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멍태희와 눈빛 소연의 대비가 돋보인 ‘아이리스’

朱雀 2009. 12.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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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광화문을 막고 찍어 화제를 총격신은 떡밥만 던진 채, 다음주를 기약하며 넘어갔다. 개인적으로 16화에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이병헌과 재회한 김태희의 눈물연기와 그 둘 사이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김소연의 처연한 눈빛이었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지만, 15화 마지막에 김태희가 보여준 표정은 ‘멍’이란 표현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연인을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만났건만, 김태희의 표정엔 놀라움이나 반가움 등의 감정이 전혀 묻어나지 못했다.

반면 같은 화면안에서 김소연의 눈빛은 어떠한가? 그녀의 표정과 눈빛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아. 어쩌지? 현준씨가 연인을 만나다니...나는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대사를들이표정으로 계속 쏟아져 나오는 기분이다.

이병헌의 표정은 그야말로 절절했다.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만큼 사랑하는 연인.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원치 않는 폭력을 행사했어야 하는 상황.

화면이 바뀌면 김소연은 두 사람의 만남을 위해 자리를 피해주고, 마주 앉은 두 연인은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할 만큼 감정이 고조되어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면이 전환되면 김태희도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상대역인 이병헌에 비하면 그 진정성이 절절하게 묻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병헌은 그의 개런티가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백만불짜리 눈물연기를 보여줬다. 어렵게 재회한 연인에 대한 애틋함과 그동안 모진 세월을 지내며 살아오며 재회를 꿈꿨던 그의 절실함은 별 다른 대사 없이 표정과 눈에 맺힌 이슬로 충분했다.

반면, 김태희의 표정과 눈빛은 여러모로 아쉬웠다. 물론 그녀의 눈물연기는 나름 자신을 구원할 정도로 멋지긴 했다. 그러나 이병헌의 지난 과거지사를 들으면서 보여주는 별다른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대사처리는 그녀가 받는 플래시세례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안해요. 나 최승희씨 살아있는 거 진작 알았어요. 아키타에서 내가 사라졌을때, 그때 난 한국에 들어왔어와 있었어요. 현준씨도 죽이라는 명령도 수행하지 못하고, 호위총국과의 연락도 단절하고 있던 내가 다시 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백산을 죽이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럼 현준씨 복수도 대신할 수 있으니까. 근데, 한국에서 서울로 향하던 중에 어이없이 붙잡혔고, 내 신분이 드러나 NSS로 이송되었는데, 날 심문하러 온 사람이 승희씨 였어요. 승희씨는 날 심문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현준씨 생사를 알고 싶어 했어요. 난...끝내 함구했고, 날 통해서 현준씨 행방을 알려던 승희씨의 도움으로 NSS를 탈출해서 아키타로 돌아갔어요.

다시 현준씨를 만났지만 승희씨가 살아있다곤 말할 수 없었어요.

왜? 왜 그랬는데...

....


반면, 간만에 자신의 마음에 대해 병헌에게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김소연의 연기는 탁월했다. 이전에 병헌에게 잡혀 마음을 돌릴 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김소연은 절제된 연기를 보여줬다.

현준(이병헌)의 생사를 그녀가 함구한 것은 승희(김태희)에 대한 현준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탓이었다. 그녀는 한번도 현준에게 ‘사랑한다’ 말한 적이 없지만, 그녀의 눈빛과 행동은 이미 그녀의 마음을 여러번이나 고백하고 또 고백했다. 이전에 현준은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몇 번 밝힌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란게 어디 제맘대로 되던가? 한 사람을 향해 끝없이 끝없이 향하는 마음을 어찌할 도리란 건 애초에 없다.

김선화(김소연)의 사랑은 맹목적이고 아무런 계산 없이 순수하다. 오직 살인기계로만 키워진 그녀가 한 남자를 보고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조국을 버릴 정도로 헌신적으로 돕는 어찌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인물을 김소연은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온전하게 연기해내고 있다.

이전에 몇 번 지적했지만 김태희가 연기하는 최승희는 자신의 감정과 처지에 대해 그동안의 분량에서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베테랑 연기자라면 상당한 수준의 매력 있는 연기를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역량이 부족한 김태희는 멍 때리는 표정으로 일관해 일부 시청자들에게 지적당하는 상황이다.

진사우가 김현준을 죽이려 했고, 백산 부국장의 단독 명령으로 북한 요원을 암살했고, 백산과 진사우가 ‘아이리스’라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들으면서도 김태희의 표정은 멍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놀라서 아무런 표정이 없다기보다, 정말 아무런 감정의 편린들이 느껴지질 않는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김소연은 다르다. 그녀는 김태희에 비해 분량이 형편없이 적다. 그나마도 그녀의 배경에 대해선 (아마) 대본에 몇줄 정도 나열된 것이 전부일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바탕으로 상상을 통해 자신만의 ‘김선화’를 구축했다.

현재 현준에게 남아있는 우군이라곤 오직 김선화 뿐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동지는 선화뿐이다. 이제 다행히 청와대와 연이 닿아 ‘반역자’의 굴레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서울에서 핵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고 함께 활동하기 위해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김선화 뿐이다.

현준이 선화의 고백을 듣고 화를 내거나 따져묻는 대신, 그녀를 안아준 것은 아마 그녀의 처지와 마음을 이해한 탓일 것이다. 자신 역시 사랑하는 승희가 죽은 줄로만 알고 오랜 시간을 힘든 시간 속에서 보냈으니까 말이다. 또한 여기엔 매우 이기적인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현준은 사랑하던 승희를 잃고, 목숨처럼 아끼던 친구 진사우(정준호)를 잃은 그에겐 함께 해줄 사람이 현재 선화밖엔 없다. 현준은 천애고아나 다름 없는 상태에서 진사우와 친형제처럼 자랐다. 외로운 환경에서 자란 현준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목이 마른 사람이다. 그런 그가 선화에게 의지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연인은 아니지만, 동지로서 친구로서 현준은 선화를 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어찌보면 나름 복잡한 삼각관계에서 두 여인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병헌의 연기와 김소연의 수많은 대사보다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 침묵연기는 섬세한 감정이 돋보이는 멋진 장면이었다. 그 바로 앞 장면에서 김태희도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면 <아이리스>의 감정선이 매우 잘 살아났을 텐데,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것이 그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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