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인간의 욕망에 대하여! ‘청담동 앨리스’

朱雀 2012. 12.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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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아! ‘청담동 앨리스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감정에 매우 충실한 드라마라고 자꾸만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5화에서 키워드는 욕망이었다.

 

김지석이 분한 타미홍은 국내파 디자이너이자 상류층끼리의 결혼을 연결시키는 일명 마담 뚜. 동시에 4화에서 드러났지만, 상류층을 위해 특별 서비스(?)로 젊고 능력 있는 여성에게 상류층 남성을 스폰서로 붙여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타미홍은 그 답지 않게 상류층에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인 한세경을 스폰서가 필요한 여성으로 오해했다. 왜일까? 드라마는 그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바로 한세경이 입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액션을 취하고, 초대손님들의 취미를 꿰뚫어서 대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타미홍은 한세경의 눈을 지긋이 보더니 거기서 욕망을 읽어내고는 즉시 사과한다. 그러자 한세경은 바로 대답한다. ‘분노, 좌절은 보이지 않냐?’. 물론 한세경은 그 다음 장면에서 자신의 감정을 읽혀버린 것에 대해 가슴 아파한다.

 

! <청담동 앨리스>는 청담동을 중심으로 상류층과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문근영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금 한세경을 지탱하는 것은 욕망이다! ! 그렇다면 욕망은 나쁜 것일까? 사실 이건 어리석은 질문이다. ? 인간의 감정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좋다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다.

 

감정이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서 선악이 갈리게 된다. 지금 한세경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좌절하고 분노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꿈인 디자이너가 될 수 없고,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있다가 쫓겨날 것이고, 아버지는 영원히 자신의 빵집을 운영할 수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그녀는 손바닥 만한 자신의 집을 영원히 마련할 수 없다.

 

하여 그녀는 라이벌이었던 서윤주가 그랬던 것처럼 청담동 며느리가 되고 싶어한다. 대다수의 주말 드라마가 그렇지만, <청담동 앨리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결핍된 인물들이다.

 

한세경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차승조는 원래 프랑스에서 한 여성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을 버리고 지앤의류의 회장의 사모가 되자, 복수하기 위해 아리테미스 코리아의 회장이 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감정적으로 망가진 자신만을 발견했다.

 

하여 낙담하던 중에 한세경을 보고 서서히 힐링하는 중이다. 급기야 그는 한세경을 위해 이용당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를 감춘 체, 한세경에게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의 개인 스타일리스트로 고용까지 한다.

 

차승조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김비서로 행동한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다른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슈퍼히어로처럼 또 다른 자아를 가진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차승조는 모욕당한 한세경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고, 낙담한 그녀를 위해 기꺼이 일자리를 내준다.

 

그러나 울지 못하는 정신병을 지닌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실은 한세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 서윤주에게 버림을 받은 이후, 다른 이에게 마음을 내주지 않았던 그는 자신이 얼마나 마음을 다른 이에게 열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승조는 21세기판 키다리아저씨이자, 동시에 마법에 걸린 왕자님이다.

 

만약 한세경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그토록 꿈꾸는 상류층에 당당히 입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가 그렇게 흘러가진 않겠지만 말이다.

 

일례로 로열그룹의 회장인 차일남이 아들 차승조의 아내로 서윤주가 들어오자 3천만원을 주었을 때, 필자는 그녀가 차승조를 위해서 일부러 떠났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청담동 앨리스>의 제작진은 그런 필자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했다.

 

서윤주의 회상신에서 그녀는 차일남 회장의 제의에 다른 식으로 역제안을 한다. 우선 현재 프랑스에서 다니는 학교를 마치게 도와주고,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시크릿 샵에서 일할 수 있는 소개장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샵에서 1년 이상 일하면서 신뢰를 얻어서, 급기야 한 상류층 여성을 위해 대신 물건을 구입해서 개인 딜리버리서비스까지 하게 된다. 맞다! 그녀가 현재 시어머니인 지앤의류 회장의 어머니다!

 

현재 한세경의 롤모델인 서윤주는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상류층에 입성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시어머니가 일을 맡기자 좋아한다. 그건 시누이의 혼사를 성사시키는 것인데, 그 상대가 자신의 전 남친인 차승조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게다가 친동생의 빵집에 한세경의 아버지가 취직한 사실을 알고는 두 번 경악한다.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는 이들이 마치 포위를 하듯이 주변을 에워싸니 놀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청담동 앨리스>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차승조의 아버지 차일남은 자신을 모욕한 아들에게 철저한 굴욕감을 맛보게 하고 싶어한다. 차승조는 자신의 마음을 열게 한 한세경이 점점 더 나은 상황이 되길 바래서 도움을 주고 있다. 한세경은 김비서로 오해한 차승조를 통해 상류층 입성을 꿈꾼다.

 

서윤주는 자신의 출신 때문에 불안한 현재 위치를 공고하게 다지고 싶어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들 욕망이 삐뚤어졌다는 사실이다. 서윤주에게 결혼은 신분상승의 방법이자 부를 거머쥐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오늘날처럼 갈수록 먹고 살기가 힘든 사회에서 그건 나쁜 일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능력이다.

 

그러나 그런 욕망에 순수하게 집중하게 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서윤주는 만약 과거에 차승조와 결혼했던 사실이 들통나면 지금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물론 법적인 효력은 없지만, 완전무결을 원하는 상류층에서 그녀는 철저하게 버림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그녀가 한세경의 아버지를 보고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한세경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차승조를 이용하려 한다. 순진하 차승조는 그런 줄 전혀 모르고 있다. 물론 차승조 역시 순수한 마음이라고 할 순 없다.

 

자신의 정신병을 고치기 위해 한세경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부지런하다. 한세경은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에 대해 알기 위해 100가지 질문서와 기분 인형을 선물했다. 차승조는 한세경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 스스로 일을 만들고 있다. 게다가 없는 시간을 내서 그녀를 쫓아다니고 있다.

 

서윤주는 회사의 실권을 쥐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동분서주 중이다. 욕망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욕망이 잘못되어 있다면? 그 행동 역시 잘못되거나 뒤틀릴 수 밖에 없다. 성실하다는 말을 우린 좋게 이해해왔다. 그러나 불법은 성실하다라는 말처럼, 옳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은 어찌보면 헛되디 헛된 것일 수 있다.

 

한세경을 보면서 매번 새로운 자극을 받고 있는 차승조가 만약 문근영의 본심을 알게 된다면? 더더욱 인간을, 아니 여성을 환멸하게 될 것이다. 찌질한 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상류사회에 알려서 한세경을 매장시킬 수 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한세경은 그토록 원했던 상류층 입성의 꿈이 한순간의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한세경의 욕망이 잘못된 것은 그 목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세경을 비난할 수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선 그런 욕망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소시민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평생 자기 집을 가질 수 없고, 자신이 꿈꾸는 직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젊은 실장님이나 사장님의 애인이나 부인이 되는 상상만을 하게 된다.

 

<청담동 앨리스>역시 그동안과 다르긴 하지만, 결국 상류층을 꿈꾸는 문근영을 등장시켜서, 박시후라는 훈남이 재벌남인 상황을 연출시켜서 대리만족을 해줄 뿐이다. 물론 <청담동 앨리스>는 오늘날의 현실을 풍자하지만, 극중 서윤주의 말처럼 절대 일반 여성이 만날 수 없는 재벌남이 우연한 자동차사고로 만나게 되고, 호감까지 가지게 되는 상황을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청담동 앨리스>에서 한세경은 위태위태하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순수한 호의가 아닌 계산된 행동을 하고 있고,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인 차승조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전적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담동 앨리스>는 비극이다! 인간은 결국 욕망으로 서로를 이용한다고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청담동 앨리스>는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결국 우리를 감동케 하는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이란 사실을 은연중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마음은 돈보다 못한 것으로 그려지지만, 만약 등장인물들이 그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드라마는 종결을 눈앞에 두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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