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루저들의 슬픈 핏빛 이야기, 렛미인

朱雀 2009. 12. 27. 07:00
728x90
반응형


필자는 안타깝게도 영화 <렛미인>을 보지 못했다. 왜 그런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데, 어쩌다보니 놓친 그런 영화가 되고 말았다. 영화평론가부터 네티즌까지 모두들 입에 침이 마르는지 모를 정도로 칭찬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하기 위해 택한 방법은 원작을 읽는 것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렛미인>은 뱀파이어가 나오지만, 기존 뱀파이어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다. 가령 최근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테파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시리즈에선 햇빛에 아래 서면 (뱀파이어의 피부가)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만큼 미모가 빛난다. 한마디로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는 매혹적이다 못해 태양빛처럼 빛나는 존재다. <뱀파이어 연대기>속의 뱀파이어들 역시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초자연적인 힘과 능력을 지닌 매혹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렛미인>의 엘리는 다르다. 그녀는 겨우 열 살 조금 넘긴 아이의 몸을 하고 있다. 2백살이 넘은 뱀파이어는 조력자의 힘이 없으며 생존이 힘들 정도로 ‘약한’ 존재다. 사랑에 항상 굶주리고 연약한 존재는 결국 이웃에 사는 소년 오스카르를 만나면서 자신의 기쁨과 이유를 찾게 된다.


렛 미 인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2008 / 스웨덴)
출연 카레 헤데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페르 라그나르, 헨릭 달
상세보기


소설 <렛미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큰 결점을 지닌 인물들이다. 주인공 오스카르는 이혼한 가정의 아이로 오줌을 찔끔거리는 병을 앓고 있다. 때문에 그는 오줌공을 팬티안에 넣고 다닌다. 욘니를 비롯한 문제아들은 항상 그를 때리고 잔인하게 괴롭힌다.

오스카르에게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은 <슈퍼맨> <플래시맨>같은 히어로물에 빠져서 공상 속에서 ‘슈퍼히어로’가 되는 길 뿐이다. 그를 괴롭히는 욘니 역시 결손가정의 아이로 불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이밖에 알콜중독자와 소아성애자 등등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는 이들이 주로 등장한다(단 한명의 부자와 엄청난 지위를 가진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 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환상소설임에도 상당한 ‘사실성’을 부여한다)

<렛미인>에는 행복하거나 온전한 가정에 사는 이들이 없다. 그들은 대부분 누군가에게서 밀려난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있으며(치유될 수 없는), 어느 누구도 그들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지 않는다.

<렛미인>엔 비록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환상물이지만, 그 밑에 단단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결손가정에서 자라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들, 바에서 술을 먹으며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외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들. 경찰이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지만 결국 누구도 존경해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못하는 이들. 한마디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들이 이 소설의 주된 등장인물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불만족스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기 위해 소소한 노력을 하지만, 그것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결국 실패로 돌아올 뿐이다.

<렛미인>이 잔인한 것은 결코 ‘구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엘리를 사랑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조력자 호칸은 결국 끔찍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알콜중독자로 자신의 친구인 요케의 복수를 꿈꾸던 라케는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브리기니아가 햇빛속에 한줌 재가 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렛미인>의 결말은 읽는 이를 더욱 난감하게 만든다. 복수를 원하든 이들은 복수를 결코 완수하지 못한다. 오직 소년 오스카르 만이 그의 숙적인 욘니와 그 일당들을 엘리의 힘을 빌려 처단하고, 그녀의 조력자가 되는 나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뿐이다.

그러나 누구와도 비밀을 간직할 수 없고, 오직 다른 이를 죽임으로써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엘리의 운명상, 그는 매우 불행한 결말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소년 오스카르의 운명 역시 그저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렛미인>의 결말은 잔인하다 하겠다. 서로를 너무나 원하던 두 존재가 마침내 서로 함께 하게 되지만, 마치 시한폭탄처럼 서로를 증오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최후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말만이 그마나 서로의 영혼의 짐을 덜어주고 위로를 준다는 점에 약간의 행복을 지녔다고 볼 수 있으리라.


렛미인. 1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욘 A. 린드크비스트 (문학동네, 2009년)
상세보기


<렛미인>을 읽으면 당신은 판타지의 즐거움 보다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에 대해 가슴이 먹먹해지는 슬픔을 맛보게 될 것이다. 여기엔 악인이 없다. 그저 현실의 피해자들만이 있을 뿐이다. 오스카를 괴롭히는 욘니마저 잘못된 사회의 희생양이며, 어찌보면 궁극의 ‘악’이라 할 수 있는 엘리마저 잔인한 운명에 의해 원치 않는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만약 기존의 <렛미인>의 명성만 듣고 책을 집어든다면 당신은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차가운 북구유럽의 날씨만큼 새롭고 먹먹한 환상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이만한 선택도 없으리라 여겨진다. 어찌보면 몇 건의 살인사건 외에는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들로 빽빽이 두권을 채운 작가의 필력은 끝까지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중독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엄청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세심한 관찰력과 묘사력으로 인간의 깊은 내면을 성철해낸 필체엔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다. 새로운 환상소설을 읽고 싶은 당신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