 뜬다. 하염없이 마동탁은 계단을 올라가고 엄지와 말다툼?)을 하던 오혜성은 그녀를 억지로 끌어안고 키스한다. 마동탁은 그걸 보고 놀라 다시 내려가고. 당연하지만 엄지는 오혜성의 따귀를 때린다.

아! 정말이지 닭살이 돋아 닭이 될 뻔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제 조상구가 보여준 순애보나 엄지의 동생인 최현지가 오혜성을 향한 애정 공세를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2009 외인구단>은 이렇듯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짓(?)만 골라서 하고 있다. <2009 외인구단>의 조기종영은 당연한 수순이다.

제대로 기획되지 못하고 졸속으로 방영된 드라마가 어떤 꼴을 당하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만하다. 차후론 이렇듯 황당한 완성도를 가진 드라마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이건 괴작이다!). 김민정, 윤태영 같은 아까운 연기자들이 출연하느라 시간 허비하고, 방송국은 전파 낭비하고, 시청자는 보기 시간이 아까우니까 말이다.





6/16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