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극장판 리얼 버라이어티, ‘여배우들’

朱雀 2009. 12.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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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은 매우 영리한 영화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실대로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의 여섯 배우는 ‘보그’지의 특별 화보 촬영을 위해 한데 모인다.

여배우가 여섯 명이나 한 자리에 모인 일이 없었던 탓인지, 여배우들간의 신경전과 이를 중재해야할 에디터들간의 고민이 영화의 초반부를 수놓는다. 그리고 여섯명의 배우들은 촬영이 시작되자 더 예쁜 옷을 입기 위해 신경전을 벌인다.

가장 고참인 윤여정은 본인이 누군가의 대타로 섭외되지 않았을까 내내 전전긍긍하고, 이미숙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현장을 휘어잡는다. <선덕여왕>으로 최고의 한해를 보낸 고현정은 선배들과 기자들에겐 능글 맞게 굴면서 친화력을 발휘하지만 왠일인지 최지우와는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그 사이에서 막내인 김옥빈은 어쩔 줄 몰라하며 빙빙 돌고, 김민희는 별다른 말없이 자리를 지킨다.

<여배우들>은 관객이 가진 ‘여배우’에 대한 환상에 충실하다. 그녀들은 각자 다른 매력으로 촬영에 임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김미숙은 익히 알려진대로 강인한 모습으로, 고현정은 특유의 털털함으로, 최지우는 ‘지우히메’답게 도도함으로, 김민희는 특유의 생기발랄함 등으로 관객의 선입견에 맞는 모습을 선보인다.

특히 현역 여배우중 나름 견줄만한 대상인 고현정과 최지우는 별 다른 이유 없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급기야 최지우가 촬영장을 뛰쳐나감으로써 그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그러나 영화는 동시에 ‘여배우도 결국 사람이다’란 주제에 충실해버린다. 생전 처음으로 함께 모인 여섯 명의 배우들은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안보이는 신경전을 펼치지만 결국 ‘여배우’란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촬영의 하이라이트인 보석이 지연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이내 의기투합해 크리스마스 이브파티를 여는 그녀들은 여배우이기에 겪어야만 했던 슬픔과 아픔을 서로 공유하고 공감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화합해간다.


여배우들
감독 이재용 (2009 / 한국)
출연 윤여정,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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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들>은 위에서 언급한 면에서 영리하지만, 다른 면에서도 영리하다. 가령 이를테면, 고현정은 이미숙과 윤여정과 함께 우리의 공통점은 ‘이혼’이라며 다소 센 발언을 한다. 그러나 정작 관객이 제일 궁금해하는 이혼시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선 함구한다. 이건 이미숙도 마찬가지다. 60대를 대표하는 윤여정이 당시 자신의 심경과 보다 자세한 사항을 이야기해줄 뿐이다.

고현정과 최지우의 신경전은 <여배우들>에서 가장 큰 사건이지만, 아쉽게도 큰 화학적 반응은 일으키지 못한다. 애초에 서로 손과 발이 오갈 만큼 큰 사건이 아니었던데다, 화해하는 부분도 다소 어물쩡하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여배우들>에서 의외로 매력을 발휘하는 이는 김민희다. 초반에는 대중에게 어필한 당당함으로 일관하다. 그러다 이내 별다른 대사 없이 존재하다가 마지막에 여배우로서 자신의 심경을 또박또박하게 밝혀, 기존의 그녀에 대해 가진 다소 ‘건방진’ 이미지들을 (사정없이) 전복시킨다.

영화상에서 가장 활기찬 이는 물론 고현정이다. 고현정은 특유의 털털함으로 여섯명과 어울린다. 선배들에겐 싹싹하고 후배들을 챙기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나름 거침없이 해대는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상황 설정만 하고 나머지는 여섯 명의 여배우들일 즉석에서 꾸며냈다는 영화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현실이고 설정인지 온통 헷갈리게 만든다. 그러나 ‘페이크 다큐’라기 보다는 현재 공중파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얼 예능’을 보는 느낌이 강하다. 그녀들의 진솔함 뒤에는 휴머니즘 보다 ‘재미’를 추구한 느낌이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마치 시청률을 위해 철저히 재미를 추구하는 공중파의 예능처럼 말이다. - 그만큼 뭔가 꾸며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당대를 주름잡는 여배우들 답게 그녀들의 나름 솔직한 이야기들은 공감과 더불어 웃음을 준다. 그러나 감동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은 이 영화가 지닌 명백한 한계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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