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신데렐라 언니’는 드라마가 아니다!

朱雀 2010. 5. 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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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방영된 <신데렐라 언니>를 보면서 그만 놀라고 말았다. 이건 단순한 통속극이 아니었다! 제목에 <신데렐라>를 넣었기에 처음에는 ‘신데렐라 콤플펙스’나 아니면 <신데렐라>를 적당히 현대식으로 재해석해서 ‘볼만한 드라마’가 한편 나올 거라 예상했었다.

연기력의 소유자인 문근영과 서우 그리고 멋진 천정명과 택연을 보는 재미에 뭔가 하나 더 얹어줄 수 있다면 ‘금상첨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요즘의 드라마’와는 궤를 많이 달리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었다.

<신데렐라 언니>는 지나치게 문근영-서우-천정명의 심리묘사에 거의 대다수의 시간을 보낸다. 물론 나름대로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요새 드라마치고는 사건도 별로 없고, 등장인물의 심리묘사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80년대라면 모를까? 요즘처럼 빠른 전개방식과 ‘막장’이란 말이 익숙해진 자극적인 설정에 익숙한 세태에 <신데렐라 언니>란 드라마는 참으로 기묘한 만남이다. 근데 더 골때리는 사실은 ‘재밌다’라는 것이다. 이번주 수요일 방송을 생각해보자! 정말 별 다른 사건이 없었다. 오직 세 주인공의 심리묘사에 모든 것을 할애했다. 그런데 심지어 ‘긴장감’이 넘쳤다.

대성참도가의 지주인 구대성(김갑수)가 죽었을 때, 효선(서우)는 자신의 마음 한켠 놓을 곳을 찾지 못한다. 그토록 따랐던 어머니 송강숙(이미숙)은 이제 본심을 드러내고 그녀를 막대했다. 은조(문근영)는 대성참도가를 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느라 그녀에게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 은조는 징징짜는 효선에게 마구 화를 내고 빈정거려 그녀가 ‘공주’에서 벗어나길 바랬다.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일반적인 드라마였다면 효선은 강숙을 미워하고, 은조를 미워하며 대성참도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은조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택했다. ‘...너랑 뻗대는 것 힘에 부쳐. 잠깐만이라도 나랑 의좋은 자매 흉내내줄 순 없겠니? 어디 안 간다고 나랑 약속해주면 안돼’라며 은조에게 매달린다. 그런 효선 앞에 은조는 무장해제를 당한다. 처음에는 미워했지만 점점 측은해져가는 그녀 앞에서 은조는 결국 ‘따뜻하게는 못해도 뻗대진 않겠다’라고 약속한다. 그후 그녀들은 심지어 함께 밥을 비벼먹을 만큼 사이가 가까워진다.

그런데 강숙은 더더욱 자신에게 살갛게 구는 효선을 구박하고, 어린아이 같이 마냥 착해보이는 효선을 적당히 자신의 방으로 부른 은조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마치 구대성이 병실에서 두 모녀의 이야기를 듣고도 모른 척 한 것처럼, 효선 역시 그동안 강숙이 ‘예쁜 척’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좋아하니까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차라리 욕하고 뺨을 때리는 것보다 은조의 마음을 더욱 쓰라리게 한다.

 은조는 견딜 수 없어서 효선을 달래기 위해 부탁했던 기훈(천정명)에게 가서, ‘도망치겠다’라고 선언한다. 더 이상 죄의식을 그녀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생 미움으로만 삶을 지탱해왔던 그녀로선 ‘더 이상 어떻게 해야할지’ 혼란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대본을 쓴 김규완 작가에 대해 그저 ‘천재’라고 밖에 할 말이 없어진다. 왜냐면 이런 드라마의 흐름엔 너무나 ‘해석의 여지’가 많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구대성의 죽음과 함께 구대성처럼 변한 효선의 변화는 일간 당연해보이면서, 동시에 그녀의 그런 모습속에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기 때문이다.

 고사떡을 입에 물리자 송강숙이 땅바닥에 던지는데도, 효선은 그걸 주워먹고 그런 모습에 독한 계모마저 질려버리기 때문이다. 그 행동은 ‘착한 것’을 넘어서서 ‘뭔가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효선에 의해 무장해제당한 은조는 어머니 송강숙을 설득해 효선에게 잘해줄 것을 당부하지만 먹히질 않는다. 그러자 은조는 전술을 달리한다. ‘구씨 문중 어른들이 대성도가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효선을 잘 꼬드기면 효선의 몫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자, 다시 강숙의 예전처럼 효선을 몹시 잘해준다. 그러나 그런 강숙에게 안기면 ‘진심이 아닌 거 알지만 그래도 더 잘할께’라는 효선의 말은, 어딘가 모르게 섬뜩했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구효선과 송은조다! 두 사람은 각각 사랑과 미움을 상징한다. 처음 효선을 봤을 때는 공주로서 모든 사랑을 받고 지낸 그녀가, 자신의 것을 빼앗아가는 은조를 미워하고 점차 ‘독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드라마는 다른 방향으로 가버렸다. 그녀는 사랑을 선택했다. 잠시 은조를 미워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그녀는 결국 아버지 구대성처럼 그들을 품어버렸다.

 은조 말마따나 ‘이런 부녀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드라마에 몰입하게 되는 것은 그런 사람이 한두명쯤은 세상에 있길 바라는 환상 때문이다. 은조는 효선을 미워할 수 없게 되자, 구대성을 죽음으로 몰고간 장본인을 찾고자 하고, 홍주가의 숨겨진 아들로 음모에 일부 동참한 기훈은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신데렐라 언니>의 또 다른 축은 ‘죄와 구원’의 문제다! 은조는 대성참도가에 오기까지 불안하고 쫓기는 나날들을 보내왔다. 그리고 구대성을 만나고나서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다. 무려 8년이 넘긴 세월이 지나, 마음의 문을 어느 정도 열게 된 순간, 구대성은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이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내내 ‘짐’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자신을 그토록 사랑해준 구대성에게 한번이라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것은 이제 그녀 평생의 한이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 송강숙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준 구대성에게 그저 고맙고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따라서 그녀는 어떻게든 대성참도가를 일으켜세워야 하고, 아버지를 죽게 만든 장본인들을 미워하며 그 힘으로 버터야한다.

 

홍기훈은 은조보다 더욱 심한 상황이다. 그는 자신을 받아준 은인 구대성을 죽게 만들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평생의 ‘죄와 한’이 되었다. 그러나 차마 그는 은조와 효선에게 모든 것을 고백할 용기가 없기에, 그저 ‘미안하다. 최선을 다하겠다’란 식으로 얼버무린다. 허나 이제 아버지 홍회장이 은조에게 ‘모든 것을 말하겠다’고 협박하고 나와, 더 이상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은 인간이 역사를 가진 이래, 가장 많이 고민해온 문제들이다. 사랑과 미움, 시기와 질투, 죄와 구원 등등. 그런 어려운 주제들을 <신데렐라 언니>는 현대인들에게 ‘먹히게’ 만들었다. 거기에 재미까지 있으면서도, 매순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 자! 이제 당신은 <신데렐라 언니>를 단순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보기엔 <신데렐라 언니>는 문학이다! 요즘 표현으로 이쯤되면 '아트'라는 말밖엔 할게 없다.

드라마로 멜로로 현대판 동화로 포장되었지만, 거기엔 온갖 인간군상들이 등장해,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써 그동안 잊고 지냈던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그런 작품인 것이다. 그것이 80년대 감성으로 21세기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신데렐라언니>의 대한 정당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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