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7일 방송된 <선덕여왕>을 보면서 이요원의 연기력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말았다. 그동안 이요원은 남장여장으로 분해 어색한 연기를 선보였다. 어린 시절의 총명함은 어디로 갔는지, 성급하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모습만 보여왔다. 그녀에게서 공주의 ‘그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천명공주의 죽음과 함께 그녀는 변화했다. 그녀의 변화는 알천랑을 위엄으로 굴복시키면서 최절정에 달한다. 천명공주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여긴 알천랑은 낭장결의를 하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진평에게 배후를 밝힐 것을 간한다. 노회한 권모술수의 대가인 미실은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해 왕을 겁박하고 쌍음의 일을 덮을 것을 조건으로 면죄부를 부여받는다.
병부령에게 이런 사실을 대충 건네받은 알천랑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잃고 자결을 하려든다. 이때, 적당히 여장(?)을 한 덕만이 등장한다. 그리곤 자신이 비록 아직 인정받지 못했지만 공주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알천에게 ‘살아라’라는 명을 내린다.
덕만은 또한 자신을 그동안 도와준 비담에게는 ‘친구’로서 부탁한다. 그동안 숨어지내던 동굴에서 나오면서 자꾸만 자신에게 어디를 가는지 묻는 비담에게 서라벌로 갈 것이며, 계림을 차지하겠다고 말한다. 처음엔 허황되다 웃던 비담은 그녀를 돕기 위해 약속한 장소로 가고, 무엄하다며 자신을 꾸짖는 덕만에게 ‘친구가 아니냐?’며 특유의 실실거림으로 응수했다. 결국 덕만은 자기가 말할 때까지 반말을 하라고 요구한다. 아마 천명공주가 그랬듯 만약 자신의 신분회복이 이뤄진다면 편하게 지낼 동무가 그리운 탓일게다.
덕만은 김유신에게 애틋함을 보였다. 함께 멀리 떠날 것을 약속했다가 천명공주의 죽음으로 복수를 꿈꾸게 된 그녀는 김유신에게 명령도 위엄도 세우지 않았다. 그 어떤 길에도 함께 하겠다는 김유신의 고백에 자신이 약해질까봐 걱정된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될까봐.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은 시청자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이요원의 연기력은 그동안 <선덕여왕>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논란거리 중 하나였다. 고현정의 미실이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으며,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는 사뭇 다른 궤적을 그리는 것과 관련한 탓이 컷다. 미실은 그 어떤 남성 캐릭터보다 카리스마적이면서, 남자와 둘이 있을 때는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이중성을 보여줬다. 그것은 기존의 팜프파탈을 넘어서는 새로운 여인상이었다. 여인의 아름다움과 기품 그리고 정을 간직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자식마저 버리는 비정함을 동시에 가진 여성에게 우린 순식간에 매혹되었다.
반면 이요원의 경우는 여러모로 불리했다. 우선 아역을 연기한 남지현의 그림자가 짙었다. 남지현은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으며 총명함과 따뜻함이 적절히 혼합된 ‘덕만’상을 구현했다.
이요원이 그동안 연기한 덕만은 사실 남지현이 연기한 ‘덕만’위에 기초한 것이다. 게다가 총명함을 두루 갖추고 미실에게까지 덤비는 모습으로 큰 인상을 남긴 것과 달리, 이요원은 초반부터 미실에 밀리는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엔 미실이 누군지 알 수 없음으로 덤빌 수 있지만, 나이를 먹고 미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난 후엔 감히 덤빌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덕만은 미실의 실체를 알고 난 후엔 두려워서 도망칠 생각까지 품는다. 그런 계산되 대본과 연기에 시청자들은 남지현을 기억하며 답답해했다.
그러나 25화에서 이요원은 그동안 연기했던 답답함에서 풀려났다. 달라진 복장만큼이나 그녀는 그동안 꾹꾹 숨겨놓았던 ‘공주’로서의 모습을 하나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미실의 세력이 판치는 황궁에 감히 잡입해 상천관을 잡고 ‘사다함의 매화’의 비밀을 묻고, 자신에게 ‘궁극적인 목표’가 뭐냐고 묻는 김유신에게 ‘왕’이 될 것이란 통 큰 배포를 밝혔다.
26화 예고편에선 월천 대사를 가야계 세력이 납치하고, 덕만 일행이 그들을 제압하며 세력을 넓히는 모습이 그려지던데 기대가 사뭇 크다. 알천과 비담, 김유신 밖에 없는 덕만이 어떤 식으로 세력을 넓혀가고 일식을 이용해 어떻게 미실로부터 신권을 빼앗아갈지 흥미진진함을 더했다.
아마 그동안 이요원은 많은 고민과 두려움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인터넷에 들어오면 그녀의 연기를 향한 비난이 쇄도했고, 자주 고현정과 남지현과 비교하는 설움을 감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요원은 그런 주변의 기대와 험담등을 곰씹으며 내일의 자양분으로 삼았으리라. 지난 24화에서 죽은 천명공주를 그리며 빼어난 눈물연기로 시청자들을 울먹이게 한 그녀는, 이제 25화에서 공주로서의 모습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이제 그녀는 절대권력인 미실의 가슴에 칼을 꽂으며, 미실이 그동안 황실과 신라에 부려온 횡포만큼 아니 그 이상 처절하게 응징을 가할 것이다. 언니마저 비명에 보내며 가슴에 한을 품은 덕만을 이요원이 어떤 식으로 연기해나갈지 매우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요원의 연기변신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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