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장근석, 그의 싸이코패스 연기가 기대되는 이유

朱雀 2009. 8. 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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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4월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기초로 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고 조중필 씨를 한국계 미국인 피어슨(가명)과 재미교포 알렉스(가명)가 잭 나이프로 아홉 차례 이상 찔러 죽인 참혹한 실제 살인사건을 기초로 만들어졌다(둘 중 한명이 진범이었으나 결국 진범을 가리지 못했다).


오는 9월 10일이면 장근석이 주연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한다. 이태원에서 두 재미교포가 한국인을 무참하게 살해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에서, 장근석은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싸이코패스로 분한다.

어찌보면 이건 도박에 가까운 일이다. 장근석은 여태까지 ‘꽃미남’과의 인물로 에뛰드 등의 화장품 선전에 출연할 만큼 지지층도 확실한 편이다. 그런 그가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 싸이코패스로 분한다는 것은 ‘연기’에 대한 그의 애착과 욕심을 확실히 반증하는 사례이리라.

선한 역은 누구나 하기 쉽다. 우린 대부분 선량한 삶을 살기 때문에 자신의 선한 본성을 조금만 일깨운다면 어렵지 않게 연기할 수 있다. 그러나 악역은 다르다. 특히 싸이코패스를 연기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은 보통 인간과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추격자>에서 살인마 지영민을 연기한 하정우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그렇게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그저 놀이로 하는 거라고.”

하정우의 지영민에 대한 해석은 그렇게 내려졌고, 어린애처럼 순수한 그의 살인도락은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장근석은 모든 배우들이 한번쯤은 꼭 해보고 싶어하는 절대 악역, 싸이코패스에 도전한다. 훌륭한(?) 살인마를 연기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싸이코패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선입견이 있다. 거기에 너무 걸맞으면 대중은 식상해하고, 너무 다르면 생소해한다. 적당한 선에서 자신만의 ‘살인마 상’을 구현하면서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는 광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건 ‘적당한 연기’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장근석은 이제 확률이 매우 낮은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바로 관객을 상대로. 공짜로 보는 TV와 달리 관람료를 내고 극장에 들어오는 관객들은 그의 연기에 혹독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타자는 장근석의 이번 연기 변신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MBC 일일시트콤 <논스톱4>에서 였다. 거기서 적당히 까불거리고 웃기는 행동을 하는 잘생긴 동안의 연기자로 인상이 박혔고, 장근석은 잘 생긴 외모를 바탕으로 비슷한 이미지의 CF들을 최근까지 찍어왔다.

그의 연기를 다시보기 시작한 것은 <쾌도 홍길동>에서 였다. 당연히 조선의 왕이 되었어야했지만, 음모로 오히려 죽을 고비를 넘긴 이창휘 역의 그는 울분과 어딘가 그늘지면서도 순수한 연기를 보여줘 신선했다. 그리고 역시 압권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건우였다! 절대음감을 소유했지만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모른채 경찰로 살아가던 그는 우연히 그리고 엉겁결에 오케스트라에 들어오면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이후 그가 초보지휘자가 되고 강마에(김명민)와 반목하다가 이내 제자가 되고 천재적 재능을 꽃피우다가, 다시 반목하게 되면서 보여주는 다양한 연기의 편린들엔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올 뿐이었다. 물론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가장 빛난 인물은 누가 뭐래도 김명민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진정한 연기자 김명민에 맞서는 강건우 역의 장근석 역시 1987년생이란 어린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비록 연륜과 카리스마에서 밀릴 지는 몰라도, 그는 강마에에 맞서서 절대 밀리지는 뚝심을 보여줬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는 내내 <논스톱 4>에서 본 그의 이미지가 내내 따라다녔지만, 장근석은 그런 타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강건우가 되어 훗날에 그가 강마에 못지 않은 지휘자가 되었으리란 상상을 하게끔 만들었다. 그만큼 그의 연기는 훌륭했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자산은 김명민과 같은 훌륭한 이 시대의 연기자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았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그에겐 커다란 연기자산이 되었을 것이고, 많은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김명민 스페셜로 방송된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편에서 장근석은 김명민의 연기에 대해 감탄하면서 진술했었다.

일체 잡담을 하지 않고, 대본을 손에 쥐고 캐릭터에만 몰입하는 그를 보면서 “등골이 오싹하고,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노라고. 시대의 명배우인 김명민에 대해 찬양조에 가까운 이야기를 했지만, 김명민의 연기를 보면서 한편으로 묘한 호승심을 느꼈을 것이다. 연기자라면 누구나 연기에 욕심을 느낄 테니까.

이번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에서 싸이코패스역은 어찌 보면 모든 것을 건 도박일 수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아직 그는 완성된 연기자가 아니며,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꽃미남들 속에서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조금 쉽게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굳이 싸이코패스처럼 어렵고 힘든 역을 자임한 장근석을 보면서 어떤 면에선 무서움을 느낀다.


광기어린 싸이코패스를 연기하기란 쉽지 않다. 이전까지의 연기를 모방하면 곧장 비난이 쇄도한다.  따라서 자신만의 독특한 살인마상(?)을 정립하지 못한다면, <이태원 살인사건>은 실패할 것이고, 장근석 역시 한참동안 다른 기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어쩌면 신인급 배우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는 다음 기회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그의 이번 연기는 만약 성공한다면 장근석 앞에 아마 ‘연기파 배우’란 타이틀을 안겨줄 지도 모른다. 마치 하정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실패한다면 그는 상당 기간동안 스크린에 얼굴을 못 내밀지도 모른다. 과연 어떤 결과를 얻을지 모르겠지만, 연기에 대한 욕심으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연기하는 장근석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그래서 그의 싸이코패스 연기가 매우 기대된다.


8/26일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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