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오해를 자초한, 그래서 더 멋있는 ‘신데렐라 언니’

朱雀 2010. 5. 27. 09:04
728x90
반응형



 

<신데렐라 언니> 17회를 본 이들의 대다수는 의아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갑자기 은조는 티아라의 보핍보핍댄스를 추고, 울면서 사죄를 해도 모자를 판의 기훈은 뜬금없이 은조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를 안는다. 그뿐인가? 대성참도가를 위기에 번번히 몰아넣는 홍주가의 모든 음모를 암에 걸린 전본부장이 증거까지 친절히 제출해줘, 홍주가의 음모를 분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저절로 굴러온다.

어제 방송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오해하겠다’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침에 일어나 올라온 글들을 보니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식의 글들이 제법 보인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신데렐라 언니>는 오해를 스스로 자초했다. 그래서 나는 <신데렐라 언니>의 제작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신데렐라 언니> 17회로 돌아가보자. 17회는 강숙이 도망간 소식을 효선이 알리면서 시작된다. 그토록 감추고 싶었던 어머니의 부정을 효선이 알아버린 사실을 알곤 은조는 효선에게 ‘제발 걷어차 달라’고 한다. 은조의 말마따나 효선을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계모의 부정을 안 상황에서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런 자기모순을 견딜 수가 없어서, 장씨 아저씨를 찾아갔단다. 왜 8년의 세월을 부정하냐고, 너와 나 사이에 준수가 있는데 그러느냐고 은조는 말한다.

 

맞다. 그게 인생이다! 어머니가 도망가고 효선은 아파서 누워 있는데, 동생 준수는 유치원 때문에 소녀시대-티아라-브아걸을 아느냐고 은조에게 묻는다. 늘 일밖에 모르고 산 은조가 알 리가 없다. 준수는 화를 내고, 은조는 준수의 입을 통해 엄마가 최근 걸그룹의 춤과 노래를 알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 받는다. 자식사랑이 끔찍한 강숙이었지만, 그 정도로 어린 자식과의 소통에 노력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사라지고 낫야 은조는 그녀의 빈자리를 느낀다. 지긋지긋해서 도망가고 싶었던 어머니가 사라지자, 얼마나 자신이 그녀를 그리워하고 사랑했는지 깨닫는다. 난데없는 소녀시대와 티아라 등의 등장은, 최신 트랜드를 집어내는게 아니라, 그것이 신-구세대를 가르는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젊은 은조는 모르고, 50대 강숙은 신세대 걸그룹을 안다는
사실에서 역전이 일어난다. 그것은 생각할 거리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50 평생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알게 된 강숙은 친구네 집에서 얹혀 살면서, 딸(은조)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사라지고 나서야 은조는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효선과 준수를 제대로 보고 품을 수 있게 된다.

 어머니 강숙을 찾아나선 자리에서 우린 난데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기훈을 보게 된다. 모든 죄책감을 훌훌 털어냈다는 그는 그동안 숨겨놓았던 은조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모두 풀어놓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우리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우린 이야기에서 기승전결을 따지고, 인과관계를 엄청나게 따진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사는 인생에선 기승전결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과관계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갑자기 다음날 로또에 당첨되고, 잘 살던 사람이 다음날 저녁에는 번개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게 우리네 인생이다. 당장 한치앞도 알 수 없는 인생사. 그래서 삶은 부조리하고, 우린 내일을 알 수 없기에 더욱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는 머리로 이해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아마 많은 이들은 이전의 통속극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데렐라 언니>가 문근영-서우-천정명-택연 등이 등장했을 때, 이전까지의 통속극과 마찬가지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데렐라 언니>는 모든 것을 뒤집어버렸다. 대성참도가와 홍주가는 라이벌 관계로 물밑에서 엄청난 싸움을 벌이지만, 기실 그건 그저 좀더 사람들에게 드라마를 보게 하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신데렐라 언니>가 시청률을 의식했다면, 17회 같은 이야기전개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데렐라 언니>의 목적은 시청률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부잣집에 재취를 하고도, 예전 생활이 못내 그리워 자신을 때렸던 털보 장씨를 만나는 송강숙.

 아버지 구대성을 잃고 나서야 효선에게 마음을 열게 된 은조. 모든 죄를 털어놓고는 이제 오히려 은조를 마음 놓고 사랑하게 된 기훈. 구대성-효선 부녀를 겪고 나서야 50 평생 부끄러움이 뭔지 알게 된 송강숙. 그래서 <신데렐라 언니>는 재밌고 흥미롭다.

 <신데렐라 언니>는 단순히 반전을 노리지 않는다. 일반적인 드라마에 익숙해져 ‘다음 회는 좀 더 자극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겠지?’란 시청자의 기대를 철저히 배반한다. 기존 드라마 문법을 철저히 파괴하고, 인기 스타를 내세웠지만 문학에서나 나왔던 인간의 본질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시청률 지상주의가 판치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말이다!

 

어쩌면 효선이 처음에 말한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병들었는지’ 모른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지 못하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자극적인 방송만에 열광하는 오늘날의 우리는 말이다. 시청률 1%가 아쉬운 수목극에서 자극적인 이야기전개를 포기하고 선선히 모든 시청자들이 오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들고나온 <신데렐라 언니> 제작진의 용기는 그래서 가상하고 그래서 응원하게 된다. 어쩌면 사실 인생은 별 것 아닐 수도 있고, 사실 내일은 예상외의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어도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그러나 오늘은 미워하고 화내는 게 당연한 시대에 역설적으로 설파하고 있는 <신데렐라 언니>를 그래서 더더욱 응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