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우리는 왜 ‘정의’를 시청해야 하는가?

朱雀 2011. 1. 11. 07:00
728x90
반응형



지난 3일부터 EBS에선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사회에 커다란 이슈와 인기를 누린 마이클 샌델 교수의 하버드대 강의를 방송하고 있다. 월-수 자정에 1시간씩 방송된 <정의>는 전국 0.9%, 수도권 1.15%로 평상시의 두 배에 달했다. 이에 각 언론사들은 ‘후끈했다’ ‘열풍’등의 수식어를 쓰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EBS에선 예상이상의 반응과 시청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10일부턴 밤 11시 10분으로 방송시간을 앞당겼다.

 

국내에서만 70만부 이상이 팔리며 열풍을 일으킨 <정의>는 그렇게 브라운관에서도 압도적인 기세를 펼쳐나가고 있다. 이에 필자는 보는 사람마다 방송을 권유했다. 일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는 매우 격렬하게 반대의견을 포명했다. 그들의 의견을 정리하면,

 

“오늘날 우리사회는 <정의>에서 말하는 것보다 낮은 수준의 도덕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 무엇이 옳은 지는 의무교육을 받은 이라면 다 알고 있다. 그들 중 상당수가 그 이론(혹은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기득권이나 기득권 계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정의>를 시청하거나 책을 읽는 단순한 열풍이 아니라, 행동이다.

 

개인적으론 현재 <정의>의 열풍은 ‘유행’과 같다고 본다. 지금의 <정의>에 대한 태도는 마치 패션 아이템을 다루는 듯 하다. ‘정의’는 상품이나 패션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읽혀지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할 ‘선’이지, 급속히 소비될 문화상품이 아니다“

 

위 의견은 매우 타당하고 설득력 있으며,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정의>에 대한 관심과 시청 그리고 화제성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선, 단순히 아는 것과 제대로 아는 것은 다르다고 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행동을 하는 것은 자칫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지난 5일에 방송되었던 일부 내용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자유지상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자유지상주의는 말 그대로, 개개인의 권리를 가장 중요시하기에, 결국엔 국가가 할 일에 대한 의문에까지 이른다.

 

하여, 위 캡처한 이미지처럼 ‘안전띠 매기’처럼 온정주의 법률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분명 안전띠를 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개개인의 선택이지 국가가 강압적으로 행동을 취할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동성애를 반대’한 도덕법에 대해선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남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반대되며, ‘부의 재분배’는 개개인이 최선을 다해 번 돈을 국가가 일부러 가져간다는 점에서 ‘강탈’이라고 까지 표현한다.

 

자유지상주의는 오늘날 미국인들의 대표적인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부의 재분배’에 해당하는 세금에 대해선 반대하는 대신, 개개인이 엄청난 기부를 하는 것엔 이런 식의 이유가 있다. 근데 이런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맞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수상이 주장한 이래, 전 세계를 휩쓸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경제주의인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바탕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유지상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해고와 감원을 기업에 필요에 따라 편리하게), 기업 활동에 최소한의 규제를 두는 작은 정부, 공기업 사유화, 의료 사유화 등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과적으로 소득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1990-2000년 사이에 미국의 소득불평등도는 우루과이와 베네수엘라와 맞먹을 정도가 되었다(상위 1%가 차지하는 부의 비중이 10%가 넘어버렸다)-출처: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그뿐인가? 의료가 사유화되면서, 응급환자는 과중한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쿠바와 미국의 의료체계를 비교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IMF이후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는가? 아래 뉴스를 보자.

 

 

 자산 상위 10%가 전체 자산 절반 보유

우리나라의 자산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하위 50%가 가진 자산은 10%도 안됐습니다...

 출처 : YTN


 

 

현재 우리 사회의 부는 남미 경제권과 비교해도 좋을 정도로 몹시 심각한 불균형 상태다. 이런 사회가 옳은 것일까? 남미에선 너무나 심한 불균형 때문에, 브라질 등에선 부자들이 사는 곳은 바리케이트와 중무장한 경호원들이 뒤따른다. 그러나 그들을 (납치하려는) 수 많은 시도들이 이어지고 결국엔 납치당한 이들이 몸값을 주고 풀어주는 것이 공공연한 비즈니스가 되어버렸다.

 

결국 엄청난 부의 불균형은 부자에게도 가난한 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자유지상주의는 얼핏 들으면, 개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듣기에는 매우 좋다. 그러나 이 논리가 확장되면 국가의 존재와 ‘복지’등을 무시해서 결국 불평등하고 혼란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린 <정의>를 시청(혹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자유지상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을 직시하고 보다 나은 철학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요구받는다.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유래한 ‘시민’이란 말은, 단순히 ‘서울시’의 시민이기 때문에 시민인 것이 아니다. 국가에서 행해지는 모든 정책과 사항에 대해 열린 눈과 귀로 바라보며,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은 여러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공직자들의 잘못에 대해 서슴없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정의> 열풍은 분명히 과열되어 있고, 애초의 취지와는 분명히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의>를 시청하면서, 우린 미국을 비롯해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철학적 근거가 무엇이고, 애초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비록 처음에는 잘 모르고 보던 이들도 시청을 하면서 의문을 가지고 우리 생활에서 잘못된 예를 찾아가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케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필자는 <정의>를 보다 많은 이들이 시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거기선 비록 연약하고 어설퍼도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작은 싹이나마 돋아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참고로 <정의>는 매주 월,화,수 밤 11시 10분에 EBS에서 방송되며, 총 12화로 진행될 예정이다. 방송후 DVD출시와 재방송이 예정되어 있단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