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김선아표 연기에 열광하는 이유, ‘여인의 향기’

朱雀 2011. 8. 1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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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눈여겨보는 드라마 가운데 <여인의 향기>가 있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게 된 이유는 순전히 김선아때문이다! <점프>에서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만 이렇게 오래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시 초짜였던 김선아는 그저 예쁜 연기자 중에 한명이였고, 연기에 있어서도 무색무취에 가까웠다. 그러나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면서 내가 김선아를 잘 못 보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허나 그건 유쾌한 경험이었다. 김선아표 연기는 아마도 그때 집대성 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김선아표 연기는 이미 <몽정기> <S 다이어리> <잠복근무> 등에서 열심히 채화중이었다. 그러나 대중에게 그녀의 존재감을 완벽하게 심어주기엔 뭔가 2% 부족했다.

 

근데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대한민국 여성들은 김삼순표 연기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빼빼마른 여배우들이 브라운관을 점령한 시기에, 거의 뚱뚱해 보일 정도의 몸매를 가지고 나타났다. 30대초 여성의 일과 사랑에 대해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주어 진정성을 느끼게 해줬다.

 

다른 여배우들이 얼굴이나 몸매를 더욱 예쁘게 카메라에 비추기 위해 고민할 시기에, 그녀는 기꺼이 울어서 마스카라 번져 흉해지거나, 술에 떡이 되어 아침에 일어날 때 부스스한 머리가 된 모습을 기꺼이 보여주었다. -다들 아침에 일어나도 미스코리아 화장과 머리를 선보이던 그 시기에 말이다. 지금도 자주 그렇고- 그런 용감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인물은 김선아 정도였다.

 

<여인의 향기>는 그런 김선아표 연기의 연장선에 있다. 누군가는 14kg이나 뺀 김선아를 보며 당신도 결국은 똑같군요라고 말할 수 있다.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김선아가 살을 뺀 것은 당남암에 걸려 6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을 보다 실감나게 연출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녀는 결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살을 뺀 것이 아니라,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극중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혹독한 다이어트를 한 것이다.

 

<여인의 향기>는 초반에 불안했다. 이연재가 꼬셔야 하는 강지욱(이동욱)은 매사에 대충대충인데, 30대 노처녀가 꼬시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가 돈과 외모가 아닌 다른 매력이 드러나질 못했다. 게다가 자신의 병을 안 연재가 우연히 떠난 오끼나와 여행지에서 우연한 사건으로 함께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부분은 오끼나와 관광홍보이상의 느낌을 주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끼나와 관광을 함께한 이연재에게 호감을 느끼기에도 사건이 상당이 부족했다.

 

그러나 필자는 김선아를 믿었다. 5~6화에서 김선아의 매력은 그야말로 폭발했다. 그녀는 오끼나와에서 우연히 추게 된 탱고의 매력 때문에 탱고를 배우면서, 자신이 놓고 내린 핸드폰 때문에 탱고학원에 강습하게 된 강지욱과 함께 기본 스텝을 밟으면서 두근두근 거리는 여인의 마음을 너무나 애잔하고 판타스틱하게 표현했다.

 

자신을 10년동안 괴롭힌 상사를 망신주기 위해 엉덩이로 글씨를 쓰게 하는 귀여운 복수를 감행하면서, ‘그 이상을 왜 하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어르이신데...’라는 짧은 답변으로 반전을 주었다.

 

같이 탱고를 춘 이들과 함께 한 뒷풀이 자리에서 돈이 부족해서, ‘본부장님이 쏘시기로 했어요라고 말해 강지욱이 계산하게 만들고, 갑작스런 마음에 변화로 갑자기 한강공원 풀장에 뛰어들어가서 강지욱과 물장난 장면을 연출해내는 부분은 실로 난데 없었다’. 그러나 김선아표 연기는 그런 난데없는 장면들조차 설득력 있게 만들어낸다.

 

실컷 강지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놓고도 그의 약혼 소식을 듣고는 내가 너 꼬실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내 앞에 나타나지마라고 말도 안되는 일방적인 이별아닌 이별통보(?)를 하곤 사라지더니, 결국 임세경의 3억원짜리 소송 때문에 통장마저 가압류 당하자, 다시금 그를 찾아 약혼녀에게 가압류를 풀어달라고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도무지 심정적으로 뭔가 많이 맞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3억원을 통장으로 입금시켜주는 강지욱의 행동에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은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설득력 있는 연기는 사실성도 중요하지만 진정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진정성 있는 연기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런 미션 임파서블에 감히 도전하자면, 김선아표 연기는 우리가 저 상황에서 저 인물은 저렇게 행동하지 않을까?’라는 패턴을 가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묻어낸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남은 삶 동안 자신이 못해본 것을 해보기 위해 가수와의 팬미팅에 가고, 여행을 떠나고, 난데없이 한밤중에 풀장에 뛰어 들어가고, 예전에는 감히 꿈도 꿔보지 못하는 위치의 남자를 꼬시는 등의 이연재의 버킷리스트는 다분히 진부하고 통속적인 장치다.

 

그뿐인가? 백마 탄 왕자가 별 볼일 없는 노처녀에게 반한다거나, 우연스런 사건들이 겹쳐서 둘 사이가 가까워진다는 설정 역시 너무나 많은 작품에서 쓰인 것들이라 식상하기 쉬운 것들이다.

 

그런 어려운 함정이 곳곳에 도사린 가운데, 김선아는 활발하게 자신의 몫을 120% 이상해낸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씩씩하고 활발하게 행동한다. 철없는 엄마를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 3억원 짜리 소장이 도착했을 때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담당의사인 채은석(엄기준)외엔 아무에게도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않는다.

 

10년 동안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한 한과 남아있는 삶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불안감과 답답함 그리고 슬픔 등이 범벅이 되어 그녀의 브라운관속 모습은 어딘가 항상 슬픈 여운이 남는다. 그렇기에 탱고를 추고 풀장에서 물장난을 치고, 임세경 앞에서 더욱 당당하고자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안쓰럽고 가엽지만 동시에 시청자의 열렬한 지지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녀로 인해 변해가는 채은석과 강지욱의 모습은 상승효과를 일으키며 극의 재미를 높여주고 있다. 25년 전 그녀를 처음보고 내내 짝사랑만 해온 채은석. 그러나 무슨 탓인지 환자를 냉정하게 대하던 철면피가 이제 슬슬 피가 도는 온기의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매사에 흥미없고 재미었던 강지욱은 우연히 오끼나와에서 그녀를 만나고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별 볼일 없는 30대 노처녀에게 의사와 재벌 2세가 동시에 사랑을 느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이연재의 모습은 시청자에겐 엄청난 설득력을 지닌다. 누군가는 김선아의 연기는 지겹다라고 표현한다.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늘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우리가 잘 아는 연기파 배우인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도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가 그들의 연기를 보고 싶은 것은 그들이 그런 연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김선아표 연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그녀가 고민하고 행동하고 울부짖고 때론 상처를 입으면서 얻은 것들이다.

 

남들이 그저 예쁘게 보이고 싶을 때, 그녀는 진솔한 연기를 위해 기꺼이 망가지고 때론 굴렀다. 그런 사랑스런 삼순이표연기를 적어도 필자는 계속해서 보고 싶다. 그리고 그건 많은 이들이 동감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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