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4화를 보며 깜짝 놀랐다. 등장 때부터 ‘그들은 변하지 않아’라는 인상적인 대사를 치던 신류(이서진)는 결국 빙의된 소녀 윤하나(임주은)를 이용해 연쇄살인범 서준희(이규한) 처단하기에 이른다. 자신에게 희생된 영혼이 보이자 놀란 서준희는 결국 자살에 이르고, 이를 지켜본 신류는 만족스러운 듯 악마의 미소를 띠운다.
4화에서 자세히 설명되지만 신류는 어린 시절 여동생과 어머니가 청소년 범죄자들에게 잔인하게 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 덕분에 범죄자에 대해 그는 강한 분노와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자신 앞에 나타난 변호사가 어린 시절 범인 중 한명이란 사실을 알고 주먹을 휘두르지만, 그 외엔 처단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던 그가 결국 자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윤하나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이미 그는 그토록 증오하던 살인마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잠깐! 이런 모습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던가? 살인마들을 뒤쫓다 그들처럼 괴물이 된 사례를 몇 가지 모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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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파일링을 하다 미쳐버린 <맨헌터>의 윌 그레이엄
영화 <맨헌터>는 우리에겐 <히트> <콜래트럴>등으로 익숙한 마이클 만 감독의 1986년 작이다. 이 영화가 각별한 것은 바로 <양들의 침묵>에 나와 전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빠뜨린 스릴러 역사상 최고의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바로 <양들의 침묵>의 전작이자 한니발 렉터 박사가 최초로 등장하는 소설<레드 드래건>의 이 영화의 원작이다!
윌 그레이엄은 FBI수사관으로 복무하다가 한니발 렉터 박사를 잡은 후, 은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범인을 잡기 위해 ‘그들’이 되는데, 렉터 박사를 잡기위해 그가 되었다가 정신 분열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그들의 심리를 알기 위해 심연에 몸을 내던진 그는 자신 안에 끌어오르는 살인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무척이나 애쓴다. 영화 <맨헌터>는 어떻게 그가 한니발 렉터 박사를 잡았는지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서 한니발 렉터 박사는 <양들의 침묵>에서 그랬던 것처럼 윌 그레이엄을 놀리면서 사건에 대한 힌트를 한 개씩 한 개씩 뿌려놓는다. 그러나 영화나 소설을 보면 알겠지만 한니발 렉터 박사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한 사내를 충동질시켜 살인을 저지르게끔 만들고는, FB I수사관을 비롯한 경찰당국을 비웃으며 그러한 상황을 즐기는 것이다.
또한 윌 그레이엄은 범인을 잡는 최후의 순간에 끌어 오르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뛰어들어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이른다. 결국 자기안의 악마를 제어하지 못한 탓이었다.
*<맨헌터>에선 브라이언 콕스가 한니발 렉터로 분한다. 안소니 홉킨스와 다른 그의 연기를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아울러 <양들의 침묵>이후 <레드 드래건>은 '안소니 홉킨스'가 한니발 렉터로 분해 다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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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안에 악마는 내재되어 있는가? <엔젤 하트>의 사립탐정 해리
<엔젤 하트>는 1987년 작이지만, 그 공포와 충격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사립탐정 해리는 어느날 사이퍼란 인물에게 실종된 사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의 의뢰로 시작된 일은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온다. 실종된 사람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예외없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제 해리는 실종된 사람뿐만 아니라 엽기적인 방법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을 잡아야 한다!
<엔젤 하트>는 전성기의 미키 루크와 로버트 드니로의 명연기를 볼 수 있고, 알란 파커 감독의 가히 악마적 연출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젠 익숙하지만 당시만 해도 충격적인 부두교 의식의 재연과 결국 자신의 딸과 동침하고 마는 해리의 모습 등은 지금 봐도 충격과 공포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에 기억을 되찾고 절망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보다 충격적인 반전으로 다가온다. 의뢰인의 이름은 사이퍼는 잘 따져보면 루시퍼를 떠올리게 하며, 사실 루시퍼를 피하기위해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살았던 남성이 자신의 행적을 하나씩 처단한다는 반전은 지금봐도 섬찟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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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복수를 위해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크로우>의 에릭
우리에겐 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의 유작으로 더 익숙한 작품이다. 1994년작이지만 지금 봐도 묵시룩적인 분위기와 끝없는 어둠의 나락을 표현한 작품은 보는 순간 저릿저릿하게 만든다.
록가수 에릭은 자신의 사랑하는 약혼녀와 함께 톱 일행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일년 후 피맺힌 원한으로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그의 영혼을 까마귀가 되살려 복수하게끔 도와준다.
록가수 에릭은 살아있을 때만 해도 천사 같은 약혼녀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죽음에서 부활한 후 그는 삐에로 분장을 하곤 미친 살인마처럼 자신을 죽인 이들을 한명씩 찾아내 잔인한 방법으로 처단한다. 비록 복수를 위해서지만 오직 '복수'를 위해 범인들을 무지비하게 죽인다는 점에서 크로우 역시 '악마'라는 점에선 그들과 동일하다. 영화는 끝까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랑 철학에 철저하다.
그러나 크로우는 예전에 자신이 돌보던 소녀 사라를 만나면서 자신의 슬픈 감정을 드러내고, 상처를 입어도 금방 아무는 몸을 보여주며 괴로워할땐 관객들까지 처연한 슬픔에 빠져든다.
<크로우>가 마음에 드는 것은 모든 복수를 끝마치고 이제 죽을 순간만을 기다리는 에릭에게 약혼녀가 나타나 그를 구원해주기 때문이다. 처참한 복수극을 자행하면서도 마음의 안식을 구하지 못한 그에게, 약혼녀는 구원의 손길로 다가온다.
이 밖에 비록 현실이 되어버린,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역으로 분한 고 히스 레저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엄청난 살인광이자 미친 조커역을 위해 한달이나 호텔방에서 나가지 않으며 역에 몰입했던 그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순간의 착각으로 약물을 잘못 복용해 세상을 떠난 그는 연기를 위해 심연에 들어갔다가 영영 나오지 못해 현대의 신화가 되어버렸다.
예전에 읽은 니체의 문구가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우리를 들여다 본다’ 그것이 우리가 살인마를 쫓다가 결국 똑같은 괴물이 되는 이유를 (아마도) 잘 설명해주는 문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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