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고현정이 연기를 잘한다고? 나는 동의할 수 없다!

朱雀 2009. 6. 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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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복귀한 고현정은 현재 자신의 나이에 잘 맞는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30대를 연기하면 친숙하게 시청자에게 다가갔고, 다른 여배우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과감한 연기 배역을 받아 열연을 펼쳐왔다.



지난번 <'선덕여왕'의 고현정은 김미숙에게 배워라!>가 예상 밖으로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면서 지난 이틀간 무려 15만명 이상이 내 블로그에 다녀갔다. 예상치 못한 많은 방문에도 놀랐지만, 무려 150개 가까이 달린 댓글을 읽으면서 고현정의 연기에 만족하고 있는 분들의 반응을 보면서 새삼 놀랐다. 이번 글은 수많은 반대의견을 남겨주신 분들을 위한 답변이다. 원래 지난 몇 번의 포스트를 통해 고현정의 연기에 지적했던 터라, 지겨워서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 많은 분들이 예상 밖의 격렬한(심지어 몇몇은 욕까지 하면서)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글을 써내려가야겠다.

먼저 고현정이란 배우를 살펴보자! 1995년 <모래시계>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녀는 결혼과 함께 은퇴했다. 덕분에 그녀는 다른 여배우가 가질 수 없는 ‘살아있는 신화’가 되어버렸다. 당시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청순가련형 인기는 그야말로 절정이었고, 많은 시청자들은 그런 그녀의 ‘이미지’를 더더욱 소비하고 싶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그녀의 은퇴는 공식적인 생산중단이 되어버렸고, 시청자(소비자)들은 다른 대용품을 찾기에 이른다. 그런 대표적인 사례가 개인적으론 심은하라 여겨진다(그런 심은하 역시 결혼과 함께 은퇴하고, 오히려 고현정이 이혼과 함께 2005년 <봄날>로 복귀했으니. 참 세상이치란 오묘하다).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 가운데 <엄마의 바다>에서 그녀가 연기한 김영서가 몰락한 집안의 맏딸로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청순가련형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는 단어의 의미를 잘 모른 탓이라 여겨진다.

우리가 말하는 청순가련은 사전을 찾아보면 ‘깨끗하고 순수하며 동정이 가도록 애틋함’이라 정의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그녀가 지난번 은퇴전까지 보여준 모든 연기는 ‘청순가련’형이 맞다.

많은 시청자들은 이혼과 동시에 연예계에 복귀한 그녀를 반겼지만, 복귀작인 <봄날>은 별다른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고, 천하의 고현정도 이대로 끝나나 싶었다. 그러나 2006년 <여우야 뭐하니?>에서 그녀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종전의 이미지를 버리고, 털털하고 거리낌 없는 30대 노처녀를 연기한 것이다. 시청자들은 마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녀의 역할설정과 참신한 연기에 시선을 집중했고 결국 열광하고 말았다.

2007년 <히트>에선 연쇄살인마에게 약혼자를 잃은 형사로 출연해 특유의 털털한 중성적인 매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엔 <선덕여왕>에서 악녀로 최초 출연한 ‘미실’로 엄청난 호평과 찬사를 얻어내고 있다.

복귀이후 고현정이 걸어온 행로를 보고 있노라면 ‘영리하다’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순가련’을 버린 것은 당연하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녀가 브라운관을 떠난 지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그녀 특유의 동안은 아직도 전성기때 못지 않은 외모를 뽐내고 있지만, 청순가련은 그녀가 없는 동안 수많은 여배우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변주했다. 따라서 그녀의 연기가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현정은 30대 후반 여성의 모습을 이미지화 시켜버렸다.

자신의 외모에 사람들이 기대하는 우아하거나 공주적인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대스타답지 않은 털털함과 시원시원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고 성공했다. <여우야 뭐하니?>에선 3류 잡지사의 30대 노처녀로 출연해 당대 여성들의 고민과 애환을 물론 공감까지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꽃미남 천전명과 연상연하 커플을 이뤄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줬다.

2007년 <히트>는 다소 뜻밖의 선택이었다. 형사 역할은 본래 여성이 톱으로 맡기에 부담스러운 자리다. CSI 시리즈등을 봐오며 눈높이가 높아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된 범죄수사드라마가 먹히기 어렵고, ‘우악스러운 여형사 역할을 어떻게 시청자에게 다가가게 만드냐?’는 여태까지 어느 여배우도 모범답안을 제시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고현정의 선택은 과감했고 훌륭했다. 단순 멜로와 드라마에 출연하던 그녀는 <히트>로 강인한 형사적 이미지와 죽은 약혼자를 잊지못해 괴로워하며 애틋한 심정을 관객에게 불러일으켰다. 훌륭한 시나리와 주조연급의 호연은 극의 재미와 긴장감을 더욱 높여주었다. 덕분에 종방 이후 많은 이들은 ‘시즌2’를 요구하기도 했다.


고현정은 미실을 통해 자신 내면에 숨겨진 ‘악’을 잘 끄집어내 소화해내고 있다. 현재 20% 넘는 <선덕여왕>의 시청율은 전적으로 그녀의 공이 크다. 하지만 앞으로 40부가 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계속 수훈을 세울 수 있을까?

그리고 마침내 2009년 <선덕여왕>에서 미실로 그녀는 난생 처음 악역에 도전한다! 고현정의 악역연기가 어떨지 궁금해 하던 시청자에게 고현정은 자신의 후덕하고 선한 기존 이미지위에 사악함을 얹어 더욱 사악하게 보이게 했다.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길 자제하고 약간의 눈빛과 행동으로 자신을 설명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지금 열광중이다.

고현정이 2005년 복귀한 이후로 보여준 행보는 그야말로 영리함의 극치다. 기존의 청순가련형 이미지를 벗고, 자신이 나이에 어느 정도 맞는 털털함과 시원시원함으로 부담없이 다가갔다. 게다가 기존의 청순가련형 이미지도 필요할 때는 가져다 쓰고 있다. 원래 했던 연기였던 만큼 부자연스러움도 없다.

따라서 많은 이들이 고현정의 팬이 되고 현재 <선덕여왕>이 이렇듯 수 없는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덴 그녀의 공이 매우 크다 생각된다. 그러나 ‘연기력’ 하나만 놓고 본다면 조금 달라진다고 본다.

당연하지만 일인극이 아닌 이상 연기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주연이 빛나기 위해선 조연과 엑스트라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축구로 치자면 전방의 스트라이커가 골을 넣기 위해서 수비수들이 공을 열심히 막아주고, 미드필더들이 골배급을 많이 해주고 기회를 만들어줘야 가능한 거다.

타자가 <찬란한 유산>의 김미숙과 비교한 것에 대해 주연과 조연의 차이를 가지고 반박하는 분들이 계신데,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주연과 조연은 보여줘야 할 연기가 다르고, 하물며 <선덕여왕>과 <찬란한 유산>은 사극과 현대극이라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공격수는 공격만 하는게 아니다. 공격수는 찬스가 나면 과감하게 골을 차야하지만, 자기보다 다른 선수가 찬스가 더 높아 보일때는 골을 넘겨줘야하고 때론 수비도 해야한다. 세상에 공격만 하는 공격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빛나기 위해선 그녀에게 충성을 다하는 존재뿐만 아니라 상대역인 천명공주나 진지왕, 덕만등의 호연이 있어야만 한다. 하물며 ‘미실’은 선덕여왕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진짜 주인공은 아니다. 후일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이 주인공이다!

지난번 포스트에서 고현정의 연기는 주기만 하고 받지 않는다고 했다. 연기란 주고 받는 것이다. 상대방이 뭔가 할 수 있는 ‘여지’ 즉 틈을 주어야 한다. 고현정은 그런면에서 매우 이기적인 배우다. 도무지 다른 연기자가 뭔가 할 수 있는 틈을 잘 주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은 어느센가 엑스트라가 되어버린다. 배경이 되어버린다. 시청자의 눈과 귀는 고현정만 바라본다.

물론 이건 고현정의 어느 정도 의도한 것이고, 그녀에겐 바람직한 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드라마 전체로 본다면 이는 매우 불행한 일이다. <찬란한 유산>을 보자. 드라마의 주인공은 고은성역의 한효주다. 망나니 도령인 선우환 역인 이승기다. 그러나 그들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는 고은성 집에 재가해 모든 재산을 빼앗고, 아버지는 어디론가 숨게 만들고 자폐아 동생인 은우는 내다버린 백성희역의 김미숙이다. 김미숙은 철저하게 악역이다. 도무지 동정하고 싶은 여지조차 없다. 시청자들은 그녀를 보며 ‘가증스러움’을 느낀다.

그녀의 연기는 놀라워서 실제 김미숙을 만난다면, 뺨을 한 대 때리는 이마저 생겨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런 그녀의 연기엔 ‘기품’이 전제되어 있다. 그동안 우아하고 착한 역할을 많이 맡아온 김미숙은, 여기선 자신의 주무기인 우아함에 악함을 덧입혔다. “우리가 가족이니?”란 대사를 칠때도 특유의 우아한 톤으로 말한다. 머리를 한번 만질때도 그녀 쓸어넘기는게 아니라 다시 한번 모양을 잡아주기 위해 두 손으로 다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섬세한 모습이 김미숙의 연기를 더욱 현실적인 캐릭터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 그녀의 악역 연기에 사람들은 반대편 격인 고은성을 더욱 응원하고 아끼게 된다. 또한 <찬란한 유산>의 모든 연기자들은 마치 잘 맞아떨어진 톱니바퀴처럼 모두들 자신에게 꼭 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찬란한 유산>에 대해선 다음 포스트에서 자세히 말하겠다!).

물론 현재 고현정이 보여주는 연기도 나름대로 훌륭한 건 맞다. 처음 도전한 사극 게다가 악역에서 그녀는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연기’로 보자면 그녀는 부족한 것이 많다. 그녀의 발성은 현대극이라면 몰라도 사극에선 맞지 않는다. 그녀의 사악한 연기는 선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만 자신을 기억하는 팬들의 고정관념을 깼다는데서 신선하지만, 깊이가 없다.

섬세한 부분까지 계산해내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김명민을 들어보자. 얼마전 종영한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그는 카리스마적인 지휘자를 연기하기 위해 수시로 음악을 듣고, 카라얀이 연주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반복해 연습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도저히 김명민이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뿐인가? 루게릭병 환자로 등장할 예정인 영화<내 사랑 내 곁에>선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데도 서서히 근육의 힘을 잃어가는 환자라 왼쪽발이 불편해 발을 끌고 다녀서 한쪽 신말을 일부러 닳게끔 했다. 70킬로대에서 50킬로대로 감량을 한 건 굳이 거론하지 않겠다.

고현정은 ‘연기’만 놓고 본다면 부족한 점이 많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만의 캐릭터로 재창조하는 과정이 특히 그러하다. 궁중여인인 미실은 궁중여인다운 기품을 보여줬는가? 오랜 세월 권력을 잡아온 노회한 여인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는가? 수많은 남성을 자신의 치마폭에 감은 채 군림한 요부의 이미지를 제대로 그리고 있는가? 자신 앞에 등장하는 모든 장애물을 없애는 과단성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녀는 현재까지 맡았던 역할들은 분명 잘해냈지만, 그녀가 아니더라도 다른 여배우가 다른 식으로 연기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어느 정도 있다. <찬란한 유산>의 김미숙처럼,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 처럼 그들이 아닌 캐릭터를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물론 그녀가 걸어온 과정은 나름 험난했고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으며, 영리하게 행동한 것은 인정한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기존 이미지에 새로운 것들을 덧입혀 나가는 과감성과 용맹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연기는 맨 처음 언급했듯이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함께 하는 거다. 악역이 제대로 악당이 되기 위해선 많은 고민과 창조적 재설정이 필요하다. 현재 <선덕여왕>의 ‘미실’은 기존 자신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부분 재설계해 보여줬다는 점에선 매우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허나 앞으로 무려 40부가 넘게 남아있는 상황에서 좀더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선 왜 미실이 그토록 권력에 집착하는지 그 과정과 계기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꾸준하게 그려내야 한다.

물론 이는 1차적으로 대본의 문제다. 그러나 그 다음엔 고현정이 이를 새롭게 재창조해나가야 한다.

글이 쓰다보니 길어졌는데, 고현정은 분명 영리하고 과감한 행보를 보인 우리 시대의 여배우다. 그러나 그녀의 인기와 대중적 인지도에 비해 ‘연기력’은 아직 부족하다. 물론 소위 발로 연기하는 특정 여배우들과 비교하면 그녀는 훌륭하다. 그러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로서, 연기자로서 기억되고 싶다면 아직 그녀가 가야할 길은 멀었다는 게 타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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