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터미네이터 4, 졸작인가? 범작인가?

朱雀 2009. 5. 2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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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 (이하 ‘T4’)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관심을 끌 수 밖에 없는 영화다. 우선 <터미네이터>의 후속 시리즈라는 점에서 그렇다! 형 만한 아우 없고, 전편만한 속편 없는 건 다 안다.

그러나! 우리에게 <터미네이터 1>과 <터미네이터 2>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1980년대 당시론 신선한 기계와 인간의 대결 구도는 흥미를 이끌었고, 미래 전쟁의 지도자인 존 코너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과거로 인간과 로봇이 각각 들어와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는 점도 매우 신선했다.

게다가 근육질의 아놀드 현 주지사는 손에 꼽힐 만한 대사와 차가운 눈빛 연기로 ‘기계 그 자체’로 보게 만들었다. 할리우드 특수효과가 총동원된 영상과 제임스 카메론의 숨 막히는 편집과 연출은 그야말로 관객의 손에서 땀을 자아냈다.

<터미네이터 2>는 어떠했나? 그야말로 충격의 연속이었다. ‘액체 터미네이터’는 놀라운 발상이었고, 기계와 기계가 대결을 벌이고 그 속에서 묵시룩적 세계에서 고뇌하는 사라 코너의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뿜어져 나왔다. 지금 보면 여기저기 어설픈 특수효과가 눈에 띄기도 하지만, 당대 CG 기술을 한 차원 높인 영상과 숨 가쁜 전개는 현재 비슷한 영화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몇 수 위의 오락 영화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T4는 아무런 생각 없이 보면 꽤 볼만하다. <다크나이트>의 크리스찬 베일은 존 코너 역할에 적임자로 보이며, 사형수에서 기계로 다시 태어난 존 마커스역의 샘 워싱턴과 한국계 배우인 문 블러드 굿의 연기 역시 상당히 괜찮다.

끊임없이 터지고 부셔지는 액션과 비교적 다양한 형태의 살인 기계들은 비교적 적시에 나와져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만약 T4가 <터미네이터>의 후속작이 아니라 그냥 SF를 표방한 블록 버스터였다고 별 4개를 줄만하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터미네이터>의 후속작이라는 부분이다. <터미네이터>는 단순한 오락 영화나 블록 버스터가 아니다. 1980년대 기계와 인간의 대결구도를 통해 할리우드의 영화공식을 다시 쓰고, "I'll be back"은 희대의 명대사로 남아 버렸다.

2009년 현재 기계와 인간의 대립구도는 우릴대로 우린 사골 국물처럼 더 이상 맛이 나지 않는다. 끊임에서 나오는 기계들의 모습은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고, 긴장감을 더해줘야 할 장면들 역시 이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018년을 배경으로 나온 미래형 살인기계들은 할리우드의 특수효과의 발전으로 더욱 세련되었지만, 이전만한 중량감을 갖지 못한다. 거기엔 오리지널의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미녀삼총사: 맥시멈 스피드>의 맥지 감독은 분명 볼만한 오락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선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런 고민이 없다. 자신의 아버지 카일 리스를 구하고, 인류의 미래를 구원해야할 존 코너에겐 지도자로서의 고민이 잘 읽혀지지 않는다. 인간인지 기계인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미치도록 고민해야할 존 마커스의 모습역시 마찬가지다. 저항군에 포로로 잡힌 그를 구해내는 블레어 역시 ‘기계를 증오하지 않고 인간’을 인정하는 부분에선 인상적이지만 이미 식상한 설정이다.

‘인간의 심장과 영혼을 지닌 기계’라는 설정은 이미 문학은 물론 영화에서도 너무 많이 차용된 이미지다. 인정한다! <터미네이터>는 시대를 앞서갔고, 그 이후 많은 작품들이 그 이미지를 차용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내놓을 수가 없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전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도 인정한다.

그러나 <매트릭스>는 기존의 나와있는 모든 것들을 혼합하고 새롭게 재해석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다크나이트>는 ‘의식 있는 블록 버스터’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물론 단순한 흥행 감독에게 이런 작품성을 요구한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불가능한 요구를 자꾸 말하는 이유는 T4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구닥다리 설정이 되버린 기계와 인간의 대결 구도는 어떤 식으로든 새롭게 재정립해야했고, 살아나올 수 밖에 없는 아버지(카일 리스)와 아들(존 코너)를 위해 뭔가 새로운 장치가 필요했다.

영화는 그저 안전한 곳만 정해 지나갔다. 덕분에 좋은 배우들의 호연과 ‘터미네이터’란 좋은 소재는 어떤 네티즌이 써놓은 것처럼 ‘좋은 재료’이상의 것은 되지 못했다. 맥지 감독은 요리사로서 창조적인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재료의 맛을 어느 정도 끌어내는 데 만족했다.

당신이 그저 시간을 때울 오락 영화를 찾는다면 ‘괜찮다’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1, 2>의 ‘그것’을 원한다면 ‘절대 불가능하다’란 걸 재확인시켜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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