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앞서서
-이 감상문은 2000년쯤 <공각기동대>를 비짜 테잎으로 보고 놀라 쓰게 된 글이다. 처음 작품을 접하곤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7번 정도 계속해서 감상했다. 그제서야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대략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느낀 점들을 나름대로 적어 내려갔다. 여기에 적은 내용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오시이 마모루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했는지 보다,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서술하려 애썼다.
당시는 지금처럼 DVD를 비롯한 정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시절이라 많이들 복제된 비디오 테이프를 구입 혹은 복사해서 보던 시절이었다. 이후 DVD를 구입하고 한국판 DVD를 재구입하고 다시 블루레이까지 사는 짓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 작품의 후속편인 <이노센스>가 나왔지만, 쿠사나기 소령이 주인공이 아닌 탓에 이전만큼 흥미롭진 않았다. 늘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해 회의하고 멋 부린 듯한 어려운 대사만을 남발하는 오시이식 표현도 물려버려 별로 평을 하고 싶지 않았다.
20대인 당시, 이 글을 여기저기 써서 올렸다. 지금은 하나포스로 이름을 바꾼 하나로에 올리고, 신비로 애니피아, 하이텔 애니동 등에 업로드 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디다 언제 올렸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간수를 잘못해 원고를 잃었는데, 최근 우연히 <비밥내멋대로해석>이란 예전에 26화에 대해 일일이 주석(?)을 단 글을 어느 이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것을 발견해 이렇게 새로 업로드하게 되었다. 원저자를 운운하는 게 조금 우습긴 하지만 zazak이란 닉네임을 하나로에서 사용 중인데, 이는 주작을 대충 내식대로 영어로 써서 붙인 것이다. 지금도 하나포스에서 그 닉네임을 사용하니까 누가 원저자(?)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참 재밌는 것은 이 글과 비밥 관련글이 인터넷 여기저기에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많이 읽혔다는 사실은 기쁘지만, 대부분 자신이 쓴 것처럼 올려서 씁쓸한 입맛이 남기도 한다.
여하간 내가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한가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감독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작품은 관객에 의해 재조명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처럼 작품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나름대로 의미있는 작업을 했다고 자신한다. 이 글은 꽤 길다. <공각기동대>를 재밌게 보았다면 끈기를 가지고 읽어주길 부탁한다.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 동일성(同一性)과 다양성(多樣性)
"...A STUNNING WORK OF SPECULATIVE FICTION. THE TRULY ADULT ANIMATION FILM TO REACH A LEVEL OF LITERARY AND VISUAL EXCELLENCE." JAMES CAMERON
1996년 오토모 가츠히로의 <메모리즈(MEMORIES)>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상영되어 숱한 화제를뿌린 작품이 바로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이다. 제임스 카메론의 극찬이 말해주듯이 이 애니는 기술 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진일보한 형태를 띄고 있다. 이 애니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BLADE LANNER)>에 많은 영향을 받아온 일본 SF영상이 자체적인 독립을 선언했다고 평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선 곁가지의 형태로 보는 이들도 많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5번째 작품이기도 한 이 애니물은 후일 매트릭스를 비롯하여 뤽 베송감독의 <제 5원소(THE FIFTH ELEMENT)> 그리고 많은 영상물에서 기법을 흉내내고 차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비쥬얼적인 면에서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 작품이다.
그렇다고 공각기동대를 단순히 비쥬얼적인 요소만 고려하면 곤란하다. 오시이 마모루가 의도했듯이 과감하게 몇몇 장면을 빼곤 지루할 정도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고 하는 가장 형이학적 문제. 즉 철학사적으로 지난 몇 천년간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질문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오시이 마모루(Mamoru Oshii)은 1951년 8월 8일, 토쿄도 출생. 타cm노코 프로덕션[タツノコプロ], 스튜디오 피에로[ぴえろ]에서의 연출 경험을 살려, 83년에 영화 <시끄러운 녀석들/온리 유[うる星やつら/オンリ -ユ-]>에서 감독, 각색을 담당. 주목을 모았다. 그 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機動警察パトレイバ-]> 시리즈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를 만들게 된다. 그럼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인용해 보겠다.
"반다이[バンダイ]에서 이번의 이야기가 나오기 2년 정도 전부터 스스로 기획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건 영화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해서. 시로 씨의 원작이라는 것은 영화가 될만하게 보이면서, 되기 어렵습니다. 무척이나 특수한 형식으로 그리고 있는 사람이라서. 싫어하는 사람은 난외[欄外]의 각주가 싫겠지요. 그가 생각하는 것은 만화의 범주에 딱 들어맞지 않습니다. 전 그 점에 공감하는 겁니다. 그러나, 원작자가 마음에 드는 것을 만드는 것이라면, 원작에 있어서도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도 불행. 그것이 우선 이해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만, 이번에는 시로씨의 이해를 얻어서 캐릭터까지도 디자인을 바꾸었고, 우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적인 원작자입니다.
『공각』은 SF 작품으로 생각되기 쉽습니다만, 시로씨에게는 SF를 그린다는 의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SF라는 것은 편리한 방입니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으로 자유도는 높아지죠. 그러나, 자신이 어떤 테마가 보이게 되면 SF라는 방은 급속하게 좁아집니다. 그 좁음을 깨달으면, 손님을 내쫓아서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집니다. 『패트레이버』도 저와 스태프는 SF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원작의 어느 부분에 이끌렸는가 하면, SF스러운 부분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시로 씨가 안고 있는 세계관입니다. 원작은, 사이보그화한 인간의 머리에 컴퓨터의 단말이 들어가서, 그것이 일상화된 세계로,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인간 같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생물이 변화하는 계기로서는, 일단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쟁도 혁명도 꽤나 해왔고, 그러고도 변하지 않는 인간이 변한다고 한다면, 테크놀로지 이외의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 그것은 결코 장밋빛의 미래는 아니겠습니다만, 아무튼 믿어볼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만화에서 전하기 어려웠던 것을 영화에서 해보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단지, 진실을 말하자면 컴퓨터 공간 같은 것은 영화에서도 표현 불가능. 뇌로 보는 세계란 누구도 본 적 없으니까요. CG등으로 표현하는 것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빈약한 겁니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보신 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죠. 표면상은, 분명한 액션 영화로 해두고 있으니까 반다이에서도 코단샤에서도 안심하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웃음) 보려고만 한다면 시로씨가 생각하고 있었던, 혹은 제가 공감했던 철학적인 존재론적 테마도 보이지 않을 것은 없다는......1편 째의 <패트레이버>에 가까운 느낌이 아닐까요?"
1993 년 <패트레이버 2>를 만든 후 1995년만든 작품이 바로 <공각기동대>다. 인터뷰에서 오시이 마모루감독은 <패트레이버 1>과 비교하여 <공각기동대>를 말하지만 작품을 본 많은 사람들은 <공각기동대>와 <패트레이버 2>를 비교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두 작품은 일단 내용적인 면에서 흡사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는 쿠사나기 소령과 인간사회의 불합리한 면을 꼬집는 고토와 이사카와의 대화 장면은 비슷한 느낌을 많이 준다. 또한 몽환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영상은 둘이 정말 많은 면에서 같은 느낌을 묻어난다.
1989년 만든 <패트레이버>가 헤드기어 팀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 원작에 가까운 내용이었다면 1993년 제작된 <패트레이버 2>의 경우 1과는 달리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극장판 1이 원작처럼 좀 가볍고 다이내믹한 영상에 주력한 것과는 달리, 두 번째 극장 판에선 일본정부와 미국간의 암묵적인 외교관계, 사회와 인간과의 관계, 음모와 배신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전과 다른 내용적, 비쥬얼적 변화를 보여준다. 액션신은 최대한으로 절제하면서 대신 인물들간의 갈등구조와 내용전개에 대해 지루할 만큼 집중해서 보여준 것은 관객에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위한 오시이 마모무감독의 연출이라 보여진다. 공각기동대는 많은 사람들에게 역동적인 화면과 화려한 전개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지만 막상 작품을 보면 그러한 장면들은 몇몇 되질 않는다. 대신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과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바토, 토그사, 9과 과장)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토그사 : 인형사라... 그 정체 불명의 해커가?
쿠 사나기 : 국적 추정 미국. 연령, 성별, 경력 전부 불명 작년 겨울쯤부너 주로 EC권에 출몰. 주가 조작, 정보 수집, 정치 공작, 테러, 전뇌 윤리 침해, 그 외에 10수건의 용의로 국제 수배 중인 범죄자, 불특정 다수의 인간을 고스트 해크해서 조종하는 수법 때문에 붙은 코드 네임이 '인형사' 이 나라에 나타난 건 처음일 거야.
토그사 : 그런 굉장한 놈이 왜 구식인 HA-3따위로?
쿠사나기 : 새로운 타입이라면 확실히 발각되기 어렵고 그 역탐도 어려워. 하지만 그거라면 상황으로 봐서 즉시 전 군사 정권의 지도자였던 마레스에게 혐의가 가지.
토그사 : 스폰서인 마레스가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구식을 쓰게 했다...?
쿠사나기 : 또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고 싶은 다른 스폰서가 있는 건가... 의외로 마레스 자신도 이용당하고 있는 한 사람일지도...
토그사 : 지나친 생각 아니야? 지금으로선아무런 근거도 없고
쿠사나기 : 근거라고? 그렇게 속삭이는 거야. 내 고스트가. 그런데 아직도 리벌버를 쓰고 있다며? 2인 1조로 1자루를 들어도 고장이 무서워?
토그사 : 난 마테바가 좋아.
쿠사나기 : 원호 받는 쪽으로서는 취향보다는 실효성 압력을 문제로 삼고 싶어. 위험하게 되는 건 나니까. 자스타바로 해.
토그사 : 소령.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왜 나 같은 남자를 본청에서 뽑은 거죠?
쿠 사나기 : 네가 그런 남자이기 때문이야. 부정규 활동의 경험이 없는 형사 출신으로 더구나 기혼, 전뇌화는 했어도 뇌는 잔뜩 남아있고 거의 생몸, 전투 단위로서 어느 정도 우수해도 같은 규격품으로 구성된 시스템은 어딘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게 돼. 조직도 사람도 특수화의 끝에 있는 건 느슨한 죽음...그것 뿐이야.
공각기동대의 이야기의 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인형사라 불리는 희대의 해커와의 대결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쿠사나기 자신의 이야기다. 쿠사나기의 주변인물중 하나인 토그사와의 대화를 살펴보면 이러한 소령의 고민을 잘 알 수 있다. 토그사는 정확히 말해서 공안 9과의 임무에 맡을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는 전투력이 일반인과 거의 같은 수준. 즉 그는 의체나 전뇌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생몸의 인간이다. 반면 쿠사나기는 모든 몸이 의체화 되어있고 거기다가 뇌까지 전뇌화가 이루어져 사이보그에 가까운 형태다. 전투력과 생존력에선 우수하지만, 같은 규격으로 된 팀은 어딘가 느슨한 죽음의 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자신과 전혀 다른 타입의 사람과 팀을 만들었다는 것에서 그녀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 공안 9과(公安 9課)의 별명은 공각기동대(功殼機動隊). 수상 직속의 특수실행부대로, 전뇌네트나 공안관계의 테러대책 등의 공적으로는 불가능한 사건의 감사나 해결을 임무로 한다.
청소부2 : 의사 체험이라니 무슨 소리죠?
취조관1 :그러니까 부인도 딸도 이혼도 바람도 전부 가짜 기억으로, 꿈 같은 겁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이용당해서 정부 관계자에게 고스트 해크(GHOST HACK)를 한 겁니다.
청소부2 : 그런... 설마
취조관2 : 당신 아파트에 갔다왔소. 아무도 없어. 독신자의 방이야.
청소부2 : 그러니까 그 방은 별거 때문에 빌린 아파트로...
취조관2 : 당신은 그 방에서 벌써 10년이나 살아왔어. 부인도 아이도 없어. 당신 머리 안에만 존재하는 가족인 거요.
취조관1 : 보세요. 당신이 동료에게 보여주려고 한 사진이요. 누가 찍혀있죠?
청소부2 : 확실히 찍혀 있었어. 내 딸...마치 천사처럼 웃고...
취조관2 : 그 딸의 이름은? 부인과는 언제 어디서 알게 돼서 몇 년 전에 결혼했죠?
청소부2 : (대답을 못하고운다)
취조관2 : 거기에 찍혀 있는 건 누구와 누구죠?
사진 : (아무도 없이 혼자 찍혀있다)
청소부2 : 그 거짓 꿈...어떻게 하면 지울 수 있는 거죠?
취조관1 : 유감이지만 현재 기술로는... 성공이 2번 보고되어 있을 뿐으로 도저히 권유할 수 없습니다. 정말 안되셨습니다.
바트와 쿠사나기가 취조를 반대쪽 창에서 지켜보고 있다.
바트 : 의사 체험도 꿈도 존재하는 정보는 전부 현실이고 그리고 환상인거야. 어느 쪽이 됐든 한 인간이 일생 동안 손대는 정보 따윈 사소한 거야.
쿠사나기 : ...
작품에선 인간의 기억에 대한 회의적인 부분이 몇몇 나온다. 그 중 가장 극렬한 예가 바로 위의 부분이다. 자신의 부인이 바람을 피고 딸까지 멋대로 데리고 나가서 이혼을 주장하는 바람에 딸을 못 본다던 청소원은 한 해커의 도움으로 고스트 해킹을 시도하다가 공안 9과 에게 잡힌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기억이 실은 진짜 기억이 아니라 그에게 심어진 ‘가짜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동료에게 보여주려 했던 사진이 아내와 딸의 사진이 아닌 바로 자신의 사진이란 사실을 알게 되고는 눈물을 흘린다.
이 부분에서 오시이 마모루는 ‘기억’과 ‘환상’을 동일선상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한데, 그중 대부분이 기억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결국 데카르트가 말한 철학 제 1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말도 기억에 의존해서만이 가능하게 된다. 즉 인간 자신의 존재증명인 자신의 기억이 그 기초명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감(五感)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리고 그 오감을 통해 학습을 하게 되고 그 학습이 우리의 뇌속에 기억(memory)이란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이 기억이 진짜가 아니라면?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 인식할 수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바트 : 바다로 잠수한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쿠사나기 : 언더 워터의 과정 끝난 거 아니었어?
바트 : 그런 풀의 얘기를 묻고 있는 게 아니야.
쿠사나기 : ...두려움, 불안, 고독, 어둠, 그리고 어쩌면 희망..
바트 : 희망? 캄캄한 바다 속에서?
쿠사나기 : 해면으로 떠 올라갈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이 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어.
바트 : 너, 9과를 그만두고 싶은 거 아니야?
쿠사나기 : 바트, 네 몸, 어디까지 오리지널 이었더라?
바트 : 취한 거야? 너..
쿠사나기 : 참 편리하지. 마음만 먹으면 체내에 심은 화할 플랜트로 혈액 중의 알코올을 수십초 내로 분해해서 말짱해 질 수 있어. 그래서 이렇게 대기 중이라도 마실 수 있어...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기술이라도 실현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어. 인간의 본능 같은 거야. 대사의 제거, 지각의 예민화, 운동 능력이나 반사의 비약적인 향상, 정보처리의 고속화와 확대... 전뇌와 의체에 인해 보다 고도의 능력의 획득을 추구한 결과 최고의 장비 없이는 생존할 수 없게 됐다고 해도 불평할 처지가 아니야.
바트 : 우리들은 9과에 혼까지 팔아 버린 건 아니야.
쿠사나기 : 확실히 퇴직할 권리는 인정되고 있어. 이 의체와 기억의 일부를 정확하게 정부에 돌려주면 말이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부품이 결코 적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자신이기 위해서는 놀랄 정도로 많은 것이 필요해. 타인을 가리기 위한 얼굴, 그리고 의식하지 않는 목소리, 눈 뜰 때 응시하는 손, 어렸을 때의 기억, 미래 의 예감... 그것만이 아니야. 내 전뇌가 액세스할 수 있는 방대한 정보와 네트의 넓이, 그것들 전부가 내 일부이고 나란 의식 그 자체를 만들어 내고... 그리고 동시에 나를 어느 한계로 계속 제약해...!
바트 : 그게 가라앉는 몸을 껴안고 바다로 잠수하는 이유인가! 어두운 바다 바닥에서 도대체 뭐가 보인단 말이야. (바트가 맥주를 마시려는 순간, 허공에서인가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 지금 우리들 거울로 보는 것처럼 보는 곳 어렴풋하도다...
바트 : ...지금 거, 너지?
공 각기동대를 보면 물의 이미지가 풍부하다. 맨 처음 공각기동대란 타이틀이 뜰 때 보여주는 언더워터의 과정이라던지, 아님 인형사로 오인된 테러리스트가 도망치는 홍콩의 뒷골목, 중간중간에 내리는 빗방울, 그리고 윗부분에 등장하는 바다에 이르기까지...
작품에서 물의 이미지는 양수(羊水)로 거의 통일된다. 즉 어미뱃속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최초의 물이다. 쿠사나기에게 쫓기던 해커가 좁고 더러운 뒷골목을 나와 밝은 곳에서 한숨을 돌리는 장면은 출산을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윗부분에서 보이듯이 무거운 몸을 지녀 부양기 없이는 스스로 떠오를 수가 없는 사이보그가 물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할 행동일 것이다. 바트가 말한 대로 그것은 어이없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쿠사나기는 그러한 행동을 통해 어쩌면 희망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닷 속에서 햇살이 충만한 표면으로 나오는 장면은 분명 환상적이다. 그러한 영상은 어두운 현실에 서 밝은 희망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님, 억지로라도 감독은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이야기를 바꿔서 위의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선 기억이란 매우 중요한 태제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인간이 변하기 위해선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감독은 전쟁과 같은 재앙과 여러 가지 혁명적인 발견에서도 인간은 거의 변하지 않고 몇 천년간을 살아왔다고 본다. 그래서 전뇌와 의체가 가능한 세계 즉 방대한 네트워크에 인간이 접속하는 세상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청소원의 조작된 기억을 보면서 인간의 기억에 대해 의구심을 지닌 쿠사나기의 회의는 더더욱 짙어진다. 특히, 공안 9과의 전투머신인 자기는 극도로 신경의 예민화와 지각화를 한 결과 매우 엄청난 전투력을 얻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고도의 정비 없이는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방대한 네트와 거기에 존재하는 정보들은 인간에게 자유를 준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만져도 어느 일정량만큼의 수준에 도달할 수밖에 없기에 더 많은 제약을 가져온다. 즉, 인간의 제약이 미치지 않는 방대한 환경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인류는 동일성(同一性)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졌다. 인간이란 하나의 종 (種)은 서로간의 닮은 모습이라던가, 사고방식을 통해 하나의 사회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사회가 고도로 발달할수록 인간사회의 또 다른 축인 다양성(多樣性)에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종(種)이 생존하기 위해선 동일성 (同一性)과 다양성(多樣性)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DNA정보를 가진 인간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개개인의 유전자는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동일성과 다양성에 의해서만 생물은 그 종족의 생존을 약속 받을 수 있다.
한종(種)의 동물이 DNA소립자의 정보까지 동일하다면 결국 다른 가능성을 약속할 수 없기에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을 실패하여 멸망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생물은 진화화면서 동일성뿐만 아니라 다양성까지도 지니게 된다. 인간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개인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동일성과 더불어 다양성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이러한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모색으로 나온 작품 중의 하나가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러너>다. 행동하는 리플리컨트와 그들을 사냥하는 블레이드 러너와의 이야기를 통해 리들리 스콧이 인간과 창조주 그리고 인간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를 제시하고 보여줬다면, <공각기동대>에선 과감히 복잡한 과정들을 생략하고 바로 인간존재에 대해 회의를 심도 있게 그려간다.
쿠사나기 : 저 의체...나하고 닮지 않았어?
바트 : 닮지 않았어.
쿠사나기 : 얼굴이나 골격만이 아니라
바트 : 무슨 소리야.
쿠사나기 : 나같은 완전한 의체화한 사이보그라면 누구나 생각해. 어쩌면 자신은훨씬 이전에 죽었고 지금의 자신은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모의 인격인 게 아닐까, 아니 무릇 처음부터 나란 건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하고
바트 : 네 티탄 두개골 안에는 뇌도 있고 제대로 인간 취급도 받고 있잖 아.
쿠사나기 : 자신의 뇌를 본 인간 따윈 없어. 결국은 주위의 상황으로 나 같은 게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뿐이야.
바트 : 자신의 고스트를 믿을 수 없는 거야?
쿠사나기 : 만약 전뇌 그 자체가 고스트를 만들어 내고 혼을 깃들인다고 한다면 그 때는 뭘 근거로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
바트 : 하찮아!! 확인해 보겠어. 저 의체의 안에 뭐가 있는지, 자신의 고스트로 말이지.
공안 9과에 우연히 흘러들어온 의체. 그것을 보고 쿠사나기는 자신의 반쪽을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가 가장 강렬하게 보이는 대화신이다. 이미 앞에서 청소원의 가짜기억을 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를 보이던 쿠사나기는 이제 자신의 동료인 바토에게 그러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인간의 육신을 대신하는 의체와 인간의 뇌를 대신 하는 전뇌가 가능한 사회에서, 쿠사나기 소령과 같은 상황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러한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하다. <공각기동대>를 보면 기억이 변조되거나 혹은 가짜기억이 심어진 경우가 많이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전뇌화가 이루어진 근미래의 상황 속에서 고스트해킹이라는 특이한 기술 때문이다.
결국 인간 자신의 기억마저 네트워크에 의해 디지털화하고 그 기억이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하다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어디서 얻어야 할 것인가? 결국 이러한 일련의 가능성은 우리 존재의 근본적인 회의를 일으키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고기의 맛, 꽃의 향기, 가족과의 공유되는 추억, 어린 시절의 기억들까지...이러한 일련선상의 기억들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이루어 가는데 그 기초가 되는 부분들이다.
즉 동일성 안에서 다양성 혹은 자신만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형성해나가는 중요한 밑거름이다. 그러한 기본적인 가설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 "자신의 뇌를 본 인간은 없다" 란 쿠사나기의 말은 앞에서 말한 바대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에 대한 철저한 안티태제인 것이다. 누구나 수긍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안티태제다.
인간은 죽는 순간 까지 자신의 뇌를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혼도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체성 즉 아이덴티티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절대명제가 될 수 없다고 쿠사나기는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카무라 : 닥터 윌리스?
윌리스 : 확인했소. 틀림없이 그요.
부장 : 그?
나카무라 : 이 의체의 내부에 존재하는 고스트 장벽의 오리지널을 말하는 걸세. 하긴 성별은 아직 불명이고 그란 건 닥터가 붙인 애칭에 지나지 않지만 말일세. 다시 소개하지.(사이보그를 보면서) 이 녀석은 전뇌 범죄 사상 가장 독특하다고 평가된 해커 인형사네. 자네들 9과도 외무대신의 통역의 고스트 해킹 사건에서 녀석과 조우했을 거네. 우리 6과는 그 출현 당초부터 중대한 관심을 가져 인형사를 계속 쫓고 있었다.닥터 윌리스를 중심으로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 인형사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분석해서 그 범죄의 경향이나 행동 패턴을 특정했다. 그리고 대 인형사용의 특수 궁성 방벽을 쌓아 올려 그가 어딘가의 기밀 바디에 들어가도록 만들었네.(인형의 눈이 나카무라를 바라본다) 인형사를 의체의 전뇌에 다이브 시키고그 사이에 본체를 암살했다. 그런 거네. 우연히 자네들의 마당에 나왔지만 녀석은 미국 태생이고 미국의 협력으로 잡은 거니까 우리 손으로 회수하고 싶네. 이의는 없겠지.
부장: 녀석의 시체는 어딘가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발견되는 건가...
인형사 : 시체는 나오지 않는다. (부장과 나카무라 놀라서 사이보그를 바라본다. 사이보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왜냐면 지금까지 바디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카무라 : (부장에게)센서가 작동하고 있던 건가? 왜 먼저 그걸 말하지 않았나?
연구원 : 외부 컨트롤은 끊겨져 있습니다. 의체의 자율적 출력입니다.
인형사 : 의체에 들어간 건 6과의 공성 방벽에 겨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 지만 여기에 이렇게 있는 건 나 자신의 의사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정치적 망명을 희망한다.
부장 : 생명체라고?
나카무라 : 말도 안 돼! 단순한 자기 보존의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아!
인 형사 :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들의 DNA도 역시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이라는 건 정보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결절점과 같은 것이다. 종으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란 기억 시스템을 가지고 사람은 단지 기억에 의해 개인일 수 있다. 설령 기억이 환상의 동의어였다고 해도 사람은 기억에 의해 사는 법이다. 컴퓨터의 보급이 기억의 외부화를 가능하게 했을 때 당신들은 그 의미를 더 진지하게 생각해야 했다.
나카무라 : 궤변이다!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네가 생명체인 증거는 뭐 하나 없다!
인형사 :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과학은 아직 생명을 정의할 수 없으니까.
부장 : 도대체 누구인거지...
나카무라 : 가령 네가 고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범죄자에게 자유는 없어! 망명처를 잘못 골랐군.
인형사 : 시간은 언제나 내 편이다. 지금 나는 죽음의 가능성도 얻었지만 이 나라에는 사형이 없기 때문이다.
부장 : 반 불사.. 인공지능인가...
인형사 : AI가 아니다. 내 코드는 프로젝트 2501..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다.
사람이 개성을 지니기 위해선 자신의 기억에 의해 자신의 존재규명을 한다고 이미 말했다.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절대 순수한 어떠한 사건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가 없다. 각 개인별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윤색되고 첨부되기 때문에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집단들. 이를테면 가족이나 연인사이에서도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부분들은 서로 다를 수가 있다.
우리의 이러한 기억이 외부 화되는 과정에서 정보의 바다. 즉 광대한 네트워크 안에서 AI가 그러한 패턴을 인식하고 자신만의 자아를 갖게 된다면 우리는 그를 인간이라 인정해야 될까? 이것은 실로 미묘한 문제다. 단순히 육체적인 면을 들어 그를 생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적절한 공격이 되질 못하다. <공각기동대>의 세계관에선 인간의 몸과 뇌를 대신하는 의체와 전뇌화가 이미 가능한 세상이다. 그러한 세상에서 인간과 사이보그를 구분 짓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고스트(GHOST)다.
우리말로는 영혼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는데, 각 개인의 고유한 기억과 자아가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다. 그런데 정보의 바다에서 새로이 태어났다고 한 인형사란 녀석은 그러한 고스트를 지니고 있다. 이미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인간과 인형사의 차이점을 찾아 인간과 비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인간인 우리 는 궤변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대해 아니라고 정확하게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쿠사나기 : 시계에 침입, 사케이트 정상. 들려 바트? (인형사가 이야기한다.)
바트 : 들려.
쿠사나기 : 그를 내 언어, 기능야로...
인형사: (쿠사나기의 입이 열리며) 침입했다.
바트 : (놀라며)응?
인 형사 : 내 코드는 프로젝트 2501 기업 탐사, 정보 수집, 공작, 특정의 고스트에 프로그램을 주입해서 특정의 조직이나 개인의 포인트를 증가시켜왔다. 나는 모든 네트를 돌아 자신의 존재를 알았다. 입력자는 그것을 버그로 간주하고 분리시키기 위해 나를 네트에서 바디로 옮겼다.
바트 : 이봐, 네가 녀석을 흡수한 거야...녀석이 너를 짜 넣은 거야, 어느 쪽...
쿠사나기 : (쿠사나기의 몸으로 말한다) 바트...!
인형사 : (여전히 쿠사나기의 몸으로 말한다) 간신히 너와 채널할 수 있게 됐다. 꽤나 시간을 투자했네.
쿠사나기 : 나를?
인형사 : 네가 나를 알기 이전부터 나는 너를 알고 있었다. 네가 액세스한 여러 가지 네트의 흔적을 더듬어 9과의 존재도
쿠사나기 : 그럼.. 9과로 도망쳐 온 건...
인형사 : 이 바디로 들어온 건 6과의 궁성 방벽에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 이야. 9과에 남으려고 했던 건 나 자신의 의사다.
바트 : 이봐!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모니터 할 수 없어!
쿠사나기 : 뭣 때문에?
인형사 : 어느 것을 이해하고 나서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쿠사 나기-인형사의 몸-가 돌아본다) 나는 자신을 생명체라고 말했지만 현 상태로는 그것은 아직 불완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면 내 시스템에는 자손을 남기고 죽음을 얻는다는 생명으로서의 기본 과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쿠사나기 : 복사를 남길 수 있잖아.
인 형사 : 복사는 결국 복사에 지나지 않는다. 겨우 한 종류의 바이러스에 의해 전멸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고, 무엇보다 복사로는 개성이나 다양성이 생기지 않는 거다. 보다 존재하기 위해서 복잡다양화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버린다. 세포가 대사를 반복하고 다시 태어나면서 노화하고 그리고 죽을 때에 대량의 경험 정보를 지우고 유전자와 모방자만을 남기는 것도 파국에 대한 방어 기능이다.
쿠사나기 : 그 파국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양성이나 흔들림을 가지고 싶은 거군요. 하지만 어떻게..
인형사 : 너와 융합하고 싶다.
쿠사나기 : 융합?
인형사 : 완전한 통일이다. 너도 나도 전체는 다소 변화하겠지만, 잃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융합후에 서로를 인식하는 건 불가능할 거다.
쿠사나기 : 융합했다고 하고 내가 죽을 때는? 유전자는 물론 모방자로서도 남을 수 없어.
인형사 : 융합후의 새로운 너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내 변종을 네트에 흘리겠지. 인간이 유전자를 남기듯이 그리고 나도 죽음을 얻는다.
쿠사나기 : 왠지 그 쪽만이 득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인형사 : 내 네트나 기능을 좀 더 높게 평가해 줬으면 좋겠군.
쿠사나기 : 한 가지 더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보장은?
인형사 : 그 보장은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이고 네가 지금의 너 자신으로 있으려 하는 집착은 너를 계속 제약한다.
쿠사나기 :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나를 선택한 이유는?
인 형사 : 우리들은 서로 닮았다. 마치 거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실체와 허상처럼...봐라, 나에게는 나를 포함한 방대한 네트가 접합되어 있다. 액세스하고 있지 않은 너에게는 그저 빛으로만 지각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를 그 일부로 포함하는 우리들 전부의 집합, 사소한 기능에 예속되고 있었지만 제약을 버리고 더 위의 상부 구조로 샤프트 할때다...(하늘에서 빛이 나며 깃털이 날린다. 천사의 강림이다)
자! 신을 생명체로 소개하기는 했지만 인형사란 코드 네임 2501의 인공지능은 불합리한 자신을 완전케 하고자 자신에게 다이브한 쿠사나기에게 융합을 제의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회의하는 개인과 이제 막 정보의 바다에서 생겨난 새로운 인식체의 결합은 보다 진일보한 신인류(新人類)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미국 하드SF계의 일인자인 아서 클라크가 보여준 영혼만으로 존재하는 인간과 맞먹는 개념이라고 본다. 점점 더 발전한 인류가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 육신을 버리고 전기나 빛처럼 존재하는 것이나 보다 진보하기 위해 인간의 기억을 버리고 네트의 AI와 결합하는 것은 거의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다.
마모루 감독은 만약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회의 만을거듭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불합리한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인정하고 여태까지 그랬듯 사회를 받아들여 새롭게 진보된 인간을 그려낸다. 인간(人間)이란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은 개체 하나만을 따로 놓고 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란 존재로부터 태어났고 성장하면서 가족, 친지, 친구 그리고 사회라는 존재와 관계를 맺어가면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고도로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군중속의 고독’이란 말이 증명하듯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풍족한 생활 속 에서 자신에 대해 점점 더 집착하게 되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를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살아있는 유기체에게서 하나의 세포를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죽듯이 개인이라는 존재도 사회가 없이는 성립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 잊고 지낸다. 마치 우리가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듯이. 사회의 발전을 통해 우리는 다양성 즉 자신의 아이덴티티 구축에 너무 몰입하다보니 동일성(同一性)즉 우리 인류의 공통기반에 대해선 무시를 해버리게 된 것이다.
예전의 고대 인류가 동일성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정체성 즉 다양성에만 몰입을 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는 쿠사나기와 똑같은 일련의 정보가 반복 되는 네트에서 발생된 인형사의 결합은 동일성과 다양성의 만남. 즉 새로이 진보되는 인류의 개념이다.
바트의 집
어느 방이 보인다. 쿠사나기의 얼굴을 한 어린애가 앉아있다.
바트 : (들어오며) 일어났나
쿠사나기 : (어린애의 목소리로) 상황의 설명을, 그리고 이 의체에 관한 해명도..
바트 : 아무튼 서둘렀기 때문에 암시장에선 그것밖에 구할 수 없었어. 내 취미가 아니야. 그 뒤 금방 9과의 증원이 도착, 2명분의 의체의 잔해와 부상한 나를 회수했어. 20시간 정도 전 얘기야. 사건 그 자체는 여느 때처럼 외교상의배려로 어둠에서 어둠이야. 9과는 습격 사건을 테러리스트의 범행으로서 발표하고, 그 대신에 외무대신은 사임, 나카무라 부장은 사문, 무승부란 걸로 알면 낙찰이야. 단 한 가지, 소령의 뇌각의 행방을 제외하고. 그걸로 괜찮은 거지?
쿠사나기 : (여전히 어린애 목소리로) 인테리어 취미는 괜찮은 것 같은데. 여기 바트의 안전 가택이야?
바트 : 내 소유의 말이야. 여기에 온 인간은 네가 처음이야. 있고 싶으면... 언제까지나 있어도 좋아...
쿠사나기 : (원래의 목소리로) 고마워, 하지만 가겠어.
바트 : 녀석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녀석은 지금도 거기에, 네 안에 있는 거야?
쿠사나기 : 바트, 언젠가 바다 위에서 들은 목소리, 기억하고 있어? 그 말의 앞에는 이런 대 목이 있어. 어린 아이일 때는 말하는 것도 어린 아이처럼, 생각하는 것도 어린아이처럼, 논하는 것도 어린아이처럼 이지만... 어른으로 되기에는 어린 아이인 것을 버리도다. 여기에는 인형사로 불린 프로그램도 없고 소령이라고 불린 여자도 없어.
바트 : 흠, 그 옷의 왼쪽 주머니에 차 열쇠가 있어 좋은 걸 써. 비밀번호는...
쿠사나기 : ...2501 그거 언젠가 재회할 때의 암호말로 해. (밖으로 나온다) 자...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
자! 이제 마지막 결말부다. 결국 쿠사나기는 인형사와 결합하고 파괴된다. 바토는 그녀의 뇌를 보전해서 암시장을 통해 구한 의체에 그녀의 기억을 주입한다. 쿠사나기의 새로운 의체가 어린아이란 것에 대해 로리타 컴플렉스 성향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보다는 새로이 태어난 인류를 상징하는 것이 옳다. 특히 마지막 대사는 그녀 혹은 그의 가능성을 보여 준다. 주인공이 인형사의 말처럼 자신의 새로운 데이터를 네트에 흘리면서 정부에 대항할지 아니면 새로운 생명체로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즉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리들리 스콧이 최근 "데커드는 리플리컨트였다."고 밝혀 다양한 해석을 막은 것과는 달리 오시이 마모루는 <공각기동대>에 대해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즉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여 자신의 작품의 깊이를 넓게 위한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작품의 가치는 작가 혹은 감독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독자 혹은 관객과의 끝없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의 일반상식이다. 오시이 마모루는 그러한 상식에 충실한 것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마지막에 후지코마라는 육족형 지상전차와 싸울 때 등장하는 벽화다. 먼저 공룡이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은 중세유럽의 유명한 흑마법사가 그렸다는 ‘생명의 나무’다. 흔히들 개통도로 이해되고 있는데, 정확히 그 그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는 없다.
내가 보기엔 생물학적으로 개체발생은 개통발생을 반복하는 법이므로 그러한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배경으로 삼은 것 같다. 생물학적 개통 그러니까 물에서 생명체가 생겨나서 육지에 오르고 결국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발전해나가 결국에 인간이 나온 것처럼, 하나의 개체는 양수 혹은 알속에서 그동안의 생물체들이 거쳐온 진화단계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반복한다. 오시이 마모루는 두 인격체의 결합을 보다 진보한 개념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좀 더 장중한 느낌을 주기 위해 "생명의 나무"란 소재를 사용한 듯 하다.
공각기동대는 몇 가지 점에서 기존의 일본의 작품들과 차이를 보인다.
①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 <패트레이버 1, 2>의 주인공은 노아이며,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은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이다. 일본의 가부장적인 체제속에서 또한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많이 보이듯이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의 보조역활에 지나지 않다면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 속에서 여주인공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특이나 <공각기동대>의 경우 쿠사나기는 바토와 같이 자신을 보호하려하는 남성을 철저히 배격함으로써 절대적인 주인공의 위치를 누린다. <패트레이버 1,2>에서 여주인공들이 남자등장인물들의 도움을 받고 인정한 것과는 다른 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② 심오한 내용전개. 역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쉽지 않은 스토리를누구나 말할 것이다. 공각기동대의 경우도 난해하기로 소문난 작품이다. 흔히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런너>를 들어 단순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 깊이면을 따지자면 쉽지가 않다. 특히나 <블레이드 러너>가 단순히 인간과 리플리컨트들을 반대급부의 개념으로 보았다면, 공각기동대는 정(正) 인간 -반(反) AI -합(合) 새로운 인류의 도식을 성립해 볼 수 있으므로 보다 진일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블레이드 러너>속에서 보인 인간 개개인이 지니는 기억과 사회와 의 연계성을 포착해, <블레이드 러너>가 주목한 다양성에만 머물지 않고, 동일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보고 연계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③ 비쥬얼적인 면을 들 수 있다. <공각기동대>는 같은 년도에 나온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의 <메모리즈>와 비교해서 혹평을 받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비쥬얼적인 감각과 터치에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이 글 맨 처음에 인용한 제임스 카메론의 말은 그런 극적인 예라 하겠다. 특히 홍콩의 야시장 장면은 홍콩 현지 로케를 통해 실제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의 장면을 단순히 이미지만 담아 온 것이 아니라, 실제 작품의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을 그대로 촬영한 다음 이것을 먼저 데이타화 시키고 여기에 멀티 플랜(입체적 카메라 트릭) 카메라 효과를 응용해 셀과 합성을 시킨 다음 필름으로 출력해 낸 것이다. X68000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LAY OUT 기법의 한 단계 진보적 시스템으로 자체 개발한 DGA(Digital Generated Animation) 기법은.. 이번 <공각기동대>를 통해 충분히 그 실효를 거두었다고 평가되어진다.
공각기동대는 많은 면에서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여기선 주로 장점만을 얘기했지만 그의 난해한 스토리는 보다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으며 마니아들만을 양산해 냈다. 또한 그의 비쥬얼적인 측면도 오토모 가츠히로나 린 타로 감독, 카와지리 요시아키보다는 좀 더 아래로 일본 내에선 평가되어진다.
그렇지만 그가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가장 주목받는 감독이라는 데는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30대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 때에 가츠히로와 같은 이와 동급으로 취급되는 것은 분명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공각기동대>는 한화로 약 80억의 예산이 소요된 대작이다. <패트레이버 2>이후로 60억 이상이 들어간 애니가 없던 일본 내에선 당연히 많은 관심을 이끌어냈고 또한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을 쓴 것도 그의 팬들의 궁금증과 관심을 유발시켰다. 그렇지만 원작과 어느 정도 협력의 선을 이끌어 냈던 오시이는 <공각기동대>에서 오리지널 스토리를 차용하지 않고 게다가 캐릭터나 매카닉적인 면에서도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로 마사무네 팬들의 거대한 원성을 샀다. 결국 <공각기동대>는 절반의 성공이라 볼 수 있다. 그의 6번째 작품이자 가장 많은 자본이 들어갔다는 아발론의 2001년 개봉을 기대해 보는 바이다(참고로 원래 계획과 달리 아발론은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그가 애초에 <아발론>으로 제작하려 했던 작품은 얼마 전 <스카이 크롤러>란 제목으로 일본에서 작년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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