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오페라는 보다 쉽고 재밌고 저렴해져야 한다!

朱雀 2011. 1.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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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저녁 8시. 시청역 근처에 위치한 한화손보 세실극장을 찾아갔다. 이유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날은 7일부터 정기공연이 시작되는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시사회로 블로거와 언론 관계자들을 초청한 자리였다. 덕분에 마음껏 공연내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물론 이런 마음은 얼마 못가서 공연내내 찰칵 거리는 소리 때문에 짜증으로 바뀌지만).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프랑스의 극작가 보라르세의 희극을 스테르비니가 이태리어로 대본을 쓰고, 로시니가 곡을 쓴 오페라로, 이태리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내용은 17세기 스페인 세빌리아를 배경으로, 알마비바 백작이 우연히 무도회장에서 한번 로지나에게 반해 그녀의 창문앞에서 한달내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지만 열리지 않아 괴로워 한다. 이때 해결사 휘가로를 만나, 로지나가 사실은 재산관리인인 바르톨로에 의해 사실상 감금된 상태란 사실을 알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온갖 방해와 어려움을 이기고 결국 로지나와 결혼하게 된다.

 

워낙 유명한 오페라인 탓에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이번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몇 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우선 이태리어가 아닌 전곡을 우리말로 부른다는 사실이다.

 

박경일 연출가가 이야기 했지만, 이태리 원곡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부른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어순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번역만으론 ‘맛’을 살리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12년간 (오페라만) 무려 700회의 공연을 해오며 계속된 실험을 해온 OTM 컴퍼니는 그 맛을 살리는 데 꽤 성공한 듯 싶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박경일 연출가. 전곡 우리말을 고집한 그의 집념과 노력 무엇보다 오페라에 대한 통념을 깨기 위한 노고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물론 <세빌리아의 이발사>은 우리말로 전곡을 부르기 때문에, (원곡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도 ‘뭔가 어색하다’라는 인상을 받을 때가 아주 가끔 있긴 했다. 중간에 여주인공인 로지나가 아리아를 이태리어로 잠시 부르는 딱 한 장면이 있는데, 이전까지와는 달리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역시 원어가 자연스럽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곡으로 부르게 되면, 여러 번 본 관객이 아닌 이상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 연출가도 지적했지만 즐거워야 할 관람이 ‘공부’해야 되는 고문으로 바뀌게 된다.

 


바르톨로 박사역의 이재포. 코미디언 출신답게 코믹한 몸짓과 연기로 관객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따라서 과감하게 우리말로 바꾼 공연은 듣는 순간 바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막을 보거나, 해설이 필요 없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특히 바르톨로역으로 출연한 이재포의 이름을 따서 ‘이제 그만 포기하시지’라고 말장난을 하거나, 최근 유행어를 적절히 가미하는 센스 덕분에 관객들은 더욱 쉽게 오페라에 빠져들었다.-모두들 공연내내 박장대소를 하며 즐겁게 관람했다-

 

개인적으로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은 티켓 가격이었다. 바로 전석이 5만원이란 점이다(물론 할인도 된다). 국내에 소개된 오페라, 뮤지컬 등의 티켓가격은 보통 제일 싼 좌석은 4만원부터 시작해서 제일 비싼 R석이나 VIP석은 10만원을 넘어 20만원에 육박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주로 찾는 관객이 그만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동시에 거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런 공연이 이토록 비싼 것에 대해 무척 분노하고 반대하는 입장이다. 자고로 공연이란 보다 많이 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되도록 저렴한 입장권(1-2만원)도 함께 팔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래도 잘 부르고 표정도 풍부했던 휘가로 역의 배우. 얼굴과 표정이 <개콘>에서 곤잘레스로 활약중인 송중근을 떠올리게 해서 더욱 웃음을 줬다.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접한 조금 어려운 가정의 이들이 훗날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해서 우리의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할 수도 있고, (비록 그렇지 못하더라도) 이들이 평생 살아가는 데 힘이 되거나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문화란 보다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가야 한다는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선진국’이 되고 싶다면,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문화를 보다 많은 이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아직까지 우리 정부의 지원책이 아쉬운 가운데, 이번 <세빌리아의 이발사>처럼 쉽고 재밌으며 경제적 부담이 비교적 적은 오페라가 나온 것에 반가움을 표시하고 싶다.

 

아울러 공연배우와 기획자들은 생활고나 흥행에 대한 걱정 없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마음껏 만들고, 관객은 티켓료에 대한 부담 없이 좋은 공연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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