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까지 끔찍하고 잔인한 현실을 묘사하던 ‘청담동 앨리스’는 4화에선 상류층을 꿈꾸는 한세경(문근영)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그렸다. 잠시 살펴보자!
서윤주는 한세경을 만나서 두 가지 제안을 했다. 첫 번째는 적당한 수준의 돈이었고, 두 번째는 그녀가 청담동 며느리가 된 모든 비법이 적힌 책이었다.
당연하지만 현실엔 그런 책이 존재할 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샌가 ‘그런 책이 존재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마치 무림비급이 있어서 그걸 읽으면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는 것처럼, ‘청담동 며느리’가 되는 비법서라? 이 얼마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설정인가?
남자가 최고수가 되는 게 로망이라면, 여성 시청자의 입장에선 자신이 공주가 되는 상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따라서 서윤주가 가르켜준대로 자신만의 ‘시계토끼’가 되어줄 타미홍을 추적하고,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조사하고 사소한 하나하나까지 연구해나가는 한세경의 모습은 정말 성실하다!
그러나 여기서 드라마는 한 가지 복선을 준비한다. 바로 사부이자 고수인 서윤주가 ‘너무 빠르다’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급한 한세경의 입장에서 속전속결로 끝내고 싶어한다. '빨리 빨리'가 입에 베인 우리를 보는 것 같달까?
하여 한세경은 타미홍이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게, 오로지 자신의 노력 탓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세경은 뛰어나긴 했다. 그의 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그의 동선을 하루 종일 쫓아다니면서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러나 타미홍이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 이유는 오로지 아르테미스 코리아의 회장인 차승조가 그녀를 자신에게 ‘디자이너’로 추천할 만큼 지나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여 타미홍은 그녀를 스폰서를 찾는 여성으로 오해하고 ‘은밀한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청담동 며느리가 되고자 했던 한세경은 그제서야 자신에게 왜 서윤주가 ‘너무 빠르다’라고 했는지 이해한다. 일이 너무나 잘 풀리면, 다른 식으로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이미 그녀는 경험을 통해 알았던 것이다.
사실 한세경은 타미홍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행복의 파랑새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듯이 그녀 곁엔 그녀만 바라보고 도와주고 싶어서 답답해하는 아르테미스 코리아의 회장인 차승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세경은 자신이 만나고 싶어하는 왕자님이 김비서로 알고 있는 차승조란 사실을 꿈에도 의심하고 있지 않다. <청담동 며느리>의 판타지는 거기서 시작된다!
일반 여성이 현실에서 재벌남을 만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벼락을 두 번 맞을 확률과 거의 맞먹을 것이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조차 거의 드물다. 왜? 재벌남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 자가용이 있고, 고급 레스토랑에 고급 헬스장을 이용한다. 동선 자체가 겹치지 않는다.
따라서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교통사고라도 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만날 일이 없다. 서윤주의 입을 빌어서 ‘사고 운운’하는 것이 현실적인 이야기다. 청담동 며느리가 되고 싶다면, 서윤주가 지적한대로 청담동 사람들이 모이는 레스토랑에 가서 밥 먹고, 헤어샵에 가서 머리를 하고, 파티장에 가서 친분을 쌓아야지만 ‘만날 기회’라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난다는 건, 그 자체로 가능성이 생길 뿐. 그녀가 원하는 목표치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아무 것도 없는 여성은 스폰서를 찾는 여성으로 낙인 찍히기 참 좋다. 따라서 타미홍의 말을 참지 못하고, 얼굴에 물을 뿌리는 행위는 한세경으로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서윤주의 말대로 그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애초에 한세경은 ‘아무것도 아닌 인물’이다. 상류층의 세계에선. 그녀가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면? 수단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 <청담동 앨리스>는 다행히 주말드라마다. 따라서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까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잃어버린 시계토끼를 대신하기 위해 타미홍에서 김비서로 한세경이 옮겨탈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청담동 앨리스>를 보면서 여성들의 명품에 대한 집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좋은 구두가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다못해 명품이라도 걸치고 있어야만 주위사람들이 그녀를 좀 더 관심있게 쳐다본다. 거기에 자신만의 포인트를 주고, 좋은 소재의 옷과 장신구를 해야만 주변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정도가 되어야만 상류층의 눈길을 끌 수 있다.
걷는 자세, 샴페인을 마시는 행동 하나가 상류층의 눈길에 들어야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끼리의 ‘이너 써클’에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사진을 취미로 찍는 이들이 좋은 카메라와 장비에 욕심을 내는 것은, 그런 장비들이 좋은 사진을 찍는 데 도움이 되는 것보다 주변의 눈을 의식하는 것처럼.
결국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청담동 앨리스>는 상류층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문근영의 몸부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노력은 바로 옆에 있는 월척(?)인 차승조를 놔두고, 타미홍에 열중할 만큼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중 한세경을 비웃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가 얼마나 될까? 한세경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서윤주가 그녀를 현재 돕고 있다. 물론 자신의 약점을 한세경이 알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돈’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재벌남을 잡아야만 하는 당위성과 환경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우린 대다수 돈과 재물과 명성을 원하지만, <청담동 앨리스>의 서윤주와 한세경처럼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자신의 욕구에 솔직할까? 아마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속물'이라고 말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야기를 조금 바꿔보자! 대기업의 사장이 골목상권에 침입해서 마트를 열고 조그만 구멍가게를 망하게 하면서 양육강식을 운운하고 공정한 경쟁을 운운하는게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다.
한세경의 아버지는 마트의 빵을 내팽개치면서도, 로열그룹 회장이 1년 계약직으로 자신에게 프렌차이즈 빵집을 운영하게 도와주는 것을 떨떠름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왜?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청담동 앨리스>를 보면서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한세경과 그 가족이 당하는 상황이 우리의 현실인데도,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직하고 확실한 방법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허나 최소한 한세경의 아버지처럼 손해 보는 빵집을 정리하고, 대출금도 못 갚는 아파트를 정리하고 시작할 줄 아는 마음은 필요하다. 자신의 처지조자 객관적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그나마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외로 유학을 갈 수 없는 한세경이 재벌남을 만나서 팔자를 고치는 것외엔 현실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일 확실하고 제일 빠른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녀가 아무리 일류대를 나오고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고, 간신히 디자인 회사에 입사해도 비정규직으로 잔심부름하다가 2년 후쯤엔 쫓겨나는 세상에선 말이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나마 드라마속의 한세경은 최소한 시청자보다 행복하다. 결국 차승조와 잘 돼서 현실탈출하고 신분상승의 꿈을 이룰테니 말이다. 현실의 시청자들은? 서윤주의 말처럼 재벌남을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선 문근영은 청담 스타일이다. 현실의 우린? 대다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노래하는 것 외엔 별로 할일이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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