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오덕후의 향기를 느끼다.

朱雀 2009. 6. 1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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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괴팍한 40대 노총각을 연기하는 지진희의 모습. 그에게선 오덕후의 향기가 솔솔 풍겨져 나온다.


지진희가 40세가 다되어가는 노총각으로 출연한 <결혼 못하는 남자> 1화를 봤다. 보고 난 소감은 ‘일단 재밌네’였다. 동시간대에서 MBC에서 방송중인 <선덕여왕>역시 재밌게 보고 있으나, 아무래도 시대배경이 삼국시대인지라 공감을 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 상대적으로 <결혼 못하는 남자>는 오늘날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라 공감가는 부분도 많아 상대적으로 좀 더 웃으면서 볼 수 있었다.

그중 극중 주인공인 조재희(지진희)의 행동은 웃기기도 했지만 이해가 가는 부분도 많았다. 1화 첫 등장신을 보면 조재희는 깨끗한 팬위에 고기를 놓고 맛있게 굽는다. 며칠 밥을 못먹었는 줄 알았는데, 두고 보니 최선을 다해 맛있게 굽고 그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사무실 직원의 성화로 어쩔 수 없이 나간 파티에서 그는 접시위에 뭔가 계산해서 세밀하게 음식을 놓는 모습을 보인다. 어떤 여자가 호감을 갖고 그에게 “스파게티 좋아하세요?”라고 묻자, 직경이 어떠니 뭐니 하면서 스파게티에 대해 전문적인 설명을 해버린다. 그의 전문적인 식견에 질려버린 여자는 “뭐 이런 놈이 다있어”란 식의 대사를 툭 내뱉곤 가버린다.

조재희의 엽기 행각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는 평상시 다큐멘터리 채널을 재밌게 시청하고(심지어 닥본사한다), 평상시엔 동네 DVD대여점에서 영화를 항상 빌려다놓고 자신의 홈시어터에서 즐긴다. 게다가 비상시를 대비해 집안에 갖가지 물품을 구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뿐인가? 자신의 일인 설계에서 만큼은 최고지만, 너무 설계를 그대로 옮기려 하는 옹고집 때문에 현장소장과 다투기 일쑤다. 그의 남의 배려하지 않는 까칠한 언변엔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다(심지어 가족조차 그렇다).

지진희처럼 잘 생긴 남자가 40이 다 되도록 부인은 커녕 애인조차 없는 설정을 시청자가 공감하기 위해선 적절한 인물설정이라 여겨진다. 특히 내 눈에 띄는 부분은 그의 오덕후적인 성향이다.

실제 주변의 오덕후들을 살펴보면 지진희가 구사하는 화법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화소재로 삼는 것에 대해 잘 몰라 침묵을 지키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야말로 속사포처럼 토해내기 바쁘다. 상대방이 듣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혼자 흥분해 열변을 토한다.

연애를 하기 위해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습관이 필요하다. 특히 남자의 경우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에 알맞은 응수를 해줘야 한다. 이건 연애의 기본이다. 근데 그런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오덕후라니! 정말 설정이 좋았다.

그러나 홈시어터를 집에서 즐기는 설정으로 넘어가니 아쉬움이 팍팍 생겼다. 홈시어터에 대해 좀 아는데, 옆집에서 짜증날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이 전해지면, 위아래층은 장난이 아니다. 흔히 볼륨을 키우면 옆집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볼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위아래층에 피해가 크다. 왜냐하면 소리에너지가 진동에너지로 바뀌어 바로 윗층과 아래층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료 옆집의 경우엔 소리로만 전달이 되어 짜증이 덜하다. 위아랫층은 쿵쿵거리기 때문에 참아내기 어렵다.

또한 평일에도 두편씩 영화를 보고 자신의 집에 홈시어터를 놓고 볼 정도의 오덕후적인 기질을 잔뜩 보유한 조재희의 성격을 보았을 때, 제대로 홈시어터를 꾸며놓고 볼 듯 싶다. 홈시어터 마니아들은 기본적으로 프로젝터과 스크린을 이용해 영화같은 화면을 구현한다. 여기에 시청자리를 중심으로 사방에 약 7-8개 정도의 스피커가 설치된다. HD시대로 접어든 영상과 돌비 디지털을 지나 돌비 트루HD 오디오 포맷을 지원하는 차세대 영상물은 극장보다 더한 박력을 집에서 즐기게 해준다.

따라서 조재희의 캐릭터가 더 사실적으로 그려지기 위해선 정유진(김소은)은 아래층이나 윗집에 살아야 맞고, 그가 영화와 음악을 즐기는 공간엔 스크린과 프로젝터 그리고 6개 이상의 스피커가 한 화면에 잡혀야 옳은 것이다.

지금처럼 화질도 안 좋은 프로젝션 TV에 제대로 된 톨보이형 스피커도 없이 영화와 음악을 즐기는 설정은 ‘오덕후’로 설정된 그의 이미지에 맞지 않다. 더더군다나 조재희는 건축가이기 때문에 홈시어터에 대해 모를 수가 없다. 오늘날 홈시어터는 인테리어적 소품으로 많이 도입되기 때문이다. 뱅앵울룹슨, B&W, 소너스파베르 등 이름난 오디오 기기들을 그가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오디오와 프로젝터 수입상들은 TV에 나올 기회를 원하기 때문에 소품 담당에서 연락만 취하면 언제든지 무상으로 대여해 활용할 수 있다. <결혼 못하는 남자>에서 홈시어터를 즐기는 조재희가 단순히 커다란 TV를 보는 설정은 일반 시청자들은 넘길 지 몰라도 나처럼 홈시어터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울러 동네 비디오샵에서 DVD를 대여하는 부분도 그렇다. 자신의 관심사에 엄청난 오덕후인 그가 영화를 보기 위해 동네 비디오샵을 이용한다는 설정은 맞지 않다. 인터넷 쇼핑몰인 아마존(www.amazon.com)등을 이용해 전세계 영화들을 우편으로 받아보는 설정이 맞다.

그에게 택배나 우편물이 들어오고, 옆에서 직원인 유아인등이 한심스럽게 쳐다보면서 “이건 뭔가요?”라고 물으면 “응. 엊그제 출시된 크라이테리언판 블루레이야.”는 식으로 대사를 치는 장면이 더욱 맞지 않을까 싶다.

뭐 좀 딴지를 걸었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오덕후 연기를 배가 나온 중년이나 비호감으로 생긴 연기자가 아닌 잘 생긴 배우가 했다는 것이 신선했다. 물론 그의 성격이 괴팍하긴 했지만 실제 오덕후들이 보여주는 성격. 이를테면 처음에 지적한대로 자신의 관심사가 나오면 혼자 신나서 떠들고, 자신의 관심사외엔 다른 곳에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표를 철저히 지키고, 자신의 분야에선 최고의 경지에 오른 실력 등은 비교적 맞는 설정인 듯 싶다. 물론 일본 원작 드라마을 보지 않아 알 수 없지만,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도 그동안 국내 드라마등에선 좀처럼 볼 수 없던 모습인지라 신기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위에서 지적한대로 좀더 디테일하게 묘사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쉽게 예전의 비디오샵을 떠올리고 촬영한 장면들이다. 인터넷 동호회가 발달한 대한민국에서 몇몇 유명한 사이트에 전화해 물어봤다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인데... 이 부분은 제작진이나 작가가 그저 게을렀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래도 오덕후가 사회범죄자나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비교적 사람 모습에 가깝게 그려져서 신기했다. 물론 성격은 베베 꼬였고, 지진희처럼 너무 잘 생겼다는 것도 말은 안되지만.

연애의 기초도 모르는 성격에 장애를 가진 조재희가 역시 노처녀 의사인 엄정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양정아, <꽃보다 남자>의 ‘가을’로 친숙한 김소은 등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기대된다. 앞으로 녹화해서 꼭꼭 챙겨봐야 겠다!


오덕후 조재희의 홈시어터라면 최소한 이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출처 로이코(
www.royc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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