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세 자매가 15년 동안 연락 한번 듣지 못했던 아버지의 부음을 들으면서 시작된다. 맏이인 사치는 동생들만 장례식장에 보내지만, 다음날 자신 역시 참석하게 되고 거기서 이복 여동생인 스즈를 만나게 된다. 스즈는 아버지와 두번째 아내 사이에 낳은 딸이며, 그녀 역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사이에 세번째 결혼을 했고, 결국 이제 13살 스즈는 의붓엄마와 의붓남동생과 함께 덩그라니 남아있게 되었다. 사치는 그런 스즈를 보고 안타깝고 동시에 그녀의 착하고 예쁜 마음씀씀이가 마음에 들어서 충동적으로 “우리랑 같이 살래? 넷이서…”라는 말을 하게 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스즈는 약간의 고민 끝에 그녀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살게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바닷마을의 낡은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네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누구보다 각별했던 한 아주머니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처음 사치가 스즈에게 ‘함께 살래?’라는 제안을 할때만 해도 마냥 좋은 감정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결국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자를 선택했으니까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스즈는 사치 자매에게 증오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는 스즈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며, 말 그대로 불가항력의 일이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치, 요시노, 치카 자매는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세 자매는 그런 존재일수도 있는 스즈를 친절하게 대하고 결국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라면 그게 가능할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내 어머니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한 존재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사치는 애초의 ‘용서’라는 말자체를 입에 담지 않는다. 99%의 선의가 있다해도 1%의 악의가 조금은 섞이지 않았을까 싶었을 예상은 결말부에 가면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네 자매는 매우 매우 선한 인물들이다. 첫째 사치는 15년 전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그것도 부족해서 어머니마저 떠나버려서 실질적으로 요시노와 치카에겐 언니이자 엄마로서 모든 일을 해온 인물이다. 따라서 사치의 간호사란 직업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그녀가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사치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헌신과 희생을 해왔을지 이해하게 만드는 대목이니까.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를 미워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두 사람의 자식으로서 닮을 수 밖에 없다.
연애의 대상이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데, 비록 남자가 현재 아내와 별거중이긴 하지만 아직 이혼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적절한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을 버렸다고 증오했던 아버지와 그녀의 행동이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둘째 요시노는 자신의 애인에게 마음과 돈을 모두 주는 헌신적인 타입이다. 매번 배신을 당하지만 그럼에도 미소와 밝음을 잃지 않는다. 언니인 사치와 자주 의견대립을 벌이지만 결국 화해하고 누구보다 사치와 동생 치카 그리고 막내인 스즈를 챙긴다.
특이한 성격의 치카는 두 언니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린 탓일까? 아버지에 대해서 별 다른 기억이 없다. 그런 장면들은 그녀의 더할 나위 없이 밝은 성격과 명랑한 말투에도 왠지 서럽게 관객에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캐릭터는 스즈다.
그녀는 앞서 말한대로 자신이 원치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런 탓에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비록 세 자매와 함께 살지만 아버지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본의 아니게 세 자매의 아버지를 15년 동안 독점한 셈이니까.
또한 어머니에 대해선 차마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세 자매의 가정을 깨뜨린 주범이니까. 부모님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세 자매에게 죄스러워 말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저 눈물겹기만 하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화사한 네 자매의 얼굴 만큼이나 따스하게 관객의 마음에 들어온다.
세 자매와 스즈는 서서히 마음의 장벽을 열고 서로에게 소중한 가족이 되어간다. 물론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 탓인지 커다란 사건은 일어나질 않는다. 철없는 세 자매의 엄마가 사치와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스즈 앞에서 그녀의 엄마를 들먹인 정도가 가장 큰 사건이랄까?
사치는 아마도 스즈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은 것 같다. 사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재로 원치 않게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왜? 동생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그녀는 부단하게 노력해야 했으니까. 이제 중학생인 사치 역시 친엄마가 돌아가고 의붓엄마와 의붓동생과 살면서 눈치밥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실땐 그녀가 병수발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친엄마의 부재와 아버지의 죽음은 이제 13살인 그녀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잔인한 현실이었다. 거기에 피한방울 안 섞인 의붓엄마와 의붓동생과 덜렁 남겨진 상황은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 없었으리라. 그런 그녀에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세 자매의 출현과 함께 살자는 제의는 무척이나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곤혹스럽기도 했으리라.
만약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한국에서 쓰여졌다면? 용서와 화해가 기본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특유의 감성 탓일까?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다른 식의 시선이 읽혀진다. 바로 이해와 받아들임이다. 사치는 할머니가 남겨진 집을 지키고, 자신의 일을 위해서, 그리고 동생들을 위해서 애인인 의사가 함께 미국으로 가자는 제의를 거절한다.
사치의 결단은 그녀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게 아닐까? 그녀가 스즈와 단둘이 언덕에 올라 함께 바다를 보는 장면도 그러했다. 그녀는 스즈에게 ‘엄마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한다. 사치에게 스즈의 엄마는 그 자체로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사치의 말처럼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치가 싫어하는 아버지도 사고처럼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 때문에 또 다른 생명인 스즈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넓은 의미로 보자면 사치는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 정돈 아닌 듯 싶다. 앞서 말했지만 영화는 아버지의 장례식으로 시작해서, 누구보다 세 자매를 아끼고 보살펴주던 이웃 아주머니의 장례식으로 끝난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던 사치는 아주머니의 장례식에선 눈물을 보인다.
이는 비록 아버지라 할지라도 15년이나 연락한번 없이 지냈다면 남과 다를 바 없으며, 아무리 남이라지만 15년이 넘게 서로 정을 주고 받았다면 소중한 인연이란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게 아닐까? 사치는 이젠 죽어서 없어진 아버지와 스즈의 엄마가 아니라, 살아있는 스즈를 소중히 여긴 것은 아닐까?
함께 매실주를 담그고, 집에 키를 재서 남기는 등의 모습은 함께 추억을 만들고 공유하는 행위이다. 네 자매는 그런 식으로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고 서로를 아픔을 치유하면서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이 되어간다.
어쩌면 처음엔 사치는 요시노와 치카는 그저 안쓰러운 마음에 함께 살자고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스즈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의 소중한 기억들을 함께 나누게 되고,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불꽃놀이를 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가족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세 자매는 스즈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고, 스즈 역시 난생 처음으로 항상 있고 싶어하는 집이 생기고, 소중한 가족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들이 쌓고, 앞으로도 쌓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화면들은 아름답다.
네 자매의 툭탁거림과 잔잔한 일상은 관객을 때론 웃음짓게 하고 때론 눈물 짓게 하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 착한 네 자매의 이야기과 착한 이웃들 그리고 착한 아이들의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힐링케 하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감히 강추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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